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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인의 은행 경영과 식민지 주주자본주의-1920년대 경상공립은행의 설립과 경영- = Japanese’s Bank Management and Colonial Shareholder Capitalism During Japanese Rule: Focused on the Establishment and Management of Gyungsang Gonglip Bank During 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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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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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250(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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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have two goals. The first goal is to examine the founders, the establishment process, the management fluctuation, and the relationship with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of Gyungsang Public Bank(GPB). The second is to make it clear that the case of GPB is nothing but so-called shareholder capitalism because GPB was faithful only to the interest of shareholders. This is different from research results which existing studies have stressed on financing for colonial development. The results of this paper are as follows.
Firstly, Founded in July 1920, GPB was a purely Japanese bank in the sense that most of its shareholders were from Kagawa Prefeture Japan. If we take into consideration that many banks have Korean and Japanese shareholders commonly, the case of GPB was a rare one because GPB consisted of only Japanese shareholders.
Secondly, Masakazu Miyai, who led the establishment of GPB, amassed a fortune from money-lending business, pottery manufacturing, warehousing, financial business, rice-cleaning business. Also, he was famous as a rice dealer in Daegu. Miyai’s path of wealth accumulation was true of the Japanese wealthy people in Daegu at that time.
Thirdly, GPB existed exactly for 10 years since its establishment in July 1920 until the approval of its merger with Gyungil Bank in September 1930. Instead of thinking about the public nature of the bank, Miyai focused on only making money thoroughly. GPB appreciated secured property offered by borrowers very conservatively and lent at most about 60% of appraised value. Loans were also made centering around bill discount and loans on bills, which guaranteed high commissions.
Miyai tried to quit banking and go back to Japan when monitoring on banks became strict since revision of bank act in 1929. He could not manage GPB like a money lender under the new reinforced regulations on banking. It was the reason why Miyai responded positively the offer of acquisition to Gyungil Bank by Chosun Bank, which was the central bank of colonial Korea. In conclusion, GPB’s case was the typical case of so-called shareholder capitalism.
이 논문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 1920년 7월부터 10년 동안 대구에 존재했던 경상공립은행을 대상으로 설립주체, 설립과정, 경영변동, 조선총독부의 은행합동정책과의 관계를 검토하는 것이다. 둘째, 식민지 개발을 위한 자금조달의 측면을 강조했던 선행 연구와 달리 일본인들에 의한 공립은행의 경영 사례가 일제강점기라는 정치적 상황 하에서 오직 일본인 주주들의 이익에만 충실했던 주주자본주의였음을 해명하고자 했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1920년 7월에 설립된 공립은행은 대구에 본점을 두었지만 주주의 대부분이 가가와현에 거주하는 ‘순수한’ 일본인 은행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설립된 은행들이 그 구성비율에 차이가 있어도 조선인과 일본인이 주주로서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했음을 고려한다면 공립은행은 일본인들만으로 구성된 이례적인 은행이었다.
둘째, 공립은행의 설립을 주도한 미야이(宮井正一)의 축재 경로는 대금업, 도기제조업, 창고금융업, 정미업, 미곡거래업이었다. 당시 대구의 주요 일본인들이 종사했던 분야였다. 미야이의 축재 경로는 당시 대구의 일본인 자산가들이 걸었던 전형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공립은행은 1920년 7월에 설립되어 1930년 9월 임시주주총회에서 경일은행과의 합병안을 승인할 때까지 정확히 만 10년 동안 존재했었다. 은행의 ‘공공적 성질’을 생각하지 않고 ‘철두철미 실리 본위’로 돈을 버는 것에만 집중했다. 10년 동안 이어진 공립은행의 퍼포먼스는 ‘주주자본주의’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넷째, 대출도 상대적으로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어음할인이나 어음대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담보물도 지극히 보수적으로 평가했으며, 평가한 금액에 대해서도 대체로 60%만을 대출해 주었다. 하지만 1929년 개정 은행령에 의해 감독이 강화되면서 대금업자식의 ‘미야이식’ 은행 경영이 어려워졌다. 미야이가 은행업을 폐업을 고려한 것도 경일은행과의 합병에 적극적으로 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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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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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8 | 0.68 | 0.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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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 | 0.54 | 1.276 | 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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