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한국 최초의 사진에 관한 실증적 고찰 - 현존하는 1860년대 한국사진을 중심으로 - = Corroborative investigation on the First photograph of Korea - Mainly about the existing photographs of Korea shot in 1860s' -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9
작성언어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81-314(34쪽)
KCI 피인용횟수
0
DOI식별코드
제공처
동아시아에서 사진의 전래와 수용은 크게 세 단계로 진행된다. 우선 사진의 원리가 문헌으로 알려지는 단계와 1839년 사진발명 이후 외국인에 의해 촬영된 사진의 실체가 기록으로 남아있는 단계 그리고 자국민에 의해 기술적 수용이 이루어지는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한 나라 최초의 사진은 사진의 실체가 기록으로 알려지는 두 번째 단계를 말하며 오늘날 증거로서 최초의 사진이 존재할 때 ‘현존하는 최초의 사진’이라고 한다.
한국사진의 수용은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처럼 외국과의 통상과정에서 사진이 전래되거나 서양 제국주의의 강제 통상조약에 의해 사진이 들어오지 않고 예견치 않은 사건으로부터 이루어진다. 한국 최초의 사진수용은 중국의 사진수용에 비해 20년이나 늦은 1860년대 가능하게 되는데 그 원인들 중 가장 큰 이유는 중국 아편전쟁 이후 더욱 강경해진 천주교 박해와 외국 문물에 대한 쇄국정책 때문이다.
최근 발견된 초기 한국사진들은 조선인이 피사체가 되어 외국인에 의해 촬영되고 소장된 것들로 대부분 1860년대 사진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한국사진의 역사에서 다게레오타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단언은 당시의 쇄국정책으로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을 뿐 한국 최초의 사진은 1860년대 이전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이를 위해 몇 가지 가설을 놓는다면 우선문호개방과 교역을 목적으로 조선에 온 이양선에서 조선과 조선인을 촬영한 사진들의 존재 가능성을 들 수 있다. 특히 군사용 해도작성을 위해 조선의 지형을 촬영한 사진이라면 서구의 많은 동양 박물관, 군사 박물관, 해양 박물관, 지도 박물관, 인류 박물관 등지에서 아직도 아카이브 자료실에 잠들어 있을지 모른다.
또한 한국사진의 수용연대를 앞 당겨주는 또 다른 가능성은 한국 천주교의 사진아카이브 연구를 통해서다. 왜냐하면 한국 천주교의 수난의 역사가 남긴 사진은 정치적 사건이 아닌 예견치 못한 사적 공간에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진들의 발굴은 해외 소장자들의 자발적인 기증과 소유권을 둘러싼 다층적인 이해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The introduction and acceptance of photographs in East Asia largely progressed in three: a stage where the principle of photograph was known through literature; a stage where the entity and experience of photography was known through records maintained by foreigners, since photograph was invented in 1839; and the stage where photography was technically accepted by fellow countrymen. By the way, generally speaking, the first photograph of one country refers to the second stage, where photography is known through records. When the first photograph of a country exists as evidence of that country, it is called the first photograph that still exists.
The acceptance of photography in Korea did not simply originate with the introduction of photography through commercial trade with foreign countries or forced commercial agreements with Occidental imperialism. In Korea, photography was accepted through historic or unexpected cases. The first photograph of Korea is officially that of the Lee Ui-ik envoy group, taken in 1863. Such acceptance is later than that in China by more than 20 years, mainly because of Chosun's persecution of Catholicism and national isolation policy against foreign culture which was further enhanced following the Opium War in China.
Photographs of Korea shot and kept by foreigners in which Koreans were subject were recently found. Most of them were shot after 1860s'. Thus, the established theory is that no daguerreotype exists in the history of photography in Korea. However, such affirmation only remains as a record of the national isolation policy at the time. The first photograph of Korea may retroact to the time before 1860s'. Suggesting some hypotheses on this matter, the first possibility is the existence of photographs in which Chosun & Chosun people were shot from a Western vessel that arrived in Chosun for opening doors and trade. In particular, if a photograph had been taken by them to prepare a nautical chart, they may have still been kept in the archives of many museums of the Orient, military articles, maritime museums, map museums, and anthropological museums of Western countries.
Meanwhile, the acceptance year of the first photograph in Korea can be further retroacted by studying the archive of photographs of Korean Catholicism, because the trace of historic ordeal of Korean Catholicism left in photographs may be found in unexpected private spaces instead of politic cases. Such photographs can be found through the passion and dedication of researchers as well as voluntary donations from overseas hoarders.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4-01-08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Cross-Cultural Studies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34 | 0.34 | 0.3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31 | 0.3 | 0.588 | 0.1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