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연국 논문 : 비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미학(1): 감정이입에서 능동적인 소통으로 = Non-Aristotelian Aesthetics of Theater (1): From Empathy to Active Communication
저자
발행기관
한국미학예술학회(The Korean Society of Aesthetics and Science of Art)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1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600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발행기관 URL
수록면
143-176(34쪽)
제공처
19세기까지 서양 연극사의 주된 흐름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카타르시스를 비극의 목적으로 규정하는데, 그것은 감정이입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즉, 관객들은 감정이입을 통해 등장인물에 몰입함으로써 주인공이 겪는 상황을 자신의 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감정이입이 원활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대 위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 연극이 아니라 마치 현실인 것처럼 보여야 한다. 감정이입과 이를 위한 극적 환상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의 본질이며, 19세기까지 서양 연극사는 이러한 극적 환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전통적인 연극이 감정이입을 목적으로 극적 환상에 치중함으로써 관객의 비판적 의식을 저해한다고 생각했다. 즉,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통해 등장인물의 지각과 감정, 인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가 요구한 것은 관객이 극중에서 진행되는 사건에 대해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관객의 감정이 아닌 이성에 호소해야 하는데, 무대 위의 사건이 현실이 아니라 연극임을 분명히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극에 몰입하는 대신 그로부터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서사극은 생소화 효과를 통해 극적 환상을 파괴함으로써 관객의 감정이 아닌 이성에 호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에서 관객들이 생각하고 행동할 권한을 무대에 위임한 채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과는 달리, 브레히트의 관객들은 생각할 권한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행동의 권한은 여전히 무대에 위임한 상태이기 때문에, 연극에서의 경험은 의식의 수준에서 나타날 뿐 행동의 수준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에 반해, 보알의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은 생각할 권한뿐만 아니라 행동할 권한도 관객들이 갖도록 한다. 즉, 관객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관객을 더 이상 공연의 대상이 아니라 그 주체가 되게끔 하는 것으로, 연극을 통해 사유와 행동의 능력을 복원함으로써 그들이 현실에서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끔 하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연극은 현실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예행연습이다. 브레히트와 보알에게 있어, 연극은 감정의 세척장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소통하는 하나의 장(場)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들은 관객을 연극의 객체에서 소통의 주체로 전환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브레히트에게 있어 그러한 소통이 의식의 차원에 제한되어 있었던 데 반해, 보알은 그것을 행위의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킴으로써 배우와 관객 사이의 구분을 철폐하고자 한다. 무대와 객석 사이의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의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은 적어도 지금까지의 서양 연극사에서는 가장 민주적인 형태의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더보기Up to the 19th century, the main stream in the history of the western theater has been the aristotelian. In Poetics Aristotle defined catharsis as the aim of the tragedy, and it sets empathy forth as a premise. By virtue of the empathy, the spectator experiences the circumstances of the dramatic characters as his own. To make the spectator to easily identify himself with the character, the happenings on the stage need to look like a reality, not a fiction. This theatrical illusion is the essence of the aristotelian theater, and western theater has developed in the direction of reinforcing the illusion until the 19th century. Bertolt Brecht thought that the traditional theater hindered the spectator in his critical thought. According to him, in the theater pursuing empathy and theatrical illusion the spectator uncritically accepts the character`s perception, emotion and understanding. He wanted that the spectator took an active and critical stand instead of a passive attitude on the incident on the stage. Thus his epic theater aims at destroying the theatrical illusion through Verfremdungseffekt, and so appealing not to the spectator`s emotion but to his reason. In the aristotelian theater, the spectator delegates power to the dramatic character so that the latter may think and act in his place. Differently from him, Brecht`s spectator has the right to think for himself, but still delegates power to act to the character. So his experience is revealing on the level of consciousness, but not globally on the level of the action. In Augusto Boal`s theater of the oppressed, on the contrary, the spectator no longer delegates power to the characters either to think or to act in his place: he thinks and acts for himself. He is no longer an object of the theater, but becomes a subject of it. The aim of the theater of the oppressed is for the spectator to recover ability to think and to act through the theater, so to ready him for a subject of his real life. In this respect, the theater is a rehearsal of reality. For Brecht and Boal, the theater was not a laundry of emotion but a field for communication. And in it they tried to change the spectator from an object of the theater to a subject of the communication. For Brecht the communication was restricted to the level of consciousness, but Boal extended it to the level of action and so intended to abolish the distinction between actor and spectator. Consequently, his theater of the oppressed, in the respect of the communication between stage and audience, is the most democratic form of theater in the history of western theater up to now.
더보기분석정보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