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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석’ 발견으로 본 『천부경』 전승과정과 재고찰 = Discovery of Cheonbugyeong Stone and Reconsideration of Cheonbugyeong Trans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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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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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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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476(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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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is aimed at reconsidering the transmission of Cheonbugyeong with regard to recently-discoverd Cheonbugyeong Stone(天符經石).
Meanwhile it has been widely accepted that Cheonbugyeong has originated form the rubbing that Gyeyeonsoo made of Cheonbugyeong at Myohyang Mountain in 1916. Howerver the recent discovery of Cheonbugyeong Stone has brought about the examination of the previous transmission.
Cheonbugyeong Stone is Menhir(立石) carved with one diagram and nine characters corresponding with those of existing Cheonbugyeong. It meaures 84cm high and 41cm wide at the big bottom. This Menhir has been found at the small temple in a certain mountain (located in ChungNam Asan) and also preserved together with the temple’s ridge beam. Menhir was erected at Nine years of Kwangmu.(1905, Eulsa) If 1905’s Cheonbugyeong Stone is accepted as it stands, it is the oldest of all the existing Cheonbugyeong records. It has to be inevitably revised that 1916’s Myohyangsan Stonewall rubbing has been officially believed to be the oldest.
This Cheonbugyeong Stone tells that Cheonbugyeong went restrictively current among people till 1905. And yet there remain two aspects to who carved this Cheonbugyeong Stone. First of all, it must be studied whether or not the temple’s chief monk(33, 1873, Gyeyou) is the same person as the carver himself. There is no knowing at the present.
In order to find out their identification, the carver not only joined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with Lee gi(李沂1848~1909), but also he was one of the Donghak Revolution participants, taking into consideration the fact that there were many hermits after the failure of Donghak Revolution.
If 1905’s Cheonbugyeong Stone has already seen the circulation of Cheonbugyeong, there is a chance that Taebaekilsa(太白逸史) has passed down on 1905’s Cheonbugyeong.
이 논문은 최근 발견된 천부경석(天符經石)을 중심으로 『천부경』의 전승과정을 재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동안 『천부경』은 1916년 계연수가 묘향산에서 『천부경』을 탁본하였다는데서 전래가 시작된 것으로 보아왔다. 그러나 이번 천부경석의 발견으로 이러한 전승과정은 그 이전으로 돌아가서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천부경석은 현존하는 『천부경』의 경문과 일치하는 9글자와 1개 그림을 각석한 입석(立石, 선돌)이다. 높이가 84cm, 아래 큰 폭이 41cm이다. 이 선돌은 야산(충남 아산 소재)의 어느 암자에서 나온 것인데, 이 암자의 상량목(上樑木)도 함께 보존되어 오고 있다. 선돌을 세운 연대는 광무9년(1905년, 을사)이다. 1905년 천부경석을 사실 그대로 받아드린다면, 현존하는 『천부경』 경문의 기록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1916년 묘향산석벽본을 최고(最古)로 보았던 것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천부경석은 1905년 이전부터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천부경』이 민간에 유통되고, 식자 간에 소통되었을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 다만 이 천부경석의 각자(刻者, 즉 입석자)가 누구냐는 문제는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우선 암자의 주인(계유생, 1873년생, 당시 33세)과 각자가 동일인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인가 하는 점이 검토되어야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더 이상 알 길이 없다. 다만 각자의 신분을 알고자 할 때, 이기(李沂,1848~1909)와 함께 애국운동에 가담했던 사람이거나 아니면 다른 한편으로 동학혁명 이후 산으로 은둔했던 사람이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동학혁명 가담자일수도 있다고 본다.
또 1905년 천부경석이 세워졌을 때에 이미 『천부경』이 유통되었다면 그것은 『태백일사(太白逸史)』로 전해온 『천부경』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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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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