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6 · 25전쟁과 한국 보건의학계 및 보건학의 형성 = The Korean War and the formation of Korean ‘Public Health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0
작성언어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339-374(36쪽)
KCI 피인용횟수
0
DOI식별코드
제공처
소장기관
이 글은 6 · 25전쟁을 전후하여 한국 보건의학계와 보건학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역사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기존의 연구들은 보건의료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로 주로 1960년대 이후를 주목했는데, 이는 일정하게 현실을 반영한 것이지만 6 · 25전쟁의 영향력과 1950년대의 변화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었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 글은 6 · 25전쟁 이후 보건 의학계와 보건학의 형성 과정을 미군정과 유엔군 및 한국정부의 공중보건(Public Health) 활동과 미국에서 유학한 한국인 의사들의 활동 속에서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한범석, 윤유선, 백행인, 주인호, 김인달, 양재모, 권이혁, 구연철, 김명호, 방숙, 박재빈 등 한국인 의사들이 한국 보건의료체계 형성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경성제국대학 의 학부나 경성, 세브란스, 대구의학전문학교에서 공부하여 일본식의 ‘이론 중심 교 육’을 받았다. 그리고 해방과 6 · 25전쟁을 계기로 현장에서 임상 경험을 쌓았고, 주로 미국 유학을 통해 ‘임상 중심 교육’이라 할 수 있는 미국식 보건학을 체계적으로 학습했다. 이들은 1950년대 중후반에 이루어진 서울의대의 미네소타 프로젝트 보다 더 앞서서 미국식 보건학을 적극적으로 수용, 도입하면서 보건의학계의 1세대로서 주요 의과대학의 예방의학교실 및 보건대학원을 이끌었다.
이와 함께 미국식 공중보건학(public health)이 한국에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된 계기는 보건진료소 및 보건소의 확산과 이를 뒷받침한 공중보건원의 창설이었 다. 1953년 9월 공중보건원(School of Public Health, Korea)의 창설은 전국 단위에서 크게 증가한 보건진료소와 보건소를 뒷받침할 보건의료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중보건원을 통해 미국식, 혹은 WHO식 ‘공중보건’ 개념이 전파 되었고, 이렇게 전파된 ‘공중보건’ 개념은 보건진료소 및 보건소에서의 보건의료 임상 활동을 통해 현실에서 구현되었다. 따라서 공중보건원은 한국의 보건의학계가 기존의 일본식 ‘공중위생’ 개념을 바탕으로 미국식 ‘공중보건’ 개념을 수용하여 한국식 보건학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한 셈이다.
This article is an attempt to understand the historical nature of the Korean health and medical system by looking at the formation process of the Korean health and medical community and health sciences before and after the Korean War. Existing studies have mainly noted the post-1960s when the foundation of health and medical care was laid, which reflects the reality to some extent, but there is a problem that the influence of the Korean War and the change of the 1950s were relatively neglected. Therefore, this article looked at the formation process of Korean health and medicine in the connection with the public health activities of the U.S. military government, U.N. forces and Korean doctors who studied abroad.
I tried to understand in detail what role Korean doctors played in the formation of the Korean health care system.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y studied at Kyungsung Imperial University’s School of Medicine, Kyungsung, Severance, and Daegu Medical College, and received Japanese-style ‘theory-oriented education’. In addition, they gained clinical experience in the field after liberation and the Korean War, and systematically studied American-style health science, which can be called ‘clinical-oriented education,’ mainly through studying in the United States. They actively embraced and in troduced American-style health science ahead of the Minnesota project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leading the preventive medicine departments and graduate schools of health at major medical schools as the first generation of health medicine.
Along with this, the reason for the firm establishment of American-style public health in Korea was the spread of public health dispensaries and centers, and the creation of the School of Public Health, Korea that supported it. The establishment of the School of Public Health, Korea in September 1953 was aimed at fostering health and medical personnel to support the nationwide increase in public health dispensaries and centers. The concept of American or WHO-style ‘public health’ has been disseminated through the School of Public Health, Korea, and the concept of ‘public health’ spread in this way was realized in reality through health care clinical activities in public health dispensaries and centers. Therefore, the School of Public Health, Korea greatly contributed to the Korean health and medical community adopting the American concept of ‘public health’ based on the existing Japanese concept of ‘public hygiene’ and establishing itself as a Korean-style health science.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4-12-17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동국사학회 -> 동국역사문화연구소영문명 : Dongguk Historical Society -> Dongguk history & culture institute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36 | 0.36 | 0.36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38 | 0.4 | 0.758 | 0.14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