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1635년(인조 13) 현풍현감 김세렴의 『포산지』 편찬 = Hyeonpung Hyeon Mayor Kim Seryeom`s Compiling Posanji in 1635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6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71-314(44쪽)
KCI 피인용횟수
10
제공처
소장기관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苞山志』(古2758-1)는 조선 중기 현풍현의 읍지이다. 이 읍지는 표지까지 합쳐 69장 137면의 필사본이며 모두 45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표지에 찍힌 붉은 색 印記는 1741년부터 1745년까지 현풍현감이었던 朴致文 소장본이었음을 보여준다. 『동명집』과 현풍면에 남아 있는 김세렴 인정비에는 金世濂이 『포산지』를 편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포산지』에 실린 기록의 하한인 풍영대 제명 석각이 1634년 5월 16일이고, 제영 뒤의 遺事들은 원문을 많게는 2/7까지 줄였는데, 이 과정에서 학식과 덕망이 뛰어난 김세렴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따라서 『포산지』는 현풍현감 김세렴이 중심이 되어 1634년 시작하여 1635년경에 편찬하였음이 분명하다. 자료의 수집과 편찬 과정에서는 풍영대에 함께 이름을 새겼던 제자들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인조반정과 북인의 몰락이라는 정국의 위협 속에서, 과거 현풍 지역 인물들이 조식과의 학문적 연원이 깊음에도 불구하고, 김세렴과 현풍 사족들은 현양할 인물과 지리 정보들을 김굉필, 이황, 정구로 연결 짓고자 하였다. 그러나 『포산지』 곳곳에는 현풍 사회를 주도해온 북인계의 흔적이 보인다. 조식의 제자이며, 박성·곽준의 스승인 裵紳을 높이려는 지역 사회의 노력은 조정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곽율은 조식의 제자로 배신·김부륜·김우옹과 서로 학문과 덕을 닦았으며 박성·곽준과 종유하였다. 정구 신도비와 박성 행장에서는 정구와 박성이 정인홍과 관계를 단절한 내용을 부각시켰다. 곽준 신도비에는 증조부인 곽승화가 김굉필과 더불어 김종직의 문하에서 종유한 사실은 나오나, 스승인 배신이나 조식에 대한 기록은 없다. 곽율, 박성, 곽준, 곽재우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특히 곽준은 황석산성의 영웅으로 국가로부터 포상 받은 인물이다. 곽재우전은 한 면이 떨어져 나갔지만 배대유가 지은 것이다. 배대유는 조식의 再傳弟子로 광해군 때 폐모론을 주도하였다. 곽재우전 뒤에 협주로 곽재우가 영창대군을 주살하려는데 반대하여 올린 상소가 실려 있는데 이것은 역모 사건이 빈번했던 인조 정권 아래서 비판 세력의 예봉을 피하기 위한 장치였다. 요컨대 『포산지』는 북인계 남인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김세렴과 현풍 지역의 사족들이 중앙 정계의 주요 남인 세력들과 연결하여 지역 인물을 현양을 하고, 이를 통해 역모에 희생되지 않기 위한 생존 투쟁의 결과물로 여겨진다.
더보기Posanji(古2758-1), which is kept in the National Library of Korea, is a record of Hyeonpung Hyun, in the mid-Joseon dynasty. This record comprises 69 sheets of paper with 137 pages of manuscript with 45 items. The red stamp on the cover of the book shows that its owner was Park Chimun, who was the mayor of the Hyeonpung Hyun from 1741 to 1745. According to Posanji, Pungyeongdae Stone Monument was named on May 16, 1634. The historic records after the poetry recital section of the book shows that the poems were shortened from the original ones. In the Appreciation Monument of Kim Seryeom, which remained in Hyeonpung Myeon, was recorded that it was he who compiled Posanji. From these records, it seems Kim Seryeom was indeed the main compiler of Posanji. He possessed such excellent writing skills that he was sent to Japan as a diplomat less than a year after he left his post as Hyeonpung Hyeon mayor. Posanji was compiled around 1635(the 13th Year of King Injo) but begun sometime in 1634. We can see traces of the Northerners who were leading Hyeonpung society. The local community`s effort to promote Bae Shin, Jo Sik`s disciple, was not accepted. Bae Shin was a teacher of Park Seoung, Kwak Yul and Kwak Jun. Despite the fact that local figures in Hyeonpung in the past were deeply connected academically to Jo Sik, Kim Seryeom and certain Hyeonpung gentries connected local famous people and geographical information to Kim Goengpil, Lee Hwang and Jeong Gu. Kwak Yul, Park Seong, Kwak Jun and Kwak Jaewoo raised volunteer armie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Kwak Jun was rewarded by the government as a hero of the Hwangseok Wall battle. A piece of the Kwak Jaewoo biography section in the Posanji was lost, but it was written by Bae Daeyu who was Jo Sik`s disciple and led the Decrowning of the Queen Movement during the Prince Gwanghae period. The commentary at the back of the Kwak Jaewoo biography recorded that Kwak Jaewoo wrote the opposing appeal to put Prince Yeongchang to death. This was their plan to avoid the impetuously harsh charge from the critical forces under King Injo`s rule when treason was prevalent. In summary Posanji was the result of Kim Seryum and Hyeonpung gentry`s struggle to survive who were pro-Northerner Southerners. They made a connection with the major Southerners in the central government and promoted local scholars so that they would not become a scapegoat of tr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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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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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3 | 통합 |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2-28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퇴계학과 한국문화 -> 퇴계학과 유교문화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6-08-23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퇴계학과 학국문화 -> 퇴계학과 한국문화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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