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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祖~憲宗代 ‘廣儲嗣’ 사안을 통해 본 정국과 정치세력의 추이 - 朴在源 사건과 李承憲 親鞫 사건을 중심으로 - = Political Situation and factions: Since the Reign of King Jeongjo(正祖) through that of King Heongjong(憲宗), as reflected in the “Gwangjeosa(廣儲嗣)” efforts - Examination of the Park Jae-weon(朴在源) Incident, and the Yi Seung-heon(李承憲) Interrog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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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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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107(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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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e end of King Yeongjo’s reign, Hong Guk-yeong(洪國榮) and others played an instrumental role in enthroning King Jeongjo. And in the 2nd year of the new king’s reign, Dowager Queen Jeongsun issued a dynasty-wide message that a royal concubine should be selected shortly, in the spirit of exploring options to increase heir candidates(“Gwangjeosa, 廣儲嗣”). Then Park Jae-weon(朴在源) forwarded an appeal to the king, suggesting that diagnosing and treating Queen Hyo’eui’s illness should be the royal family’s top priority. Meanwhile, Hong committed a crime of engaging in succession issues to the throne, suggesting having his sister as Hong-bin(洪嬪). In the 4th year of King Jeongjo, Kim Chi-muk(金峙默) who is the one of the Hyo-ui's family members attacked the 'Musul(戊戌) Appellate' for the crime of mentioning the sickness of the Queen. As a result, Park was dismissed from the government, exiled to local regions and died not before long.
But, After Seo Jeong-su(徐鼎修)'s mentions, Park’s loyalty earned him a consensus that his untimely death was not what he deserved. In his 12th year, King Jeongjo filled the seats of Three Secretariats, with individuals from each of the powerful factions operating inside the government. And in the next year, when Chae Je-gong(蔡濟恭) requested a posthumous title for Park, Jeongjo finally granted Park with a posthumous seat as the Bu-Jehak figure of the Hongmun-gwan office, as a gesture of encouraging peace and harmony among the three parties: the Westerners’ Noron and Soron factions as well as the Southerner party. Later, in the 1st year of king Sunjo when Oh Han-weon asked for additional posthumous titles for Park, Shim Hwan-ji agreed that Park be posthumously promoted to the Champan figure of the Ijo Ministry. Yet later, in the 4th year of Sunjo’s reign, Park was once again promoted to the Ijo Ministry’s Panseo figure, and in the 5th year received a title called Chung’heon(忠獻). Although he died, Park’s loyal remonstrance was duly remembered. The Shim faction in the early years of king Sunjo, inspired the Soron and Noron factions that not only remembered but experienced firsthand the incidents involving Park. And in 1806, they promoted the dismissal of Gyeongju Kim house members and some figures of the Noron faction’s Byeokpa segment [from the government] as a new ‘consensus,’ and brought about the so-called “Byeong’in-year Rectification.” In the 13th year of King Heonjong’s reign, Great Dowager Queen Sun’weon issued a message searching for royal concubine candidates, as the Dowager Queen Hyojeong had failed to produce an heir. Yi Seung-heon(李承憲) criticised fellow officials for not bothering to treat the Queen’s illness, and made impolite remarks regarding the Great Dowager Queen’s statement. The Yi appeal was essentially a political attack upon the Pung’yang Jo house, which Heonjong identified as a comparison of the ‘diligent suggestion(‘陳勉’)’ made by Park Jae-weon, and by which the vassals were reminded of the former kings’ effort of ‘keeping wise and meritorious at their sides(右賢左戚),’ in addition former vassals’ hope of that, as a ‘noble consensus(“淸論”).’
영조 말 정조 초에 洪國榮 등은 정조가 즉위하는데 큰 공훈을 세웠다. 정조 2년 왕대비인 정순왕후는 정조 이후 왕위를 이을 王孫의 소식이 없자, 왕위를 이을 자손을 넓힌다는 ‘廣儲嗣’의 의미로 후궁 간택 언문교서를 내렸다. 그런데 朴在源이 후궁을 들이는 일보다 중전인 효의왕후의 건강에 대한 진단과 치료가 우선이라는 ‘무술년 상소’를 올렸다. 반면 홍국영은 누이동생을 홍빈으로 들이는 등 왕위 계승 문제에 관여해 ‘宗祀의 大計를 저지한 죄’를 저질렀다. 정조 4년 효의왕후 집안 戚臣 金峙默이 중궁의 환후를 언급한 죄를 물어 ‘무술년 상소’를 공격하였다. 박재원은 방축전리 당했고, 두 달 뒤인 6월에 사망한다.
徐鼎修의 언급 후, 박재원의 억울한 죽음과 충절한 행동을 褒獎하자는 여론이 있었고, 정조 6년에 노론 李有白이, 정조 11년에는 노론 李殷模가 그의 벼슬을 추증하기를 주청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조는 ‘무신란’ 60주기인 정조 12년에 三相保合을 이루고, ‘기사환국’ 100주기인 정조 13년에 남인 우의정 蔡濟恭이 박재원의 추증을 筵奏하자, 홍문관 부제학으로 贈職함으로써 노론․소론․남인의 화합을 도모하였다.
순조 1년 吳翰源이 加贈할 것을 주청하자 심환지를 비롯한 大臣들이 覆奏하여 이조 참판으로 追贈하였다. 순조 4년 11월 우의정 李敬一이 上奏하여, 순조 5년 1월 이조 판서로 추증하고 忠獻의 시호를 내렸다.
정조 2년 왕대비의 ‘광저사’ 전교에 이제까지 없었던 ‘항소’를 처음으로 올렸던 박재원은 비록 사망하였지만, 정조∼순조 초반 그의 ‘충간’을 기억하고 의롭게 여겼던 것이다. 이후 이를 주도했던 소론․노론의 시파 세력들은 순조 5년(1805) ‘金達淳 옥사’와 순조 6년(1806) ‘丙寅更化’를 통해 정국과 정치세력의 변화를 이루어 낸다.
헌종 13년 대왕대비인 순원왕후가 대비인 효정왕후에게서 후사가 없자 ‘광저사’의 교서를 내렸다. 이에 반대하며 李承憲이 정조 연간의 박재원 상소를 再現하여 중전의 환후를 치료하지 않은 조정신하들을 언급하며, 후궁간택문제를 공격하였고, 언교에 없는 흉언을 했다는 죄목으로 유배되었다. 조인영 세력이 위축되고 1년 만에 김흥근의 전횡이 심해지자, 헌종은 이승헌을 불러 올려 親鞫․ 推鞫을 행하고 사형을 감하여 섬에 유배․위리안치함으로써 가중처벌하였다. 이는 헌종이 정조 연간의 박재원․서정수의 ‘陳勉’과 비교하며, 두 외척세력 모두와 신하들에게 선왕의 ‘右賢左戚’을 기억하고 실천하기를 바라는 공의와 淸論을 想起시켰던 정국운용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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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5-02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A Laboratory of Korean Studies -> Institute of Korean Studies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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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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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3 | 0.3 | 0.2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36 | 0.38 | 0.553 | 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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