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AHCI
SCOPUS
일제 시대 ‘의생(醫生)’ 김광진의 황달 투병기 - 김광진의 『치안』, 『치달일기』 분석 - = A Traditional Medicine Doctor, Gwangjin Kim’s Battle against Jaundic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9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AHCI,SCOPUS
자료형태
학술저널
발행기관 URL
수록면
427-468(42쪽)
KCI 피인용횟수
2
제공처
소장기관
나는 이번 연구에서 김광진(金光鎭, 1885-1940)의 『치안』과 『치달일기』를 분석해 일제 시대의 한의사 의생(醫生)들이 한의학과 서양 의학으로 어떻게 환자 및 자신의 질병 치료했는지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일제 시대가 한의학과 서양 의학이 어울려 존재하던 시기였으며, ‘서양 의학, 일제 식민 정부 vs. 전통 의학, 피지배 민중’이라는 단순한 이원적 대립 구도로 이 시기를 규정할 수 없음을 밝혀볼 예정이다. 의생 김광진의 주된 치료 수단은 한의학이었다. 『치안(治案)』에 실린 60여개 치험 사례는 그가 전통 의학 지식을 활용했던 한의사였음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1939년 1월부터 1940년 7월, 죽음을 마주하기 1달 전까지 김광진은 『치병일기(治病日記)』를 써내려갔다.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병증은 황달(黃疸)이었다. 매일같이 복부 변화를 살피고, 상하지 및 고환의 부종・대소변 등의 변화를 기재했다. 황달 발병 초기 김광진이 주로 활용하던 치료 도구는 한약 처방이었지만 의생이 되기 위해 서양 의학을 공부했던 만큼 한의학의 테두리에 갇혀있지만은 않았다. 자신의 병증이 황달인지 신장염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대구에 있던 서양 의학 병원에서 소변 검사를 받고 늑막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X-ray 촬영을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담즙을 인위적으로 배출해내는 시술을 받았으며, 담즙을 대변으로 배출시키는 양약을 복용하고, 신경통을 치료하기 위한 주사를 맞기도 했다. 황달을 앓던 김광진을 가장 괴롭혔던 것은 설사였다. 설사를 막으면 부종이 발생했고 부종을 제거하면 다시 설사가 시작됐다. 한약 복용을 멈추고 생식을 하며 증상을 관리해갔다. 이 무렵 김광진이 가장 의존했던 것은 에지산(エヂ散)이었다. 에지산(エヂ散)은 부종 및 소화 장애를 치료하는 효능을 지닌 한약과 양약이 혼합된 신약의 일종이었다. 김광진은 에지산에 대해 황달을 치료하는데 꼭 필요한 약이라는 찬사를 보내며 사망 한달 전까지 이를 직접 제조하고 또 복용했다. 김광진은 일제 시대의 의생이었다. 그 역시 서양 의학은 외과 질환 치료에 뛰어나지만 내과 질환에는 효과를 보이지 못한다는 당대의 통념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잘 치료되지 않던 자신의 황달과 수반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한약과 양약을 가리지 않고 사용했고 두 의학을 융합시킨 에지산(エヂ散)이라는 신약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서양 의학은 옛 의학(舊醫)인 한의학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새로운 의학(新醫)이었지만 새로운 의학도 어쩌지 못하는 한의학의 영역은 여전히 존재했다. 나아가 서양 의학 지식을 일부 접목시킨 새로운 한의학 이론 승강론(升降論)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제 식민 정부는 의생들에게 서양 의학 학습을 요구했으며 의생들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서양 의학을 학습했어야 했다. 그 와중에 김광진 같은 의생들은 임상 의료 현장에서 두 의학을 절충시키며 새로운 변화를 끌어냈다. 일본 식민 정부는 의생들에게 서양 의학을 학습을 강제하며 한의사의 소멸을 기획했지만 일본 제국 그리고 식민정부 보다 오래 살아남은 의생들이 가져온 뜻밖의 성과는 동서 의학 통합의 시도였다.
더보기This study aims to examine how the traditional medicine doctors (醫生)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Korea treated patients and their own diseases with the tradional medicine (漢方) and the Western medicine (洋方) by analyzing Clinical Cases (治案) and Diary of Jaundice Treatment (治疸日記) of Gwangjin Kim (金光鎭, 1885-1940). Through this, it aims to reveal that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was the time when the traditional medicine and the Western medicine coexisted, and that this period cannot be defined with a simple dualism of ‘Western medicin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vs. traditional medicine, governed public’. The main means of medical treatment by Gwangjin Kim was traditional medicine. The over 60 treatment cases written in Clinical Cases illustrate well that he was a typical doctor who used traditional medical knowledge. Furthermore, Gwangjin Kim wrote Diary of Jaundice Treatment from January 1939 to July 1940, a month before his death. The disease that led to his death was jaundice. He examined the changes in the abdomen every day, and recorded the changes in edema in upper extremities and testicles, urine and feces. While the treatment tool that Kim used in the early stages of jaundice were herbal medicines, he was not confined to the boundaries of the traditional medicine as he studied the Western medicine to obtain a license of traditional medicine doctor from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He took a urine test to confirm whether his illness was jaundice or kidney disease, and had X-ray imaging to check for pleurisy at a Western medical hospital in Daegu. In addition, he received a procedure to artificially drain bile, took a medicine to excrete bile into the feces, and had injection to treat neuralgia. Mostly, it was diarrhea that bothered Gwangjin Kim, who had been suffering from jaundice. Preventing diarrhea led to edema, and removing edema led to diarrhea again. He managed his symptoms by quitting the herbal medicines and having raw food diet. Around this time, Kim relied the most on Ejisan (エヂ散). Ejisan was a type of new medicine mixed with the traditional medicine and the Western medicine that had the effect of treating edema and digestive disorders. Gwangjin Kim personally manufactured and took the drug until a month before his death, praising it as a necessary drug to treat jaundice. Gwangjin Kim was a traditional medical doctor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He also had the conventional wisdom that the Western medicine was excellent in treating surgical diseases but not effective in internal medicine. However, he used both tradional medicine and Western medicine to treat symptoms of jaundice that have not been treated well, and created a new medicine called Ejisan, which combined the two medicine. For him, the Western medicine was a new medicine that corrected the wrong part of the traditional medicine or the old medicine, but there was still a realm of the traditional medicine that the Western medicine could not intervene. Furthermore, he published a new theory of the traditional medicine called the Principle of Up and Down (升降論), which incorporates some Western medical knowledge.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required traditional medicine doctors to study Western medicine, and the traditional medicine doctors had to learn Western medicine to survive. In the meantime, traditional medicine doctors such as Gwangjin Kim have brought about new changes by compromising the two medical treatments in the clinical field.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planned the demise of the traditional medicine by forcing traditional medicine doctors to study the Western medicine, but the unexpected achievement brought about by the traditional medicine doctors, who survived longer than the Japanese Empire and the colonial government, was an attempt to integrate the Eastern and the Western medicine.
더보기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3 | 평가예정 | 해외DB학술지평가 신청대상 (해외등재 학술지 평가)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해외등재 학술지 평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6-07-07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Korean Journal of Medical History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5-05-30 | 학술지등록 | 한글명 : 의사학외국어명 : 미등록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81 | 0.81 | 1.0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97 | 0.91 | 2.084 | 0.2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