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일본 홋카이도의 민중사발굴운동과 한인강제동원희생자 유골발굴운동 = The People's History Excavation Movement, and the Remains Excavation Movement of Victims of Korean Forced Mobilization in Hokkaido, Japan
저자
김광열 (광운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1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05-138(34쪽)
KCI 피인용횟수
0
제공처
This article examines trends in the study of people’s history in post-war Japan, and the excavation of the remains of forced labor victims in Hokkaido, and the development process of the transnational civic movement in the early 2000s to reveal their interrelationships, what their subjects pursued, and what the significance of the movement.
The study of people’s history in Japan since the 1960s has been successful in highlighting the ideology or role of the general population at the base of Japanese society, but did not include ethnic minorities forced to assimilate during Meiji's centralization or colonial Joseon or Chinese. In other words, there was a nationality based on the majority-oriented “people” in the “people” that the Japanese historical community of Japanese history at the time. On the other hand, the Excavation Movement of people’s history, which began in Hokkaido in the 1970s, was different.
In addition to discovering the victims of the Meiji invasion of Hokkaido, the Okotsuk People's Lecture also noted the damage of Koreans and Chinese mobilized by Hokkaido's company investigators during the Asia-Pacific War from the late 1970s. As an opportunity, there was a meeting with the “Korea Compulsory Labor Force Investigation” conducted in Hokkaido at the time, but the fact that members of the Okhotsk People's Lecture voluntarily included Koreans and Chinese victims of war in the scope of “People's Discovery” was a level of national awareness.
A group strongly influenced by the progressive changes in the popular history movement was Sorachi People's Lecture established in 1976. In order to practice the people’s history excavation movement, the organization launched a movement in Shumarinai, in 1980 accompanied by physical labor called the excavation of the remains of Korean forced laborers. In the 1990s, it developed a new form of “Korea-Japan Joint Workshop” and “East Asia Joint Workshop.” In other words, the excavation movement of the remains of forced labor victims centered on Sorachi people’s history Lecture opened a new horizon by actively inheriting and practicing the values of the Hokkaido people’s history excavation movement in the 1970s.
Their movement resulted in a new transnational hyper-ideal civic group, the Hokkaido Forum, which was established in February 2003 to consider victims of forced labor. The activities of the Hokkaido Forum can be said to be the result of the experience accumulated through the people’s history excavation movement and forced mobilization victim excavation movement, which was conducted across national borders since the late 1970s.
이 글은 전후 일본 역사학계의 민중사연구 동향, 1970년대부터 홋카이도에서 전개된 민중사발굴운동과 한인 강제동원희생자유골 발굴운동, 그리고 2000년대 초의 초국적 시민운동 등을 검토하여 그들의 상호 관계성을 밝히고 그 주체들이 추구한 바와 그 운동의 의의는 무엇인지를 고찰하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일본 역사학계에서 전개된 민중사연구는 일본사회의 저변에 있던 일반 민중의 이념이나 역할을 부각시키는 데에 성과가 있었으나, 메이지기의 중앙집권화의 과정에서 동화를 강요당한 소수민족이라든지, 제국주의 영토확장의 결과로서 이주 및 동원으로 일본열도에 존재했던 식민지 조선이나 중국 출신자들은 고려의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즉 당시 일본사학계에서 주목한 ‘민중’에는 다수자 위주의 ‘국민’을 기준으로 한 내셔널리티가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1970년대부터 홋카이도를 중심으로 전개된 민중사발굴운동은 다른 모습이 확인된다.
오호츠크민중사강좌의 운동은 메이지시대 홋카이도의 개척 과정에서 희생된 민중의 존재를 발굴하는 작업 이외에도, 1970년대 후반부터 아시아태평양전쟁기에 홋카이도의 군수사업체에 동원당한 조선인과 중국인의 피해에도 주목하였다. 그 계기로서 당시 홋카이도에서 실시되었던 ‘조선인 강제노동강제연행 진상조사’와의 만남이 있기는 했으나, 오호츠크민중사강좌의 구성원들은 자발적으로 ‘민중사발굴’ 범위에 전쟁동원으로 희생된 조선인과 중국인도 포함시켰다. 그러한 민족을 초월한 민중사운동의 진보적 변화에 강한 영향을 받은 단체가 1976년에 설립된 소라치민중사강좌였다. 이 단체는 1980년부터 벽지인 슈마리나이에서 조선인 강제동원희생자 유골발굴이라는 육체노동을 동반하는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그것이 1990년대에는 한국 및 재일코리안 청년들과 함께 하는 국경을 초월한 ‘한일 공동워크숍’ 및 ‘동아시아공동워크숍’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발전시켰다. 즉 소라치민중사강좌를 중심으로 전개된 강제노동희생자 유해발굴운동은 1970년대 홋카이도 민중사발굴운동의 가치관을 적극적으로 계승하고 실천하여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운동은 2003년 2월에 설립된 초국적 초이념의 새로운 시민단체 ‘강제노동강제동원 희생자를 생각하는 홋카이도포럼’으로 귀결되었다. 홋카이도포럼의 활동은 1970년대 후반부터 동 지역의 진보적 시민들이 민족과 국경을 초월하여 전개한 민중사발굴운동과 강제동원희생자 유골발굴운동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2-10-30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日本學 -> 日本學(일본학) | KCI후보 |
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71 | 0.71 | 0.58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54 | 0.51 | 0.957 | 0.08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