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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에서 근세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 How to Understand the Early Modern in Chinese History
저자
홍성화 (부산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4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375-417(43쪽)
제공처
본고에서는 기존 근세에 관한 연구를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필자만의 견해를 제시하였다. 이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월러스틴, 프랑크, 포메란츠의 논의는 서로의 논점은 각각 다르지만, 어떤 일관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논의는 16세기 이후 세계경제를 일국사가 아니라, 다국가 간의 교역 네트워크(세계체제)을 중심으로 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고, 그리고 유럽과 중국의 발전 차이를 각 사회의 속성으로 귀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역상 네트워크에서의 위치, 즉 외부적인 요인으로 귀결시킨다는 점, 유럽의 우위는 점차 시대가 뒤로 갈수록 매우 우연적인 것으로 파악하였다.
나이토 코난과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송 대 이후부터 아편전쟁 이전 시기까지를 ‘근세’라고 규정하였다. 이에 1990년대부터 새로운 근세에 대해서 새로운 제시가 이루어졌다. 기시모토 미오는 16세기 은 경제에 편입된 이후 아편전쟁 시기까지 유동성이 높은 중국사회를 ‘근세’라고 규정하였다. 미야지마 히로시는 소농사회에 성립한 주자학은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즉 소농사회=주자학=합리적=근대사회라고 주장한다.
본고에서는 송 초부터 명 중기까지를 전기 근세, 명 중기부터 아편전쟁 시기까지를 후기 근세로 각각 나누고, 그 특징을 밝히고자 한다. 전기 근세는 동아시아‧동남아시아와의 무역을 중심으로 하고, 후기 근세는 여기에 더하여 서양과의 무역이 본격화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전기 근세에서 유동성이 나타나는 부분은 나이토 코난의 지적대로 귀족층을 대신한 사대부층의 등장이며, 이는 사회경제적 요인보다도 과거제도라는 제도적 요인이 상대적으로 컸다. ‘후기 근세’의 경우는 제도적 요인보다는 화폐경제라는 경제적 요인이 더욱 컸으며, 이제는 농민층까지 유동성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후기 근세가 되면서 신사가 아닌 다른 계층들도 서로의 단결을 강화하며), 유동성이 높은 세상에 대처하였다. 즉 유동성가 높아질수록, 불안도가 높아져서 주변의 인적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할 수 있다.
신사들의 행동 반경 내지 교제 범위는 대체로 20-30킬로미터로 일개 현(縣)의 범위를 넘지 않았다. 이처럼 신사는 지역사회를 근거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지역사회를 넘어선 광역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동기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광역적인 공적 영역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1905년 과거제가 폐지되면서 유교적인 공적 영역이 존재하지 않게 되면서 오로지 사적 영역을 탐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보신적인 태도는 근대시기에 자기 변신을 불가능하게 하였고, 결국 모택동에게 타도의 대상이 되어, 1949년 이후 사라져 갔다. 다시 말하지만, 1949년 이후 중국현대사는 후기 근세시기 과잉한 유동성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라는 문제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paper summarizes the existing research on ‘the early modern’ and presents my own views based on it. It can be said that the discussions of Wallerstein, Frank, and Pomerantz show some consistent flow, although their issues are different. Their discussions are common in that they view the global economy after the 16th century as a center of a trade network between multiple countries rather than a one-country history, and that the difference in development between Europe and China does not result in the nature of each society, but rather in its position in the trade network, that is, an external factor. It was found that Europe’s dominance was gradually very accidental as the times went back.
Konan Naito and Ichisada Miyazaki defined the period from the Song Dynasty to before the Opium War as ‘the early modern’. Accordingly, new suggestions were made on the definition of ‘the early modern’ from the 1990s. Mio Kishimoto defined Chinese society with high liquidity as the ‘the early modern’ after it was incorporated into the silver economy in the 16th century until the Opium War. Hiroshi Miyajima argues that the Neo-Confucianism established in a small-farm society has ‘confucian modernity.’ This paper classifies the period from the early Song dynasty to the mid-Ming dynasty as “the earlier early modern,” and from the mid-Ming dynasty to the Opium War as “the later early modern, ” with an aim to clarify the characteristics of each. The earlier early modern was centered on trade with East and Southeast Asia, and the later early modern era was a period when trade with the West began in earnest.The stronger the liquidity, the greater the unity of civil society for survival, and the state power had no choice but to neglect it. However, when the Qing emperor had strong authority, integration was possible, but the Revolution of 1911 made this impossible.
This self-reform was impossible in the modern era, and eventually became the object of overthrow by Mao Zedong, and disappeared after 1949. Again, after 1949, it can be said that modern Chinese history began with the question of how to control excessive liquidity in the later early moder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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