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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서리 지역의 천주교 형성과 사리틔 공소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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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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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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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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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77(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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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의 초창기는 여러 박해와 이를 피난하는 과정을 통해 시작 되었고, 그 여파는 신자 공동체의 형성과 특징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이 같은 박해와 피난의 여정 속에서 천주교가 용인 서리 지역에 언제 누구에 의해 전래 되었는가를 연구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본 연구는 현존하는 수원교구의 몇 안 되는 공소 강당 중 1898년에 신축되고 1978년에 개축되어 오늘에 이르는 사리틔 공소 강당이 용인 서리 지역 천주교 전파 와 맺는 연관성을 모색하면서 시작되었다. 본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용 인 서리 지역의 천주교 신앙형성과 천주교 공동체의 성장 그리고 사리틔 공소 강당이 갖는 의미를 연구하는 것이다. 용인 서리 지역은 지형적으로는 산들로 둘러싸여 외부로부터 차단되어 있고, 지리적으로는 용인·이천·화성·안성·진천 등으로 통하는 길목에 위 치하였다. 따라서 박해를 피해 살아야 했던 신앙인들에게는 마을에 흐르 는 물을 통해 논농사와 밭농사를 일구고, 화전(火田) 생활 및 가마와 숯을 만들어 경제적인 생계 활동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용인 서리 지역에서는 1844년 더우골에서 태어난 정덕구(야고보)와 그 가족, 1840년경 사리틔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권긍과 그 가족, 더우 골에 살았고 1866년 순교한 윤자호(바오로)와 정 필립보, 1866년 병인박 해 이후 사리틔로 이주한 권위와 그 일가·임혁준(요셉)·조면(바오로) 등 이 신앙의 뿌리를 내렸다. 그들로 시작된 서리 지역의 천주교 신앙공동체 는 1885년에 생긴 더우골 ‘안터 공소’가 기초가 되어 새터, 사리틔, 조이 골, 석바탕이, 승방뜰 등의 7개 공소가 있었으며, 가장 많았던 때는 동시에 6개가 있었다. 신자가 가장 많았던 1912~1913년에는 404명에 이를 정도 로 활발한 신앙공동체가 되었다. 1898년 사리틔 공소 강당의 건축은 더 활 발한 전교를 위한 구심점이 되었다. 용인 서리 지역 공소는 1920년부터 더우골 안터 공소와 사리틔 공소 두 곳으로 재편되면서 1923~1924년을 기점으로 뚜렷한 신자 감소 현상 을 보인다. 신자 수는 1922~1923년 334명, 1929~1930년 162명, 1936 년에 135명으로 감소한다. 이 같은 신자 수 감소는 일제가 1910년 이후 실시한 토지조사령, 인삼·담배·소금에 대한 전매, 산미증식계획 등의 경 제 수탈 정책에 기인한 곤궁한 생활과 1922년 7월과 8월에 걸쳐 한 달간 내린 비로 인한 홍수 피해의 결과이다. 용인 서리 지역 신자들은 전답(田 畓)의 파괴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생계를 위해 새로운 터전으로 이주하였 고, 그 결과 급격한 신자 감소 현상이 나타났다. 박해 이후 신앙생활이 활발히 이루어지기 시작한 개항기의 천주교 종 교 건축은 일반적으로 장방형이었고 당시 유교의 남녀유별 사상의 영향으로 성당이나 공소 강당은 가운데 벽이나 장막, 휘장, 발 등을 설치하여 남 자와 여자의 자리를 구분하였다. 그러나 사리틔 공소 강당은 1898년 당시 민가의 건축 형태인 ‘ㄱ자형’의 흙벽 초가로 건축하면서도 공간적으로 남 녀의 자리를 구분하였다. 사리틔 공소 강당은 ‘ㄱ자형’ 평면으로 건축함으 로써 제대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뉘는 서로 다른 방향에 남자와 여자의 자리를 구분되도록 배치한 점에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사리틔 공소 강 당은 남녀 자리를 구분하기 위해 공간을 나누는 ‘닫힘(폐쇄)’의 형태를 지 니지만, 나눠진 공간에서 하느님께 드리는 희생 제사의 봉헌 제단을 향함 으로써 ‘열림(개방)’의 자세를 지니는 ‘ㄱ자형’ 평면으로 건축되었다는 점 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80년이 된 흙벽 초가를 1978년 개축하면서도 초 기 강당이 지녔던 특징을 보존하기 위해 초가가 있던 같은 자리와 같은 규 모 그리고 ‘ㄱ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목조와가(木造瓦家)로 개축해 오 늘에 이르고 있다. 용인 서리 지역은 도시화와 고령화로 신앙인이 줄고 있으며 강당을 찾 는 이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용인 서리 지역에 살았던 초기 신자들이 머물 던 사리틔 공소 강당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히 요구 된다. 이를 통해 신앙 선조들이 보여준 신앙공동체의 정신을 되새기고, 박 해를 피해 사리틔와 더우골에 살았던 순교자 후손들의 신앙 가치를 드높 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더보기The early days of Korean Catholic Church began with various persecution and the process of evacuating it, and its after effect was a major influence factor in determining the formation and characteristics of the Catholic community. It is meaningful to study when and by whom Catholicism, which is related to this journey of persecution and evacuation, was introduced to the Seo-ri area of Yongin. This study began with the search for a connection between the Sarihteui secondary station chapel, which was built in 1898 among the few existing ones in the Diocese of Suwon and renovated in 1978, and the Catholic mission in the Seo-ri area of Yongin. Therefore, the ultimate goal of this study is to study the Catholic mission in the Seo-ri area of Yongin, the growth of Catholic communities, and the Sarihteui secondary station chapel. The Seo-ri area of Yongin was geographically surrounded by mountains and blocked from the outside. It is geographically located on the road leading to Yongin, Icheon, Hwaseong, Anseong, Jincheon, etc. Thus, it was suitable for believers who had to live out of persecution to cultivate rice and crops in the agricultural farms through the water flowing and to make kilns and charcoal, or live in slash-and-burn field. In the Seo-ri area of Yongin, Jeong Deok-gu (Jacobus) who was born in Teouikol in 1844, and his family, and Kwon Geung who was presumed to have moved to Sarihteui, and his family, and Yoon Ja-ho (Paulus) and Jeong Pilippo, martyrs of the 1866 persecution, who moved to Teouikol, and after 1866, Kwon Wi and his family, and Lim Hyeok-jun (Josephus) and Jo Myun (Paulus) took root of Catholic faith. The belief in the Seori area, which began with them, spreaded further when Anthe secondary station in Teouikol was built in 1885, which was a stepping stone to the seven Secondary Station including Saithe, Sarihteui, TJyohigol, Syekpatangi, and Seungpangteul. There were six at the same time when there were the most. Between 1912 and 1913, when there were the most believers, it became an active Catholic community with the number of 404. In 1898, the construction of the Sarihteui secondary station chapel made the Seo-ri area the center of spreading Catholicism. The Secondary Station in the Seo-ri area of Yongin, has been reorganized into two places since 1920, the Anthe in Teouikol and Sarihteui, showing a clear decrease in believers since 1923-1924. The number of believers decreased to 334 in 1922–1923, 162 in 1929–1930 and 135 in 1936. This decrease was followed by economic exploitation such as land investigation ordinances, proliferation of rice products, monopoly for ginseng, tobacco, and salt, which were implemented by Japan since 1910, and severe damage caused by floods in July and August 1922. Believers in the Seo-ri area of Yongin, moved to a new site for a living due to the destruction of field and paddies and economic difficulties, resulting in a sharp decline in believers. The Catholic architecture was generally rectangular shape during the harbor-opening period in the late 19th century when the Catholic faith began to flourish after the persecution. At that time, due to the influence of Confucianism, men and women could not sit side by side. For that reason the churches and secondary station chapels were divided into two areas with walls or curtains in the center. However, the Sarihteui secondary station chapel was constructed in 1898 as a mud-wall and a straw-roofed house that was a ‘ㄱ-shape’ in the form of a private house, and the space was divided into two, for men and women. The Sarihteui secondary station chapel is meaningful and valuable in that it is constructed in a ‘ㄱ-shape’ plane, so that the positions of men and women are separated in different directions, which are divided into two sides from the altar. Although the Sarihteui secondary station chapel has the form of ‘closed’ to divide the space between men and women, it is meaningful in that it is built in a ㄱ-shape plane to have an ‘open’ position through the direction toward the altar where the sacrifice to God is dedicated in divided spaces. In particular, when it was reconstructed, the 80-year-old mud-wall and straw-roofed chapel was constructed with a wood-roofed house while maintaining the same place, size, and ‘ㄱ-shape’ that the early hall had to preserve its characteristics. In the Seo-ri area of Yongin, the number of Catholics is decreasing due to urbanization and aging, and the number of visitors to the chapel is disappearing. It is needed to preserve and utilize the Sarihteui secondary station chapel in the Seo-ri of Yongin where early Korean Catholics lived so that the spirit of the Catholic community shown by the ancestors of faith should be reflected and the value of descendants of the Korean martyrs who lived in Sarihteui and Teouikol should be rai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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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2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 2017-09-27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천주교 수원교구 유지재단 소속 수원교회사연구소 -> (재)천주교수원교구 수원교회사연구소영문명 : Suwon Research Institute ->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Church History | KCI등재 |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KCI후보 |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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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 0.2 | 0.2 | 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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