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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세기 ‘奴’의 성격과 신라의 ‘奴人’ = The Character of ‘No’ and ‘Noin’ of Silla periods in the 5th~6th Centuries
저자
김수한 (창원대학교)
발행기관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Sokdang Academic Research Institute of Traditional Culture Dong-A University)
학술지명
石堂論叢(JOURNAL OF SOKDANG ACADEMIC RESEARCH OF TRADITIONAL CULTURE)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0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33-179(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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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ative term, ‘no’, used in the period of the Three Kingdoms has been so far considered meaning slaves. But ‘nogaek’ in Kokuryo and ‘noin’ in Shilla were different from people of the humble class. ‘Nogaek’ originally meant people who were a guest but subordinate to officials of the ruling class in the period of Wi, Chin and the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 This was also true for ‘nogaek’ in Kokuryo. In 「Moduru's epitaph」, by the way, not only term, ‘nogaek’, but also another, ‘gwangaek’ are appeared. Moduru was a person who made a master-servant relationship with an official who benefited him. Meanwhile, ‘haho’, a term found in Chinese historic books of the 1st to 3rd centuries meant people whose social position was same as that of ‘nobok’ or ‘nogaek’. Especially, ‘nogaek’ engaged in feudal lands that were owned by learned people of the boble class who didn't participate in production, so-called ‘jwasikja’. In Kokuryo of the 5th century, thus, ‘nogaek’ indicated people who were a retainer or tiller assuming the management of feudal lands owned by people of the noble class.
‘Nogaek’ in Kokuryo later called ‘nogaekin’ and then became ‘noin’ in Shilla.
‘Noin’ was neither from other regions than Shilla nor rural people who were under direct control by people of the kingdom's capital. Rather, ‘noin’ was people of the low class who originated from ‘haho’ of the Three Han Nations. Unlike migrants from Kokuryo or defectors from Baekje, ‘noin’ was considered the group of people who were strongly subordinate. This is because they engaged in mean jobs like fortification. Among people belonging to ‘noin’, those who were subordinate to officials of the ruling class cultivated the soil or provided labor in favor of their master in accordance with a compulsory service system, or ‘surye buyeok’. In this sense, ‘noin’ was similar to ‘haho’ who was governed by the rural head. But unlike before, the former was under rule in which the state power intervened. How ‘noin’ performed compulsory services had some of conventions that had been practiced by rural community people. Nevertheless, however, ‘noin’ was a social class that emerged as Shilla changed its way of ruling people in the 5th to 6th centuries and whose members were formally identified by the state.
삼국시기 노(奴)의 의미는 지금까지 노비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고구려의 노객(奴客)이나 신라의 노인(奴人)은 이같은 천(賤)신분과는 차별적인 존재들이다. 노객은 원래 위진남북조시기 관인(官人)지배층에 예속된 객적(客的) 존재로 고구려의 노객 역시 여기에 착안한 것이다. 그런데 「모두루묘지명」에서 노객과 함께 관객(官客)이란 표현도 함께 쓴 것을 보면 모두루(牟頭婁)는 관은(官恩)을 통해 주군(主君)-종신(從臣)의 관계를 맺고 있던 인물이다. 한편 1~3세기 중국사서에 전하는 하호(下戶)의 실상은 노복(奴僕) 또는 노객과 같은 처지였으며 특히 노객은 제가(諸加) 출신 좌식자(坐食者)의 식읍경영에 관련된 하호들을 지칭한다. 따라서 5세기 고구려에서 노객은 귀족들의 봉지(封地), 식읍의 운영에 관여했던 가신이나 경작민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고구려의 노객은 노객인(奴客人)의 단계를 거쳐 신라에서 노인으로 정착되었다. 따라서 신라 노인 역시 비신라계 주민이거나 왕경인(王京人)에게 예속된 지방민이 아니라 삼한(三韓) 하호 출신의 하층민이다. 노인이 고구려 유인(游人) 또는 백제의 귀인(歸人)과 달리 예속성이 강한 집단으로 취급된 것은 축성과 같은 천역(賤役)에 종사한 계층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관인층에 예속된 노인은 수례부역(隨例赴役)에 따라 주가(主家)의 토지 경작이나 부역을 대신 부담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읍락 수장층에 예속된 하호의 처지와 유사하지만 국가권력이 매개된 지배방식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관행과는 차별적이다. 따라서 노인의 역역수취에서 기존의 읍락공동체의 유제(遺制)가 일부 나타나기는 하지만 이들은 국가에 의해 파악된 주민들로 5~6세기 신라의 대민지배 방식의 변화 속에서 등장한 사회계층이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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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5-02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Jornal of Seokdang Academy -> Journal of Seokdang Academy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5-03-25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Jornal of Seokdang Academy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2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석당전통문화연구원 -> 석당학술원영문명 : Seokdang Academic Research Institute of Traditional Culture Dong-A University -> Seokdang Academy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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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2 | 0.62 | 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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