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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의 庚子年(400) 遠征의 실상과 加耶 諸國의 대응 = The Reality of Goguryeo’s Expedition in the Year of White Rat (400) and the Response of the Countries of Gaya
저자
기경량 (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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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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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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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19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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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tombstone of King Gwanggaeto, there is a record that Goguryeo sent troops to the ‘Imnagara’ area located in the southernmost tip of the Korean Peninsula in the tenth year of Yeongrak, the year of white rat (AD 400). This was part of the operation to save Silla that fell into crisis by Japanese Navy. However, it seems that the crisis of Silla recorded in the tombstone of King Gwanggaeto has been exaggerated to a considerable extent. It is judged that there were actually the Japanese Navy’s attacks, but it does not seem that they were large forces, and also, it does not seem that they were not a life-or-death concern for Silla.
The essence of war in 400 was the confrontation between Silla and Geumgwan Gaya surrounding the lower Nakdonggang River area. Geumgwan Gaya constantly pressed on Silla, making use of the military power of Wae-guk which was in a friendly relationship with it. Silla planned intervention of Goguryeo to break through adverse circumstances. Silla appealed to Goguryeo, exaggerating Wae-guk’s force and threat level while it emphasized that Wae-guk was associated with Baekje that stood against Goguryeo. Silla that made Goguryeo’s expeditionary force go ahead drove out the Japanese troops that invaded their home territory and attacked ‘Imnagara (Geumgwan Gaya),’ tracing them. As a result, Geumgwan Gaya suffered a heavy blow, and east of the Nakdonggang river fell under the influence of Silla.
Concerning the way in which many small countries in Gaya responded to Goguryeo’s expedition in 400, many opinions have been presented. Especially, there is a lot of controversy about the position of Anra-guk in Haman concerning the phrase on the epitaph, “Anra-in Subyeong.” However, it is judged that the areas where the real battles took place in the war were limited to the territory of Geumgwan Gaya, and it is assumed that other small countries in Gaya, except for Geumgwan Gaya, waitedand saw the war, without getting involved. Geumgwan Gaya that suffered blows was defeated in its competition with Silla and greatly lost its influence in the Gaya region.
Taking advantage of this gap, Anra-guk in Haman and Daegaya in Goryeong could take the initiative in the Gaya region. Goguryeo’s expedition in 400 surely is an incident that is the important point of inflection in the history of Gaya. However, to some extent, it was overrated as compared to the scale and impact of the actual warfare.
광개토왕비문에는 영락 10년 경자년(서기 400)에 고구려가 한반도 최남단에 자리한 ‘임나가라’ 지역에 군대를 보내어 활동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왜군에 의해 위기에 빠진 신라를 구원하기 위한 작전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광개토왕비문에 보이는 신라의 위기 상황은상당 부분 과장된 것으로 여겨진다. 왜군의 공격은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지만, 대규모 병력이었다고 보이지는 않으며, 신라가 존망을 걱정할 수준이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400년에 있었던 전쟁의 본질은 낙동강 하류 지역을 둘러싼 신라와 금관가야의 대결이었다. 금관가야는 우호 관계에 있는 왜의 병력을 활용하여 신라를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었다. 신라는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고구려의 개입을 기획하였다. 신라는 고구려에왜의 실력과 위협 수준을 과장하여 호소하는 한편, 왜가 고구려와 대적하고 있는 백제와 연계된 세력임을 강조하였다. 고구려 원정군을 앞세운 신라는 자국 영역을 침범한 왜군을 몰아내는 한편 이들의 뒤를 추격하며, ‘임나가라(금관가야)’를 공격하였다. 그 결과 금관가야는 큰타격을 입어 세력이 위축되었고, 낙동강 동안 일대는 신라의 영향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고구려의 400년 원정에 가야의 여러 소국이 어떠한 식으로 대응하였는지에 대해서는많은 견해가 제시된 바 있다. 특히 ‘安羅人戍兵’이라는 비문의 문구와 관련해 함안의 안라국이 어떤 입장이었는지에 대해 이견이 많다. 그러나 400년 전쟁에서 실제 전투가 전개된 지역은 금관가야의 영내로 한정되었다고 여겨지며, 금관가야를 제외한 다른 가야의 소국들은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관망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금관가야가 신라와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영향력을 상실하자, 그 공백을 틈타 함안의 안라국과 고령의 대가야가 가야 지역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고구려의 400년 원정은 가야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사건임에분명하지만, 전쟁의 규모와 실제 영향력에 비해 과도하게 평가되었던 측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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