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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성(熊津城)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 = The Historical Value and Meaning of Ungjin 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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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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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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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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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웅진성의 역사적 의미를 밝히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웅진이라는 명칭이 등장한 웅진시대부터 백제 멸망기까지 웅진성의 역할과 그 위상을 비교·검토하였다.
웅진 천도는 한성 함락 이후 이루어졌기 때문에 定都의 가장 중요한 고려 대상은 방어적 요소였다. 웅진성은 수도인 웅진을 대표하는 성으로 사료 검토를 통해 왕성임을 확인하였다. 백제는 고구려와 치열한 전쟁을 벌인 한성시대부터 평지성인 풍납토성 외에 피난 왕성인 몽촌토성을 축조하였다. 웅진성이 왕성이 된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웅진시대 왕성은 웅진성과 함께 평지성을 주목하기도 하며, 그 근거로 연이은 궁실 중수 기사를 들고 있다. 물론 평지성이 존재하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웅진성이 중심 왕성임을 여러 정황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웅진성 내부의 확장과 왕궁 남쪽으로 확대 등 도시 기능의 확장 차원에서 이해되는 것이다.
사비로 천도한 이후에도 방어적 요소는 여전히 중요했다. 이때 웅진성은 북방성으로 편제되어 도읍 방어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 금강 이북과 서북 지역의 산성은 웅진 천도 이후 도읍인 웅진을 방어하기 위해 운영되었으며 사비시대에도 여전히 북방성의 방어 역할을 하였다. 금강 이남의 논산으로 이르는 교통로에 위치한 중장리산성과 노성산성은 북방인 웅진성과 동방을 연결하는 도읍인 사비의 방어를 목적으로 구축한 성으로, 웅진성이 사비성의 배후 방어성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백제왕이 동서 양성에 거주하였다는 기록에 나오는 동서 양성으로는 사비, 웅진, 익산이 거론되었다. 이에 검토 결과 사비와 웅진이 동서 양성에 해당함을 알 수 있었다. 웅진성의 다른 이름인 고마성을 백제의 수도로 착각할 정도로 사비시대까지 웅진성의 역할이 컸던 것이다.
백제 멸망기에는 웅진성에서 두 번의 큰 전쟁이 있었다. 먼저, 백제 멸망 때 의자왕은 웅진성에서 항복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웅진성이 위급한 순간에 피난 왕성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여준다. 다음으로, 백제부흥운동이 거세게 일어나 당군이 위기에 몰리자 유인원은 웅진성에 진수하여 방어하였다. 이후 당군은 백제부흥군을 제압하고 웅진도독부체제로 전환하였으며, 사비로 중심지를 옮긴 것은 663년 주류성 함락 이후로 추정 된다. 최근 공산성에서 발굴된 갑옷과 화재와 전쟁의 상흔은 웅진도독부와 신라와의 치열한 전투 상황을 보여주는 물적 증거로 해석된다. 이처럼 웅진성은 웅진도독부가 위기에 처하자 최후의 거점 역할을 하였던 것임을 말해준다. 이를 통해 웅진성은 교통로의 결절점과 방어적 역할로 도읍 내지는 도읍에 버금가는 역할을 전 시기에 걸쳐 수행하였던 것이다.
This study aims to reveal the historical value and meaning of Ungjin Seong. For this purpose, this study compared and examined the role and status of Ungjin Seong since the Ungjin period when the name Ungjin appeared till the Dying Days of the Baekje Dynasty.
Since the transfer of the capital to Ungjin was done after the collapse of Hanseong(漢城), the most important factor in setting up the capital was a defensive element. Ungjin Seong is the castle representing Ungjin, and it was found that it was a royal castle through a review of historical records. Baekje had constructed Mongchontoseong Seong(夢村土城), a castle for the king’s refugee since the Hanseong period when it had fierce battles against Goguryeo. Ungjin Seong became a royal castle because of this background. During the Ungjin period, royal castle might expand to a flatland castle, but it was noted that Ungjin Seong was the central royal castles. It could be understood as the dimension of the expansion of urban functions, e.g. The internal expansion of Ungjin Seong and the expansion to the south of the royal castle.
After the transfer of the capital to Sabi, the defensive element was still important. At this time, Ungjin Seong was organized as Bukbang Seong(北方城), connected to the east and played a great role in the capital defense. The king of Baekje resided in Dual castles on the east and west. As for a dual castles on the east and west in the records, as a result of a review, it was found that Sabi and Ungjin were a dual castles on the east and west. To the extent that Goma Seong(固麻城), another name of Ungjin Seong was misunderstood as Baekje’s capital, the role of Ungjin Seong was great in the Sabi period, too.
The Dying Days of the Baekje Dynasty, King Euija(義慈王) surrendered at Ungjin Seong. This shows that Ungjin Seong served as a royal castle for refuge in an emergency. Next, as Baekje reconstruction movement took place violently, driven to a crisis, the military of Tang(唐) Dynasty guarded and defended Ungjin Seong. The armors and scars of fire and the war recently unearthed in Gongsan Seong(公山城) are interpreted as material evidence showing the intense combat situation between Ungjin Dodokbu and Silla(新羅). Like this, Ungjin Seong served as the last base when Ungjin Dodokbu was in crisis. Through this, it was found that Ungjin Seong a role as a capital or a role second to a capital, serving as a node for traffic route and playing a defensive role throughout the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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