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초기불교 교단의 주처에 관한 一考 = A Consideration on the Abode of the Saṅgha in the Early Buddhism
저자
신성현 (동국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韓國佛敎學(The Journal of the Korean Association for Buddhist Studies)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3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발행기관 URL
수록면
175-194(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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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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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on the matter of abode of renunciant in the early Buddhism. In the early decades of Buddhism the wandering monks of the saṅgha, dedicated to asceticism and the monastic life, had no fixed abode. As shown Buddhist monks/nuns at Meditation under tree as a kind of four will for renunciant in the Buddha’s contemporary aboding under tree is the basic principal.
As it, however, was considered an act of merit not only to feed a monk but also to shelter him, sumptuous monasteries were created by rich lay devotees.
Monasteries were located near settlements, close enough for begging alms from the population but with enough seclusion to not disturb meditation. As permanent monasteries became established, the name "Vihara" was kept. Some Viharas became extremely important institutions, some of them evolving into major Buddhist Universities with thousands of students, such as Nalanda. Life in "Viharas" was codified early on. It is the object of a part of the Pali canon, the Vinaya Pitaka or "basket of monastic discipline". Buddhist Vihara or monastery is an important form of institution associated with Buddhism. It may be defined as a residence for monks, a centre for religious work and meditation and a centre of Buddhist learning.
The Buddhist monastic lifestyle grew out of the lifestyle of earlier sects of wandering ascetics, some of whom the Buddha had studied under. It was not really isolation and the saṅgha particularly for nuns was dependent on the lay community for basic provisions of food and clothing, and in return saṅgha members helped guide lay followers on the path of Dharma. Individuals or small groups of monks/nuns, a teacher and his students, or several monks who were friends, traveled together, living on the outskirts of local communities and practicing meditation in the forests. Monks and nuns were expected to live with a minimum of possessions, which were to be voluntarily provided by the lay community. Lay followers also provided the daily food that monks required, and provided shelter for monks when they were needed. During the Buddha's time, many retreats and gardens were donated by wealthy lay devotees for monks and nuns to stay in during the rainy season.
본 논문은 초기불교 시대 출가자의 주처에 대한 논문이다. 붓다 당시 초기에는 4의지의 하나인 수하좌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나무아래 앉아서 머무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다. 이것은 일정한 주처가 없었음을 의미한다. 실제적으로 붓다와 그 제자들은 유행을 하였고 때로는 도공의 집이나 마을 공회당에도 머물렀고 숲속 공원에서도 머물렀다. 하지만 우기라는 인도의 자연적인 특성은 우기동안 유행생활을 금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우기는 일정기간 유행생활에서 정주생활로의 전환을 가져왔다. 따라서 일정기간 정주하는 주처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곳은 자연발생적인 장소로서 임시로 머물 수 있는 거처이었다.
住處의 형태는 경제력이 있는 신심 깊은 재가신자가 정사를 지어 보시를 하면서부터 큰 변화를 보인다. 마가다국왕 빔비사라가 기부한 까란다 죽림정사(Veḷuvana-kalandakanivāpa), 웨살리의 창녀 암바빨리기 기부한 암바빨리원(Ambapālivana) 슈라바스띠의 거부 아나따핀디까가 기부한 유명한 기원정사(Jetavana Anāthapiṇḍikassārāma) 등이 대표적이다. 정사의 형태도 작은 집에서 규모가 큰 집과 여러 개의 집을 갖춘 건물과 강당 등을 갖춘 모양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는 포살 ․ 갈마 등의 승가행사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비구들의 편의를 도모할 수 있는 經行處(caṅkama) 등 부속시설도 갖추게 되었다. 이와 같이 주처의 형태가 발전함에 따라 주처에 관련되어 파생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제정되게 되었다.
대부분의 정사는 마을에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고요한 장소에 위치하고 있었다. 재가신자가 쉽게 오갈 수 있게 마을에 주처를 마련하는 경우도 있었다. 재가신자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의식주를 해결하는 승가는 오전 중에 걸식을 하여 정사로 돌아올 수 있는 적당한 거리에 정사를 지었다. 재가신자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승가에 정사를 지어 보시하였다.
반면에 비구니의 住處는 성 안쪽으로 마을에서 멀지 않은 대도시 주변에 있었다. 이는 걸식하기 쉽고, 梵行을 지키며 안전하게 수행생활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즉 안녕과 배려를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초기의 불교 출가자는 승원이 마련되어 있었음에 불구하고 유행을 지속하였다는 사실은 간과해서는 안된다. 초기경전에 보이는 붓다에 의한 모든 교설과 제자들 사이의 문답과 토론, 그리고 제 율장의 모든 인연담은 붓다와 그의 제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승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러 지방을 유행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승원들은 그들이 유행하는 데에 있어 수월하게 해주는 장소였다.
분석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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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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