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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연변 지역 경영 - 柵城과 新城을 중심으로 - = Koguryo’s Rule in the Yanbian Region: Flatland Fortresses and New Fortresses
저자
임기환 (서울교육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53-100(48쪽)
KCI 피인용횟수
26
제공처
This paper examines Koguryo’s ruling methods for the Yanbian (延邊)region of Jilin (吉林) province in China from the fourth century. Yongil,located in northeastern Koguryo (高句麗), was the center of Northern Okgeo (北沃沮) until the third century. Koguryo, advancing into the region, secured a territorial foothold, building a flatland fortress from King Taejo’s (太祖王) rule, and prepared another base, constructing the new fortresses (新城), fortress, during the King Seochon’s (西川王) rule.
Total control by Koguryo over the Yanbian region came during the reign of King Kwanggaeto (廣開土王). Sukshin (肅愼) peoples, living in the north, were subjugated, and the northeastern borders were made definite while Eastern Buyeo (東扶餘) was conquered. flatland fortresses and new fortresses were the hubs of Koguryo’s local control of the Yanbian region. The flatland fortresses included Salgiseong (薩其城), a mountain fortress, and Onteukhyeokbuseong (溫特赫部城), a field fortress, both located in present-day Hunchun (琿春) area. new fortresses in a set of Seongsanjasanseong (城山子山城), a mountain fortress, in Yongil (延吉), and Haryonggosung (河龍古城), a field fortress. Koguryo’s control of the region was carried out centering on the transportation roads leading to and from flatland fortresses and new fortresses. The road from Guknaseong (國內城), the capital at that time, going along the eastern coastline, headed towards flatland fortresses, and the inland-bound road from Guknaeseong led to a new fortresses. How Koguryo had ruled the Yanbian region since the fourth century can be seen through the of King Kwanggaeto monument (廣開土王碑) and the dynasty’s control towards the end through gravestone of Goja (高慈墓誌) and the gravestone of Yidain (李他仁墓誌). The existence of a fortress official (柵城都督) shows that a Yoksal (褥薩), a high-ranking local official of Koguryo, was sent for Checksung. A churyogeunji (處閭近支), another local official, was said to have been dispatched to the new fortresses.
본 연구는 4세기 이후 고구려가 동북 지역 즉 지금의 중국 吉林省 延邊 지역으로 진출하는 과정 및 영역을 경영하는 방식에 대해 탐구하였다. 연변 지역은 3세기까지는 北沃沮의 중심지역이었다. 고구려는 초기부터 활발하게 이 지역으로의 진출을 모색하여 태조왕 이후에는 柵城을 중심으로 하는 영역 지배의 거점을 구축하였고, 서천왕대를 전후해서는 新城을 축조하여 또다른 지역 거점을 마련하였다. 특히 서천왕대에 新城을 구축하게 되는 대외적인 배경으로는 첫째, 동천왕대 관구검의 침입으로 인한 북옥적 지역에 대한 새로운 지역 경영의 필요성이 증대되었다는 점, 둘째 북방의 肅愼에 대한 방어 및 통제력의 확보가 필요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광개토왕대에는 연변지역에 대한 영역지배를 기반으로 북방에 있는 肅愼을 통제할 수 있었으며, 한편으로 부여의 일파가 세운 東夫餘를 정벌하여 동북지역의 영역을 확정하였다. 필자는 이 동부여의 위치를 현재의 길림성 돈화지역으로 비정하였다.
연변지역에 대한 고구려의 영역지배의 양상을 추정할 수 있는 고고자료로는 이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고구려시대의 성곽 자료를 들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고고 조사 수준으로는 고구려시대에 축조된 성으로 확정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문헌상에 보이는 역사상 저명한 성인 柵城과 新城에 초점을 맞추어, 이 두성의 위치를 비정하고 이를 통해 동북지역의 경영 방식을 추정하였다. 柵城은 지금의 훈춘지역의 산성인 살기성과 평지성인 온특혁부성을 하나의 거점으로 묶어 이곳에 비정하였고, 新城은 연길의 산성인 성자산산성과 평지성인 하룡고성을 하나의 세트로 구성하여 비정하였다.
그리고 고구려가 柵城과 新城은 영역 외곽의 거점성이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도 國內城으로부터 책성과 신성에 이르는 교통로를 통하여 동북지역 전체에 대한 영역 지배를 실현하는 거점이었다. 이에 책성과 신성에 이르는 교통로를 검토한 결과, 국내성에서 옥저를 통하여 북옥저에 이르는 동해안로가 책성까지의 주된 교통로[책성로]이고, 국내성에서 통화-백산-무송-안도로 이어지는 내륙교통로[신성로]가 신성까지의 주된 교통로로 파악하였다.
이와같은 과정을 통해 영역으로 편제한 연변 지역을 고구려는 영역 내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4~5세기 단계에는 城․谷지배체제에 의해 지배하였다고 추정된다. 이러한 양상은 「광개토왕릉비」의 구민 수묘인연호조에 보이는 賣句余民, 東海賈, 敦城民이란 3곳의 통치 단위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다른 구민 지역과는 달리 ‘民’이란 부가 내용이나 東海賈이란 존재를 통해 보다 다양한 지배방식이 관철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이 지역이 본래 北沃沮지역이었고, 또 주변에 있는 肅愼이나 東夫餘 지역의 주민집단들이 혼재되었던 결과가 아닐까 짐작된다.
고구려 말기 단계에 이 지역의 지배 양상을 추적할 수 있는 자료는 「高慈墓誌」와 「李他仁墓誌」에 보이는 책성 관련 기사이다. ‘柵城都督’의 존재를 통해, 책성이 褥薩이라는 고구려 최고위 지방관이 파견되는 동북지역의 가장 중심적인 거점성임을 확인할 수 있다. 新城은 욕살급 아래인 處閭近支급의 지방관이 파견된 지방성으로 짐작된다. 이외에도 연변 지역에는 다수의 처려근지가 파견된 지방성이 분포하였을 것이다. 또한 李他仁의...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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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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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18 | 1.18 | 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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