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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高宗代 李奎承의 望京庵 重修에 관한 고찰 = In the late 19th, consideration about the repair of Mangkyung-am Temple by Lee Gyu Se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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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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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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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6(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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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망경암에 대한 기존의 견해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재고하고, 망경암 조성에 관하여 고찰하였다.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망경암마애여래좌상 주변에 각자된 명문을 분석하고, 망경암칠성대중수비와 망경암소비의 비문을 살펴 망경암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조명하고자 하였다.
먼저 망경암을 왕실 주도의 원찰로 보고,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기까지 왕들이 친히 행차하여 제의하였다는 견해를 재고하였다. 이 같은 의견은 망경암칠성대중수비의 명문과 망경암칠성대 각자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중수비의 명문에 따라 망경암의 조성시기를 고려시대까지 소급할 수도 있겠으나, 문헌상에 확인된 바는 없다. 따라서 왕들이 친히 제의를 행한 암자로 보기는 어렵고, 원찰의 기능을 했던 망경암 인근 봉국사의 영향으로 형성된 설화가 전승된 것이라고 추정된다.
망경암 칠성대 명문에 조선전기 인물인 평원대군과 제안대군이 각자되어 있고, 왕과 왕실의 일원이 각자되어 있어 망경암이 왕실주도의 사찰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소비와 중수비의 명문 분석을 통해 이 각자를 새긴 주체는 왕실이 아닌 망경암 조성자 이규승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칠성대 명문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19세기 말 고종대 일정기간동안 각자되었 으며, 대한제국 이전과 이후 두 차례 이상 시간차를 두고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망경암과 칠성대를 조성한 이규승은 칠성신앙과 불교를 바탕으로 왕실을 축원하고, 개인적인 구복행위를 하였다. 이러한 제의행위는 평원대군과 제안대군의 祀孫으로 정해진 1872년경부터 시작되었다고 추정되며, 망경암 칠성대각자도 이 무렵부터 각석되었다고 짐작된다. 망경암칠성대에서 이루어진 제의행위를 배경으로 이규승은 관료로 진출하게 되었고, 그의 아들 이용호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영락했던 그의 집안이 경성 부호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번성할 수 있었다.
망경암은 이규승 개인의 염원과 더불어 19세기 말 고종대의 역사가 투영되어 있다. 따라서 망경암에 관한 역사적 사실관계를 논의함으로써 망경암의 문화재적 가치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This thesis reconsiderated the previous opinions about Mangkyung-am Temple based on the historical facts and studied building up Mangkyung-am Temple. This thesis analyzed the inscription on Mangkyung-am-ma-ae-yeolae seated statue, which was designated as intangible cultural asset, then illuminated the historical facts about Mangkyung-am Temple, with the epitaph on Mangkyung-am Chilsung-dae- jungsu stele and Mangkyung-am-so stele.
First, I regard Mangkyung-am Temple as the royal temple and reconsiderated the opinion that Kings from the end of Goryeo Dynastyto the early Joseon Dynasty visited and ancestral rites personally. This opinion is based on the epitaph of Mangkyung-am Chilsung-dae-jungsu stele and the inscription of Mangkyung-am-so stele built by LeeGyuseung. The period of making Mangkyung-am Temple can be hold to be the Goryeo Dynasty but it isn’t sure. So, this hermitage cannot be the place the kings performed ancestral rites personally, and it is presumed that the tale was handed down by Boungguksa Temple around Mangkyung-am Temple.
The epitaph has the names of Pyungwondaegun and Jaeandaegun who were figures during the early days of the Joseon Dynasty, because there were also the members’names of royal family. That’s the reason Mangkyung-am Temple has been regarded as the royal family’s. But through the analysis of the inscription on them, the main agent of Mangkyung-am Temple is LeeGyuseung not the royal family. Besides, the result of the analysis tells this inscription was made during Gojongdae in the late 19th and that it was made in twice on different timetables.
LeeGyuseung prayed personal subsistence and the royal family based on Chilsung religious belief and Buddhism. His action of memorial service was begun since 1872 when Pyungwondaegun and Jaeandaegun were appointed Sasuon, which means people should hold a memorial service for their ancestors, the epitaph of Mangkyung-am Chilsung-dae-jungsu stele is estimated at those days. This proved by the part it was 20 years when LeeGyuseung prayed for good fortune at the inscription of Sobi in 1893.
Due to this action of memorial service at Mangkyung-am Chilsung-dae, LeeGyuseung launched into politics and it affected his son, LeeYoungho, his poor family got to be rich. Mangkyung-am Temple by personal wish and the history of Gojongdae in the late 19th. Therefore, the cultural assets value of Mangkyung-am Temple is improved since the historical fact relation about Mangkyung-am Temple has been discussed.
분석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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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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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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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29 | 0.29 | 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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