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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 독립투쟁과 가문의 수난 -임청각 ‘몰락’을 중심으로- = Lee Sang-ryong's struggle for independence and the hardships of his family
저자
신운용 (사단법인 안중근평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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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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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2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47-69(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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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ang-yong, who launched a righteous army and enlightenment struggle in response to the Japanese invasion, moved his headquarters to Seogando Island after the Japanese occupation in 1910, leading the independence struggle of Seogando(서간도) including Gyeonghaksa(경학사) in 1913, Bumindan(부민단) in 1913. In particular, he served in the Beijing Military Unification Association(북경군사통일회) in 1921, and led the Provisional Government(임시정부) as president in 1925. Since then, he has devoted himself to learning by sponsoring local governments in Seogando, such as Tonibu(xhddmlqn). In particular, he is regarded as a representative Dangunist in modern Korea, given that the driving force of his independence struggle was minzokjui(민족주의).
However, in inverse proportion to Lee Sang-ryong's status, his bereaved family was forced to walk the path of collapse. His son Lee Joon-hyung committed suicide in 1942, and his grandson Lee Byung-hwa died in 1952 at the age of 46 years old.
His great grandson, Lee Hang-jeung, lived a life of struggle for the recovery of Im cheong-gak (임청각) on behalf of his missing and deceased brothers. Without his sacrifice, it would not have been possible to publish 『Seokju-Yugo(국역 석주유고)』 today.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his life was a struggle against contradictions in Korean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If it were not for those who showed their desire for the heritage, if the previous Korean government had actively responded to the problems of descendants of independence fighters, and if historical justice were alive, there would have been no tragedy of the Lee Sang-ryong family. Without the tragedy of the Lee Sang-ryong family, there would have been no tragedy in modern Korean history such as the Korean War.
Restoring the legacy left by Lee Sang-ryong, including Lim cheong-gak, is a way to practice historical justice, to overcome the contradictions in Korean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and is also an obliga tion of the times.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여 의병투쟁·계몽운동을 전개한 이상룡은 1910년 일제의 대한제국 병탄이후 본거지를 서간도로 옮겨 1911년 경학사, 1913년 부민단, 1919년 서로군정서 등 서간도 독립투쟁을 주도하였다. 특히 그는 1921년 북경군사통일회에서 활동하였으며, 1925년 국무령으로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이후 통의부·정의부 등 서간도 자치기관을 지도하고 후원하면서도 학문에진력하였다. 특히 그의 독립투쟁 추동력이 ‘민족주의’였다는 점에서 그는 한국 근대의 대표적인 단군론자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상룡의 위상과 반비례하여, 그의 유족은 오히려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아들 이준형은 1942년 자살을 하였고, 손자 이병화는 1952년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46세)에 사망하였다. 그의 증손자 이항증은 행방불명과 사망한 형들을 대신하여 임청각 회복을 위해 분투하는삶을 살았다. 그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임청각의 모습과 『석주유고』의 발간은 불가능하였을것이다. 그의 삶은 한국 근현대사의 모순과의 투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산에 대해 욕망을 드러낸 사람들과 역대 한국정부의 독립투쟁가 후손들에 대한 미진한 정책등으로 이상룡 가문의 비극은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상황이다. 물론 이는 근본적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모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임청각을 비롯하여 이상룡이 남긴 유산을 회복하는 일은 역사정의를 실천하는 길이며, 한국 근현대사의 모순을 극복하는 길이며, 시대의 의무이기도 하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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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9-07-15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Historial Association of Soong-sil -> The Historical Association for Soong-Sil | KCI후보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75 | 0.75 | 0.6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58 | 0.5 | 1.348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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