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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 乾隆年間 八旗漢軍 出旗 정책의 樣相과 그 영향 ― 出旗 허용 정책과 出旗 강제 정책의 분석을 중심으로 ― = The Chinese-martial bannermen(Hanjun) Expulsion Policies and Their Effects on the Qianlong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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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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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186(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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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乾隆 年間에 실시된 八旗漢軍 出旗 정책을 출기 허용 정책과 출기 강제 정책으로 나눈 뒤 그 영향을 분석한 글이다. 이와 관련된 기존 연구는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출기한 한군 기인의 수를 부정확하게 산출한 채 그 영향을 논하였다. 둘째, 출기 정책의 목표ㆍ시행 대상ㆍ실시 방법이 상이했던 출기 허용 정책과 출기 강제 정책 간의 차이에 주목하지 않았다. 셋째, 출기 정책의 실시를 전후하여 팔기한군에 발생한 변화를 살펴보는 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에 본 논문은 팔기한군 출기 정책과 관련된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각각의 출기 정책을 세분하여 그 영향을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논의의 범주는 八旗 내 漢人 출신 기인 중 八旗漢軍 旗籍에 속한 자로 국한하였다.
순치~옹정 연간, 漢軍 旗人의 수가 지나치게 증가하여 官兵으로 복무하지 못하는 閑散 旗人의 수가 늘어났다. 기인의 경우 문무 관원이나 팔기 관병으로 근무하는 것 외에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이로 인해 팔기한군 내 閑散 기인의 증가는 한군 기인의 생계 문제로 직결되었다. 건륭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방안으로 한군 기인의 수 자체를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이후 건륭 말까지 京師와 駐防에서 팔기한군을 대상으로 출기 허용 혹은 출기 강제 정책이 시행되었다.
일반적으로 청이 중국 통일 전쟁을 수행한 기간에는 팔기한군이 비교적 높은 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淸初부터 팔기한군의 지위는 팔기만주ㆍ팔기몽고ㆍ팔기한군 중 가장 낮았다. 이는 팔기한군의 몫으로 할당된 문무관원ㆍ팔기관병 직의 수가 그 규모에 비해 현격히 적었던 것을 통해 확인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구 과잉 문제가 가장 심각했던 팔기한군을 대상으로 출기 정책이 시행된 것은 一見 자연스럽다. 단 청이 入關하기 이전부터 팔기에 속했던 한군 기인은 일반 한군 기인에 비해 우대를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入關 한군 중에서도 엘리트 계층에 속한 자는 팔기만주나 팔기몽고 소속 엘리트 기인과 유사한 대우를 받았다. 팔기한군 내부의 이러한 계층 차이는 출기 허용 대상을 선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건륭 7년(1742)부터는 출기 허용 정책이 실시되었다. 이 정책은 팔기한군 내부의 인구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기획되었으며 실시 초기에는 京師에서만 시행되었으나 후에 內地 駐防까지 확대되었다. 옹정 8년(1730과 건륭 3년(1738) 팔기한군의 兵額을 일부 늘려 일자리를 추가로 마련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군 기인의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잡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출기 허용 정책은 자발적 출기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강제성은 없었다. 또 각 단계별로 출기를 허용하는 자와 불허하는 자를 별도로 규정하였다. 출기 허용 대상을 규정하는 조항이 건륭 55년(1790)까지 개정되는 것으로 보았을 때 중단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실시된 것을 알 수 있다. 정책의 주된 대상은 팔기한군 내 하급 관병이나 閑散 기인이었다. 入關 漢軍의 후손은 정책이 최초로 실시된 이후 20년 간 출기가 불허되었다. 입관 한군 내에서도 팔기한군 내 니루를 세습해온 집안 출신은 본인이 원하는 경우에도 출기할 수 없었다. 이 정책으로 출기된 한군 기인의 수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다. 다만 건륭 연간의 팔기한군 출기 정책을 통틀어 한군 기인의 규모가 약 60% 감소하였을 것으로 추산되고,...
The present study divides the Chinese-martial bannermen expulsion policies implemented during the reign of the Qianlong Emperor(1735-96) into the withdrawal permission policy and the forced expulsion policy and analyzes their effects. Based on accurate statistics related to the Chinese-martial bannermen expulsion policies, it focuses on breaking down and elucidating the effects of each expulsion policy. The scope of discussions is limited to those on Chinese-martial bannermen household registers from among Chinese-martial Bannermen in the Eight Banners.
In general, the Chinese-martial bannermen are known to have received a comparatively favorable treatment during the Qing Dynasty’s engagement in wars to unify China. From the early years of the dynasty, however, the Chinese-martial bannermen were far lower in status than the Manchu Eight Bannermen and the Mongol Eight Bannermen. This is confirmed by the fact that the numbers of both civil and military officials and posts of Eight Banner officers and soldiers allocated to the Chinese-martial bannermen were disproportionately small. Amidst such a situation, it is seemingly natural for expulsion policies to have been implemented on the Chinese-martial bannermen, for whom the problem of overpopulation was the gravest. However, it must be noted that Chinese-martial bannermen belonging to the Eight Banners even before the Qing Dynasty’s entry through Shanhai Pass to conquer Beijing were treated better than other, ordinary Chinese-martial bannermen. Even out of Chinese-martial bannermen who had thus passed Shanhai Pass, those from the elite class received treatment similar to elite Bannermen belonging to the Manchu Eight Bannermen and the Mongol Eight Bannermen. Such class differences among the Chinese-martial bannermen affected the selection of those who would be allowed to leave the Eight Banners.
Starting in the 7th year of the Qianlong Emperor’s reign (1742), the withdrawal permission policy was implemented. Planned to resolve the problem of overpopulation among the Chinese-martial bannermen, this policy was implemented only in the capital at first but subsequently expanded to Garrisons in China proper also. In the 8th year of the Yongzheng Emperor’s reign(1722-35) and the 3rd year of the Qianlong Emperor’s reign (1738), the number of troops assigned to the Chinese-martial bannermen was partly increased in order to create additional jobs as well. However, such measures were inadequate for accommodating the rate of population increase among Chinese-martial bannermen. The withdrawal permission policy was implemented by allowing voluntary withdrawal and did not involve coercion. In addition, those to whom withdrawal would be allowed and those to whom it would be prohibited were separately regulated at each stage. Judging from the fact that clauses regulating the objects of permission to withdraw were revised up to the 55th year of the Qianlong Emperor’s reign (1790), it is clear that this policy was implemented continuously without interruption. The main objects of the policy were low-ranking officers and soldiers and idle Bannermen from among the Chinese-martial bannermen. Descendents of Chinese-martial bannermen who had entered through Shanhai Pass were barred from withdrawal for 20 years following the initial implementation of this policy. Out of Chinese-martial bannermen who had entered through Shanhai Pass, those from families who had successively inherited niru in the Chinese-martial bannermen could not withdraw even if they wished to. It is impossible to grasp the exact number of Chinese-martial bannermen who were expulsed because of this policy. However, the number of Chinese-martial bannermen is estimated to have decreased by approximately 60% throughout the period in which the Chinese-martial bannermen expulsion policies were implemented under the Qianlong Emperor, half of whom would have left as an effect of the forced expulsion policy. Consequently, appr...
분석정보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7 | 평가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1-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 2018-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 2015-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 2011-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 2009-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 2007-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 2004-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 2003-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 2001-07-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1.76 | 1.76 | 1.35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1.17 | 0.99 | 1.779 | 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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