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의 역사적 전개과정 연구
저자
발행사항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1996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 1996. 8
발행연도
1996
작성언어
한국어
DDC
895.7 판사항(22)
발행국(도시)
서울
기타서명
(A) Study on historical developments of Changkeuk
형태사항
iv, 212 p; 27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金浩順
참고문헌: p. 204-209
소장기관
This study aims at examining historical developments of Changkeuk and elucidating its status in Korean drama history. To understand Changkeuk’s developments in a comprehensive way, several fields in performances of Changkeuk, scripts’pattern of Changkeuk, and relationships between drama theory and Changkeuk were focused and studied intensively. This study demonstrated characteristics of Changkeuk as‘popular drama’in modern drama history and its effects on Korean drama developments.
It is in about 1906 that Changkeuk was first introduces. Pansory had been shared and enjoyed among the general public, providing then with dramatic experiences and pleasures since late Chosun dynasty. Its popularity enabled singers of Pansory at that time to concentrate on their works and to be drama actors with a full-time job. Theater managers performed plays towards modification of Pansory. Lee In Zik created <Eunsekye> on the basis of traditions of Pansory. In the sense that <Eunsekye> predicted possible emergence of a professional writer of Changkeuk, and realized the spirit of the times which included Pansory’s tradition yet anti-feudalism developed into enlightenment, it was modernistic. Participation of intellectuals with Lee In Zik in the lead was ephemeral, and there is a general tendency that Changkeuk was mostly based on a repertoire of Pansory. The tendency was criticized fiercely by the people who stuck to enlightenment and stood on restoration of national rights. Changkeuk showed its identity as popular drama from the beginning.
In 1910’s Changkeuk was called old drama, in prosperity as popular drama. Before 1915, Changkeuks was performed under the auspices of Kwangmudae, jangansa, and Tansungsa, after that under the auspices of Kisaengjohap and Kyungsungkupabaeujohap. A classical novel was modified to be Changkeuk, and created Changkeuk affected by new drama was also shown. The fact that Changkeuk did not reflect realistic problems properly was confirmed in <Okjungkain>, a Chankeuk script at that time, which emphasized a tug-of-love and had a public-oriented-style to exaggerate a comedy-like scene. That old drama was loved by the public reflected a culture trend in 1910’s Drama theory,‘an improved pone’ supported popularization of drama performances on the theater.
In 1920’s performances of Changkeuk were inactive. Upto the middle of 1920’s Kisaegjohap and Kwangmudae had dramatized classical novels and performed farces. After that period, most of performances were‘Talented-singer-Contests’. <Ilchukpan>, a Chankeuk play was short of intergrity as a work, maintaining comic endings and effects. Lack of integrity was seemingly due to performances in fragments and those based on most of shot farces. As modern drama concepts of enlightenment were introduced in 1920’s and dominant, Changkeuk was hardly performed as drama.
In 1930’s there were growing interests in traditional culture, and Chosunsungakyonkuhoe tried to preserve tradition in performances. Chosunsungakuyonkuhoe performed integrated Changkeuk with dramatization and leading roles of a direct who tried to refine stage effects and demonstrate a model of Changkeuk. The model was shown in a changkeuk script, <Bistapan>in which comic scenes were erased, and integity of a work was considered. Changkeuk rehabilitated as traditional drama which is appealing to the public, in agreement with‘theory of traditional drama’seeking public-oriented drama from Changkeuk (Pansory).
Chankeuk, typical and popular drama in Korean drama history during the period of 1900-1930’s was romantic, sympathetic and humorous enough to fascinate the public. During that period, sensitivity based on traditional culture had been prevalent, and use of Changkeuk to make drama public-appealing had been under discussions. Changkeuk impressed the public since it presented them with dramatic sensitivity on traditional culture, having some effects on drama developments in the middle of 1930’s.
Significantly, this study demonstrated dynamic process of Changkeuk formation by analyzing diverse and actual data, formation of Changkeuk scripts in connection with unfolding of Changkeuk history, developmets of drama theories related to Changkeuk, and roles of Changkeuk in Korea modern history of drama.
본 논문은 1900-1930년대 창극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창극의 연극사적 위상을 밝히는데 그 목적이 있다. 창극의 전개과정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창극 연행상황·창극 대본의 존재양상·각 시기 연극론과 창극의 관계라는 세 층위를 설정, 이 세층위에서 나타나는 변모양상을 통시적으로 살폈다. 그리고 창극이 근대 연극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대중극’으로 규명하고, 대중극으로서의 특징과 연극계에 끼친 영향을 밝혔다.
창극은 1906년 무렵 형성되었다. 이렇게 판소리 창자들이 연극 배우로서 전신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후기 이래 판소리가 전계층에 향유되면서, 극적 체험의 원천으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장의 운영자들은 판소리를‘개량’하는 식으로 연극활동을 모도 했고, 이인직은 판소리 전통에 입각해 <은세계>를 창작했다. <은세계>는 창극 전문작가의 출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 판소리 전통에 기반한 반봉건성을 강화하는 일방 개화로 대표되는 당대의 시대의식을 구현하고 있다는 접에서 근대적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이인직으로 대표되는 지식인의 참여가 일회적인 것으로 그쳤고, 창극 공연의 대부분은 전승 판소리를 분창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경향을, 애국사상을 내세우며‘연극개량론’을 펼친 문화계몽론자들의 즉각적인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1910년대에는 창극이‘구연극’이라 불리며, 대중극으로 번성했다. 1915년 이전까지는 광무대·장안사·단성사 등 극장의 주관하게, 그 이후에는 기생조합과 경성구파배우조합등 단체의 주관하에 공연활동이 이뤄졌다. 그전소설의 창극화가 추진되었고, 신파극의 영향을 받은 창작작품도 공연되었다. 그러나 당대의 현실문제를 반영하는 연극으로서의 위상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으니, 이는 이 당시 창극 대본이라 할 수 있는 <옥중가인>에서도 확인된다. <옥중가인>은 춘향과 이도령의 애정갈등을 강조하고, 소극적 장면을 확대하는 등 대중취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구연극이 명실상부한 대중극으로서의 위상을 지니게 된 것은, 1910년대 문화계의 경향을 반영한 것이었다.‘개량적 연극론’이라 이름할 수 있는 이 당시 연극론은 극장 공연의 대중화 경향을 인정하고 조장했다.
1920년대 창극은 신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그 연행 양상이 달라졌다. 1920년대 중만 까지는 기생조합과 광무대가 고전소설을 연극화하고, 희극을 공연하는 식으로 공연활동을 했다. 그러다 1920년대 중반기 이후에는‘명창대회’식의 판소리 공연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당시 창극 대본에 해당하는 <일축판>은 한편의 작품으로서 완결성을 갖추지 못한 채, 희극적 결말을 강조하는 일방 희극적 효과를 유지시키고 있다. 이는 부분부분 나눠서 공연하는 관행, 짧은 소극위주로 공연하는 관행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는‘계몽적 극대극론’에 입각한 연극 개념이 소개되고 있었던 바, 창극이 연극으로서 인식되면서 공연될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1930년대, 조선성악연구회는‘전통을 보전’한다는 의식을 앞세우며 공연활동을 펼쳤다. 조선성악연구회는 한편의 완성된 작품을, 각색 및 연출자의 주도하에, 정교한 무대효과를 고려하면서 공연, 창극 연행의 전형화를 꾀했다. 이 당시 창극대본에 해당하는 <빅타판>은, 소극적 장면을 삭제하고, 작품의 유기적 완결성을 고려하는 식으로 전형화가 추진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창극이 대중적인 전통극으로서 부상한 것은, 창극(판소리)에서 연극 대중화 방안을 모색하던 당시의‘전통연극론’과 조응한다.
1900-1930년대 한국 연극가의 대표적인 대중극 양식이었던 창극은, 낭만성 ·창의 정서적 감응력 ·해학성을 대중적 요소로서 보유하고 있었다. 1900-1930년대까지는 전통문화를 토대로 한 감수성이 지속되고 있었고, 연극 대중화 차원에서도 창극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래서 창극은 대중들의 호응을 얻으며 전통문화에 기반한 연극적 감수성을 재생산하는 연극으로 존재할 수 있었고, 1930년대 중반 연극계에 일정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본 논문은, 실증적인 자료를 가능한 한 폭넓게 확보, 구체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창극의 형성과 변모과정을 밝혔다는 점, 창극사의 전개과정과 연결시키면서 창극 대본의 형성과정을 유추했다는 점, 창극과 관련된 연극론의 전개를 밝혔다는 점, 결과적으로 근대 연극사에서 창극의 위상을 재고토록 했다는 점 등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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