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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군 역사의 전개 = The Stream of History of Lo-rang Commandery
저자
권오중 (영남대학교)
발행기관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THE INSTITUTE OF THE HUMANITIES YEUNGNAM UNIVERSITY)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8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후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449-474(26쪽)
KCI 피인용횟수
6
제공처
The Lo-rang commandery was set up in 108 BC. in the region of Joseon(朝鮮) which was destroyed by Emperor Wu of the Han dynasty. Lo-rang lasted for a long periods despite of its being located far from the capital and a main residental area of Barbarians, although commandery(郡縣) was the organization that should be continuously managed by the administrative structure. Lo-rang exerted influence on the ancient Korean history as much as its long history over four hundred years. To understand the reasons for its being and its roles, it is necessary to compare two situations between before and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Lo-rang commandery.
Joseon took effective control of the region of the Eastern Barbarians before the establishment of commanderies. Joseon actively admitted displaced and migrated people from China and subjugated adjacent states. Without the intervention of the Han dynasty, the unification of the region of the Eastern Barbarians by Joseon would have been possible. It is also highly feasible that an strong and large territorial kingdom rose early. The establishment of the commanderies of Han drove in a wedge against the possibility. The advent of an ancient kingdom became possible after the fall of the Lo-rang commandery and its form was not integrated but was divided into Koguryo, Baekje and Shilla, diverging from the region of Lo-rang(Daifang).
In these respects it is evaluated that the role and function of the Lo-rang commandery is successful. Although the intention of China, which is to appoint Joseon as an External Vassal before setting up commanderies and then to subjugate the region of the Eastern Barbarians, failed, subjugation by the Lo-rang commandery was successful. That's why Chinese statesmen didn't give up the Lo-rang commandery like an isolated island. In its role, the Lo-rang commandery is different from the counties(commanderies) in China proper which control the subjugation of Barbarians. As the commanderies established in the main residental areas of Barbarians commonly have a function to maintain subjugation, it seems possible to classify the Lo-rang and the similar commanderies as the subjugated commanderies(內屬郡).
漢武帝가 조선지역에 설치한 낙랑군은 4세기 이상의 역사를 유지하였다. 낙랑군과 동시에 설치된 眞番․臨屯郡은 폐지되고, 玄菟郡은 관리가 용이한 지역으로 이전하였음에 반해 낙랑은 본래의 위치에서 시종하였다. 물론 4백여 년의 역사가 한결 같았던 것은 아니다. 중앙의 행정체계가 강하게 작동한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방치된 채 현지 민간의 손에 이끌린 시기도 있었다. 군현이라는 지방행정 기구로서의 모습은 후대로 갈수록 퇴락하였지만, 중요한 사실은 역대의 중국 왕조들(前漢-新-後漢-魏-晉)이 열악한 기구인 낙랑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낙랑이 동이지역에서 수행한 역할 때문으로서, 그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선 낙랑군 설치 이전과 이후의 상황을 비교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낙랑군 설치 이전의 동이지역은 조선이 주도권을 잡던 시기였다. 당시의 조선은 중국(漢)에서 망명한 유이민들을 적극 수용하면서 주변국을 복속시켜 나갔다. 한제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조선에 의한 동이지역의 일원화를 가정해 볼 만한 상황이었다. 또한 조선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영토국가나 고대국가가 조기에 출현하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과는 반대로 중국이 군현을 설치한 일은 이러한 흐름에 쐐기를 박는 일이었다. 중국이 동이지역에 통치기구인 군현을 설치한 일 자체가 그러할 뿐 아니라, 일원화를 지향하던 지역에 4개의 군 그리고 다수의 현을 설치하여 분할을 도모하였던 것이다. 다수의 군현을 설치한 일은 조선 또는 동이지역에 대한 분할이자 분산이었다. 군현이 몰락한 이후에도 동이의 일원화는 성취되지 못하였다. 고대국가의 출현은 낙랑군 소멸 이후에야 가능했으며, 그 형태도 통합된 것이 아니라 낙랑(대방)의 소재지를 분기점으로 하여 고구려․백제․신라로 분할된 형태였다.
동이지역에서 국가의 발전단계가 지연되었다는 사실이나 국가의 출현 형태도 통합된 형태가 아닌 분할된 구도를 보였다는 사실은 낙랑군의 영향력을 실감하기에 충분하다. 낙랑군의 존재로 인해 동이지역의 국가들은 성립과 발전에 장애를 받았다. 이점에서 낙랑군은 부여된 역할과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군현을 설치하기 이전 조선을 외신으로 삼아 동이지역의 內屬을 관리하려는 중국의 의도가 실패하였음에 반해 낙랑군을 통한 동이 지역의 내속 관리는 성공적이었다. 이 때문에 중국의 위정자들은 孤島와도 같은 낙랑군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낙랑은 오랜 수명을 누릴 수 있었다. 한편 낙랑군은 기능 면에서 볼 때 일반 군(內郡)과는 달리 夷人의 내속을 관리한다는 특별한 기능을 갖고 있었다. 내속 관리의 기능은 낙랑군과 같이 이인의 본거지에 설치된 군현에 공유된 내용으로서, 이점에서 낙랑군과 유사한 군에 대해선 일반 군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 분류가 필요하다고 본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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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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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95 | 0.95 | 0.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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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 | 0.76 | 1.328 | 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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