麗末鮮初 象嵌ㆍ印花裝飾梅甁 硏究
저자
발행사항
서울 : 홍익대학교 대학원, 2011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홍익대학교 대학원 : 미술사학과 한국미술사전공 2011. 8
발행연도
2011
작성언어
한국어
DDC
738.3 판사항(22)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ⅲ, 187 p. : 삽도 ;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韓正熙, 田勝昌
참고문헌(p. 138-147) 수록
DOI식별코드
소장기관
Maebyoeng was fashionable ceramic ware from Koryo to early Chosun dynasty. It was use to honey or alcohol, and the small mouth of a bottle with the round shoulders to the lower part is characterized by narrow shape. These Maebyoeng to the white porcelain because it is difficult to determine if it was created, porcelain is known to be extinguished before the prevalence.
Maebyoeng was been produced for a long time, as well as many passed down the amount of it produced through the ware to research steadily. In the meantime, however, the study of Koryo dynasty has focused on a lot of cases, of the Chosun dynasty Maebyoeng decline for the decrease in production as a inlaid stamped Bunchoeng ware partially been addressed in the confines.
To supplement this paine in the research period of this thesis from 14th century to mid-15th century by setting Maebyoeng examines characteristics of the form, and late Koryo with inlaid ware, it's traditional and emerging changes examined. In the process, stamped Buncheong ware with marquetry techniques were included within the scope of. Until now, stamping techniques that are distinct from the Koryo dynasty inlaid techniques of the Chosun dynasty, has been understood as a new decorative technique the knife, now to stamp using the expression, because changes seen as inlaid techniques.
Maebyoeng was popular from inlaid celadon till stamped Bunchoeng ware. It's easy to investigate the content of these models.
About Maebyoeng the klin and relics of the excavation situation, the general characteristics of the plastic, destroys background information about the review period were destroyed. Through this print the Chosun dynasty inlaid Bunchoeng ware and stamped Bunchoeng ware are not the new production, late Koryo inlaid celadon was been produced. by this point, in Maebyoeng comprehensive analysis of the 14〜15th situation could be devide during three periods.
Firstly, production throughout the 14th century, the existing situation and be reaching form, texture and stamping techniques in representation before the ordinance's time to start. Maebyeong from Kang-jin kilns of this period, mostly decorated with marquetry technique. however, on the other hand, the appearance is sometimes changed. The points for stamping techniques may be used, or used to bowl some of the patterns, the center of the plate and appears as a small model is about. In addition to the exchange of The Yuan dynasty introduced in the course that appeared Yuan dynasty ware.
Secondary, In the 1420's until the late 14th century, that mix of imprint stamping techniques tend to appear. Kang-jin kiln in the late 14th century dismantle throughout the country, Maebyeong kilns across the country also are found in. Looking at the characteristics of the plastic Maebyeong, the Yuan dynasty, with the exchange while disconnected from external production tends to reduce the impact was apparent. Maebyeong of the late 14th century the emphasis is on form S-letter change into point bending techniques, decorative stamping, using techniques that are a lot of change is considered an example. stamping technique to inlaid patterns on the way to express a changing phenomenon in the late 14th century, including a bowl or plate around a small models. since the 1400's gradually Maebyeong or bottle, jar, and larger model are know to have been expanded. Tribute ware in the country since the 1420's, the supervising of the production and stamping techniques started in earnest way to a surge in the production. Therefore in the late 1420's, an authentic 14th century fashion as the previous steps, painting stamping using the inlay technique developed several model went as leverage to Crossroads inlaid decoration can be seen in the changes.
Third, From 1430's to 1460's. This period has been considered prime stamping Buncheong ware. However, the representation of the change stamping technique is inlaid, 1460's, a full-scale production from the porcelain and the decline this time decorated with marquetry techniques to their final stage of the decline can be seen that. It also a fashion finished Maebyeong. But Maebyeong destroyed in the background, gradually declining to stamping Buncheong ware affecting social situations are also included. Since 1430 the Ming dynasty and Chosun through the exchange of an influx of blue and white porcelain of the Ming dynasty and, within the country tend to prefer white porcelain occurred. The prevalence Gyeonggi-do Gwangju(廣州) is installed in the Royal klin began to produce porcelain that was during the
Buncheong ware be considered to have been destroyed since that. Therefore decorated with marquetry techniques ware was installation of the Royal Kiln triggered by the decline can be seen to have been to destroy. 14〜15th century, research on the Maebyeong was not shed light on during its declining phase, as well as the creation of the Maebyeong, stamping Buncheong ware about the definition of the problem has a personality that can be accessed. Maebyeong observed in looking at the process and the inlaid of the common stamping techniques through the celadon and Buncheong ware can understand the nature of the relationship makes sense in that it.
梅甁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까지 유행했던 대표적인 자기 종류 중 하나이다.
작은 구연과 둥근 어깨에서 하단부로 좁아드는 형태가 특징적이며, 술이나 꿀 등을 담는 저장용기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매병은 백자로 제작된 경우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백자가 제작되던 시기를 전후하여 소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병은 오랜 시간 제작되었을 뿐 아니라 전세되는 양이 많아, 이를 통해서 자기 제작상황을 파악하려는 연구가 꾸준하게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그 동안 이루어진 매병에 관한 연구는 고려시대에 집중한 경우가 많고, 조선시대의 매병에 대해서는 제작이 감소하는 쇠퇴기로서 상감분청사기매병에 한하여 일부를 다룬 정도이다.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점을 보충하기 위해 연구범위를 14세기에서 15세기 중기까지로 설정하여, 매병의 양식특성을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지속되는 고려 말 상감장식자기의 전통과 새롭게 나타나는 변화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인화분청사기는 ‘상감장식자기’의 범위 안에 포함시켰다. 인화기법은 지금까지 고려시대 상감기법과는 구분되는 조선시대의 새로운 장식기법으로 이해되어 왔지만, 칼에서 도장으로 표현 방법이 변화된 상감기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매병은 고려 상감청자에서 조선 초의 인화분청사기까지 유행하였으므로 이러한 내용을 살피기 용이한 기종이라고 할 수 있다.
매병이 발견되는 가마터와 소비유적의 출토상황은 당시의 자기 제작배경과 제작경향, 사용성격을 잘 보여준다. 특히 가마터가 각 지역에 산재해있는 점과 그 배경, 출토유물 분석을 통해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지속되었던 자기 제작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매병이 고려와 조선 모두 지배계층과 관련된 소비유적에서 발견되고 여러 소비유적에서 상감과 인화기법으로 장식된 자기들이 함께 출토 되는 점으로 미루어, 제작과 마찬가지로 사용성격 역시 고려 말과 조선 초가 동일하였으며, 상감장식자기와 인화장식자기의 소비층이 같았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매병의 조형적인 특징은 기형과 장식, 기법으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이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14〜15세기에 나타나는 변화 중 하나인 인화장식기법의 유행이다.
인화기법은 고려 말 상감청자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도장을 사용한다는 점 외에 기법의 단계와 문양소재, 표현, 위상 등의 특징이 상감기법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인화기법은 상감기법의 표현방법이 변화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으로 매병에 대한 분석결과를 종합하여 14〜15세기의 제작 상황을 세 시기로 구분하였다.
제 1기는 14세기 전반으로 기존의 제작상황과 양식이 유지되면서도, 문양을 표현방법에 있어서 인화기법이 의식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의 매병은 강진 가마터에서 발견되고, 상감기법으로 장식된 경우가 대부분인 점 등에서 13세기 매병의 양식요소가 확인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변화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한다.
元과의 활발한 교류 과정 속에서 유입된 원대 자기의 영향으로 문양대 구성에 변화가 생기거나 새로운 문양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또한 주문양의 표현에 인화기법이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매병과 같은 대형 기종보다 대접, 접시처럼 작은 기종에서 주로 확인되며 문양의 일부에 사용되는 정도이다. 따라서 제 1기는 인화기법의 사용이 의식되기 시작하는 단계로 생각된다.
제 2기는 14세기 후반에서 1420년대까지로, 상감기법과 인화기법이 혼용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 시기는 자기의 표현방법뿐 아니라 제작상황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 중 하나는 강진 자기소가 해체되어 자기 제작지가 전국으로 흩어지게 되었던 점이다. 이 시기 매병의 제작지 역시 전국 각지에 분포하고 있어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준다. 한편 14세기 후반에는 원과의 교류 단절로 외부로부터의 영향요소가 줄어들면서 고려적인 제작경향이 뚜렷해져 갔다. 매병의 형태가 S자의 굴곡이 강조되는 변화가 나타나는 점과 인화기법을 주문양의 장식 기법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점이 그 예로 생각된다. 이러한 기형이나 기법의 변화는 국내에서만 확인되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상감기법에서 인화기법으로 문양을 표현하는 방법이 변화하는 현상은 14세기 후반에는 대접이나 접시 등 작은 기종을 중심으로 나타나며, 이후 1400년대를 전후한 시기부터는 점차 매병이나 병, 호 등의 대형기종으로 확대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1420년대 이후에는 중앙에서 공납자기의 제작을 관리·감독하기 시작하면서 인화기법이 본격적으로 유행하여 제작이 급증한다. 따라서 14세기 후반에서 1420년대는 본격적인 유행의 前 단계로, 도장을 사용한 상감기법인 인화기법이 여러 기종에 활용되면서 발전해 갔던 상감장식의 변화기로 볼 수 있다.
제 3기는 1430년대부터 1460년대까지이다. 이 시기는 인화분청사기의 전성기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인화기법은 표현 방법이 변화된 상감기법이고, 1460년대부터 백자가 본격적으로 제작되며 쇠퇴하였으므로, 이 시기를 상감기법으로 장식한 자기의 마지막 단계 즉 쇠퇴기로 볼 수 있다. 또한 매병도 인화분청사기와 함께 유행이 저물어갔다. 그런데 매병의 소멸 배경에는, 인화분청사기가 점차 쇠퇴하는데 영향을 미친 사회 상황도 포함되어 있다. 1430년 이후 명나라와 조선의 교류를 통해 명나라의 청화백자가 유입되어, 국내에 백자를 선호하는 유행기조가 형성되었던 상황이 그것이다. 이러한 유행 속에서 중앙 소용자기를 전담 제작하는 官窯가 京畿道 廣州에 설치되어 백자를 제작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 동안 공납자기였던 인화분청사기가 소멸하게 되었던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인화분청사기는 고려 말 조선 초의 자기제작 흐름 속에서 살펴본 결과 고려 말 상감청자의 연속으로 이해되었으므로, 관요의 설치를 계기로 고려시대부터 제작되어온 상감장식자기는 쇠퇴하여 소멸하게 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14〜15세기의 매병에 대한 연구는 그 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쇠퇴하는 단계의 매병의 제작뿐 아니라, 인화분청사기의 정의 문제에 대해서도 접근할 수 있는 성격을 갖고 있다. 매병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관찰되는 상감기법과 인화기법이 공유하는 특징들을 통해 청자와 분청사기의 관계성격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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