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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법상의 문서위조죄 -Lex Cornelia de falsis에 관한 소고- = Forgery of Documents in Roman Criminal Law - On the lex Cornelia de fals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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詐僞罪(falsum)에 대한 로마 最古의 입법은 12표법 상의 위증 조항(XII. Tab. 8.23)이었다. 그러나 12표법 이전에도 위증에 대한 소송은 알려져 있었다. 구술문화였던 로마가 위증을 일찍이 제재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한 詐僞의 한 형태였던 문서위조에 관한 명시적인 입법인 술라 독재관 시기의 코르넬리우스법(기원전 81년)은 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아주 늦게 제정된 셈이다. 이 법률은 동시에 재판기구로서 常設査問會(quaestio perpetua)를 설치하는 법이기도 하였다. 이 법률의 제재 대상인 범죄(crimen publicum)는 遺言書와 鑄貨 위조였다. 그러나 이윽고 모든 公·私의 문서가 대상이 되었고, 다양한 행위들이 위조행위에 해당하였는데, 크게 범주화하면 작성, 부정 印封, 附署, 冒寫, 변조, 말소, 은닉, 누출, 부정 사용이 문서에 대한 詐僞였다. 이 범죄의 처벌은 극형, 水火不通, 유배, 재산몰수 등이었으며, 후대에는 사회신분에 따른 차별로 인하여 班族 인사의 경우 섬으로의 重流配, 常民의 경우 광산형 내지 십자가형이었다.
제정기에 들면서 詐僞 중 문서위조와 관련해서는 티베리우스 시기 리보 원로원의결(16년)과 클라우디우스 告示를 통하여 유언서 筆執이 자신을 위하여 임의로 유증을 삽입하는 것을 확실하게 금지하였다. 네로(54-68) 시에는 또 위조를 막기 위하여 서명 외에 문서판에 구멍을 뚫고 3중으로 貫綴할 것과, 또 유언서의 처음 두 판에 오직 유언자의 서명만을 한 채로 나머지 판에 증인들의 서명을 받도록 규정하여 유언서의 내용을 증인들이 알지 못하도록 하였다.
기록들에 의하면 다양한 형태의 詐僞 범죄가 매우 흔했던 것 같은데, 특히 유언서 위조가 그러하였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로마에서는 문서위조의 관심이 私문서, 그중에서도 유언서에 집중되었고 다양한 관련 사례들이 논의되었다. 동아시아가 주로 공문서 위조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과 대조되는 점이다.
그리고 로마법은 封印을 중심으로 문서의 진정성을 확보하는 실태로 인하여 기본적으로 오늘날 개념으로 有形僞造에 치중했던 것 같고, 無形僞造[허위문서작성]의 사안은 부차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명시적으로 이러한 행위유형(falsum facere sine consignatione)을 규정한 것으로 보아서는 무형위조 역시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이 유형에 대한 언급이 극히 드문 것은 명의가 진정한 경우 유언서나 계약 문서의 당사자가 기록한 것은, 설령 심리유보가 인정된다 하더라도(그러나 로마법에서는 심리유보가 인정되지 않았다), 그것이 허위라는 것을 외부인으로서는 입증하기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공문서에서 진정한 官印의 사용자가 허위 공문서를 작성하는 경우란 자신의 정당한 권한을 일탈하는 경우일 터인데,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고 있는 사료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실이 드러나면 어떤 방식으로 든 처벌을 했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입증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법이나 상관의 지시에 위반하는 내용의 공문서가 작성된 경우에는 비교적 입증이 용이했을 것이다. 황제의 문서에 대한 사례가 드물지만 전하는 것도 다 이런 까닭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공직 기강의 면에서도 제재가 가능했을 것이므로 반드시 falsum의 영역에서 처리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더욱 후대에는 詐害행위(fraus)와의 親緣性으로 인하여 falsum 개념이 더욱 확장되는 모습을 보였다.
The oldest statute which sanctioned the crime of falsum in ancient Rome was the Twelve Tables. The Twelve Tables had a provision putting to death those who committed perjury (falsum testimonium). Of course, pertinent criminal cases were known before the Twelve Tables consolidated earlier traditions into an enduring set of laws. Perjury was severely punished, for it affected the trustworthiness of social relations in the then oral society of Rome to a great extent. On the contrary, the very statute on the forgery of documents was not promulgated until 81 B.C., as Cornelius Sulla had his dictatorship.
Lex Cornelia established a quaestio perpetua as a jury court having jurisdiction over forgery cases. It sanctioned in terms of substantive law forgery of testamenta (wills) and counterfeiting of coins and for that reason it was called as such lex Cornelia testamentaria nummaria. As time went on, the statute was applied extensively to other kinds of private and public documents as well, so that it was called also lex Cornelia de falsis. Lex Cornelia seems to be as follows if we accept as a matter of convenience the reconstruction of the text by Kocher (1965):
... IS PRAETOR IVDEXVE QVAESTIONIS QVI SORTE OBVENERIT QVAESTIO DE FALSIS TESTAMENTIS NVMMISVE EIVS QVOD IN VRBE ROMA PROPIVSVE M PASSVS FACTVM SIT VTI QVAERAT CVM IVDICIBVS QVI EI EX LEGE SORTE OBVENERI< N >T DE CAPITE EIVS QVI TESTAMENTVM FALSVM SCIENS DOLO MALO SCRIPSERIT SIGNAVERIT RECITAVERIT TESTAMENTVMVE SVBIECERIT AMOVERIT CELAVERIT SVBRIPVERIT RESIGNAVERIT DELEVERIT INTERLEVERIT SIGNVMVE ADVLTERINVM SCVLPSERIT FECERIT EXPRESSERIT QVIVE SIGNVM AMOVERIT RESERAVERIT CVIVSVE DOLO MALO ID FACTVM ERIT ...
According to this, those who write down false wills, misuse seals, adulterate, delete, or conceal wills, give documents to unauthorised persons, or make use of wills unlawfully commit acts amounting to forgery. The penalty comprised capital punishments, aqua et igni interdictio, deportatio, and confiscation of property. Penalties were later differentiated according to the social strata between ordinary people (humiliores) and the elites (honestiores). Fixing of the penalty became more and more flexible as extraordinary cognitiones prevailed.
The later development of law began to newly categorize various unlawful acts into falsum which were at the beginning not covered by the very statute. It happened through many senatusconsults and interpretations of jurists. Above all, senatus consultum Libonianum (16 A.D.) under Tiberius and edictum Claudianum penalized adscribere by the scribe of wills of others, i.e., adding legacies for the benefit of himself and declared such testamentary dispositions virtually in favor of the scribe of a will to be void. Many cases reported in the Digest or Codex of Justinian were, as a matter of fact, characteristically concerned with this problem.
In ancient Rome, the primary policy concern was on the forgery of the wills of private citizens rather than that of public documents (tabulae publicae, instrumenta publica), imperial or provincial. The contrast with the Far Eastern legal cultures, especially Chinese and Korean, which took from the outset almost exclusively public documents into consideration, is very significant and revealing.
Roman law always was concerned with the genuineness of a document, as a signum was used to secure it by sealing. The formal side of a document was of fundamental importance. Meanwhile the truth of the contents of a document was also viewed in terms of forgery. Falsum facere sine consignatione was the technical term expressing an act adulterating the truth of the contents, but leaving the sealings untouched. There is only few such cases reported in the Corpus iuris civilis. It is, indeed, due to the fact that the verity of a document was not easy to prove. On the other hand, especially officials of the central Rome or provinces could be otherwise disciplined. In the later period the affinity to fraus (fraud, imposition) caused those acts which were fraudulent in a variety of situations to be gradually seen also in terms of falsum.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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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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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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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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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55 | 1.55 | 1.26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1.24 | 1.24 | 1.583 | 0.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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