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쾌대의 해방기 행적과 <군상> 연작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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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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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6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609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31-260(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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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해금조치가 단행된 이후 이쾌대는 월북미술가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쾌
대에 대한 많은 연구와 관심은 바로 <군상> 연작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군상> 연작은 아직도 연구자들 사이에서 양식적 연원이나 해석이 분분하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쾌대의 <군상> 연작은 시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글은 이쾌대의 <군상> 연작에 해방기의 시대상이 어떻게 담겨있으며, 해방기 미술의 특징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이 시기 이쾌대의 행적과 작품을 자세히 고찰하였다.
이쾌대는 해방 직후 미술단체에서 활동하며, 민족미술 수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조선미술건설본부의 선전미술대로 활동하며 인쇄미술을 시도했고, 성북회화연구소를 개설해 예비 미술학도를 양성했다. 조선조형예술동맹의 회화부 위원과 조선미술동맹의 서양화 부 위원장으로 선임되어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크고 작은 전시회에 참여하는 등 미술의 대중화를 위해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좌익 세력에 대한 미군정의 탄압이 심해지자 조선미술동맹에서 탈퇴하여 조선미술문화협회를 결성했다. 이쾌대가 이 시기 작품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조선미술문화협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1949년까지 네 차례 열린 《조선미술문화협회전》에 이쾌대는 <군상Ⅰ-해방고지(解放告知)>, <조난>과 같이 시대상을 반영한 야심작들을 발표했다. 그러나 1949년 말 막다른 골목에서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해 사상전향 활동에 동원되었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재건된 조선미술동맹에서 김일성 초상화 제작에 가담했다. 전쟁 중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이쾌대는 1953년 남북한 포로교환 협정 당시 북쪽을 택함으로써 오랫동안 남한 미술사에서 잊힌 작가가 되었다.
<군상> 연작에는 이처럼 역동적인 시대상이 투영되어 있다.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 좌익세력에 대한 대규모 탄압, 점점 남북분단으로 치닫고 있던 복잡다단한 해방기의 모습이 인물들의 다양한 동세와 박진감 넘치는 화면구성으로, 각종 집회가 일상적으로 열리고, 수많은 군중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군상(群像)’으로 형상화되었다. 또 현실의 난관을 극복하고 민족 화합을 통해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남성 이미지를 통해 표현했다. 근육질의 남성 이미지는 해방기 인쇄미술에 보이는 특징중 하나로 힘과 굳은 의지의 상징으로 읽힌다.
한편 <군상> 연작은 미술의 대중화를 위해 이쾌대가 가장 이상적인 장르로 생각했던 벽화를 제작하기 위해 서양의 르네상스 미술부터 프랑스 낭만주의, 후지타 쓰구하루의 전쟁화까지 다양한 양식을 수용하고 모색하는 과정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론된다. 이렇게 볼 때 <군상> 연작은 해방기라는 격변기의 산물이자 이쾌대의 꿈과 이상이 담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Lee Quede received the biggest attention when the forbidden artworks of Wolbuk artists who defected to North Korea had been released in 1988. 〈The Crowd〉 series provoked a significant amount of research and interest towards Lee Quede’s works. However, 〈the Crowd〉 series are still in the middle of the discussions on the origin of style and interpretations. It is clear that 〈the Crowd〉 series contain the spirit of the time.
The purposes of this article are to reveal how the spirit of the time expressed in 〈the Crowd〉 series and to explain the characteristics of art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To pursuit the aim, I firstly examined the trace of Lee Quede. He joined in art organizations and made an effort to establish national-art. As the vice-president of Joseon Art Establishment Alliance, he contributed to communicate with the public.
However, as the suppression of the US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towards the leftist force worsened, he withdrew from the Joseon Fine Arts Alliance, and organized the Joseon Art & Culture Association. With the support of the Joseon Art & Culture Association, Lee Quede was able to continue his practice. He presented his ambitious works, such as 〈Crowd I –HaeBangGoji(解放告知)〉 and 〈Distress〉, in the exhibition of the Joseon Art & Culture Association, which opened four times until 1949. In the end of 1949, Lee joined the National Guidance Alliance and started to form the anticommunist system under the Syngman Rhee Government. During the Korean War, he worked as a painter who depicted the portrait of Kim Il Sung, in the Joseon Fine Arts Alliance. Just before the Korean Army recaptured Seoul on September 28, he was captured by the nation’s forces on his way to North. In 1953 North and South Korea prisoner exchange, he chose North Korea and as a result, he has been forgotten in the art history of South Korea.
〈The Crowd〉 series reflected upon the dynamic life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The complex images of an ideological conflict visualized as the crowd with the various actions of people, the daily rally, etc. Lee depicted the optimistic will to make better world by the unification of two parts and overcome the difficulties. The image of a muscular man was a common feature in the art after the liberation period. It assumed that 〈the Crowd〉 series have been produced in the process of accepting and studying Western styles, from Renaissance art to the 19th century’s French Romanticism and Realism, in order to produce what he thought was an accurate depiction for the public art at that time; a mural painting. In this respect, the series of 〈Crowd of People〉 was significant in its ability to discuss the dynamic time of the liberation period, in order to present the dreams and ideals of Lee Que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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