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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濟州島의 육군 재건과 방어체계 변화 = Reconstruction of the Land Forces and Changes in Defense System of the 17th Century Jeju 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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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둥 (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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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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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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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on suffered from the Manchurian menace, while suffering the aftermath of Imjin War in the 17th century. Jeju Island was the southern frontier and the main breeding area of warhorses. Joseon government had to concern the defense of Jeju Island while investing military capability for preparation against the Manchus. Meanwhile, statewide changes in military system of the 17th century might also have influenced that of Jeju Island.
In the early 17th century, Jeju Island was experiencing severe lack of military troops, to the extent of mobilizing women for the defense of fortresses. Most of taxations in Jeju Island were imposed as Tributes and Corvee Labor on the enlisted people. The enlisted people of Jeju Island escaped the Island or enslaved themselves in order to evade the burden. The government tried to restrain this, but it was not effective. Furthermore, frequent shipwreck when transferring the tributes was another endemic factor which led to lack of the enlisted. Meanwhile, Jeju Island was receiving supports from Jeolla Province such as Yubangbyeong(留防兵 ; Reinforcements from from provincial headquarter) and dispatch of coastal garrisons in emergency. However, constant military support from the land was aborted because of the Imjin War and the Manchurian menace.
In this situation, statewide changes in the military system formed the foundation of rebuilding the army in Jeju Island. With the introduction of Sogogun(束伍軍), a systemized mobilization of the slaves, Jeju Island reinforced the number of troops. As a result, Sogogun became the main unit of Jeju Island land forces. In the chain of command for Jeju Island Sogogun, Jeju Moksa(濟州牧使, Magistrate of Jeju-mok) positioned the highest, while Jeongui Hyeongam(旌義縣監 ; Magistrate of Jeongui-hyeon) and Daejeong Hyeongam(大靜縣監 ; Magistrate of Daejeong-hyeon) were excluded. Besides, the defense sector of the island was divided into three Bu (部 ; Brigade), where Jeju-yeong(濟州營 ; Jeju Military Headquarter) consisted Jung-bu(Central Brigade), and Byeolbang Banghoso 防護所 ; Garrisoned Post) and Myeongwol Banghoso, which were under control of Jeju-mok, were positioned as the center of each Jwa-bu (Left Brigade) and U-bu(Right Brigade). As a result, even though Jeju Moksa was not one of Yeongjang(營將, Military Division Commander), Jeju Moksa could carry the similar authority as Yeongjang in effect. The Jeju Island land forces assumed a central role in the defensive system in the overall context that weakened the naval forces of the island.
17세기 조선은 임진전쟁의 후유증 속에서 만주족의 위협에 시달렸다. 제주도는 남쪽 변방이면서 전쟁에서 중요한 戰馬의 주요 생산지였다. 조선은 만주족에 대한 대비에 군사적 역량을 쏟으면서도 제주도의 방어에 신경써야 했다. 한편으로 17세기에 진행되었던 전국적인 군제 변화는 제주도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17세기 초반 제주도는 守城에 여성까지 동원할 정도로 육군 병력의 심각한 부족을 겪고 있었다. 제주도는 대부분의 과세 기준이 공물과 요역에 매겨졌고, 군역 대상층에게 부담하도록 했다. 제주도의 군역 대상층은 부담을 회피하고자 섬을 이탈하거나 노비로 투탁했다. 조정은 이를 억제하려고 했지만, 실효를 거두긴 어려웠다. 또한 공물 이송 등에서 발생하는 빈번한 선박 사고 역시 섬의 군역 대상층을 부족하게 만드는 고질적인 요인 중 하나였다. 한편 제주도는 전라도로부터의 유방병과 유사시 연해 기지의 병력 파견 등도 지원받고 있었다. 그렇지만 육지로부터의 항시적인 군사적 지원은 임진전쟁과 만주족의 위협 속에서 중단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적인 군제 변화는 제주도가 육군을 재건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제주도는 노비층의 동원을 제도화한 속오군의 도입을 통해 병력을 대폭 증강시켰다. 그 결과 속오군은 제주도 육군의 주력으로 자리했다. 제주도는 속오군의 지휘체계에서 濟州牧使를 정점으로 두면서 旌義縣監과 大靜縣監을 배제시켰다. 또한 섬의 방어구역을 3部로 나누면서 제주영에 중부를 두고, 제주목에 속한 別防·明月방호소를 각각 좌·우부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제주목사는 영장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영장에 준하는 권한을 지닐 수 있었다. 이렇게 마련된 제주도의 육군은 섬의 수군 전력이 약해지는 경향 속에서 방어체계의 주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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