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燕山朝 왕실의 奴婢 奪占과 反正의 명분 = The Extortion of Nobi(奴婢) by the Royal Family in King Yeonsan[燕山君] Period and the Causes of Coup of Jungjong[中宗反正]
저자
최원하 (서울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4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발행기관 URL
수록면
69-104(36쪽)
제공처
이 글은 연산조 왕실의 奴婢 奪占 행태가 양반지배층의 離叛을 촉진하였고, 그것이 반정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음을 논증함으로써, 君臣權力關係의 추이와 노비 문제의 양상을 연관지어 이해하는 단초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성종조 이래 왕실의 재정 소요가 확대되는 추세 속에서 왕실은 內需司 奴婢에 대한 完護를 통해 身貢 수입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하였고, 이에 헐역을 부담하는 내수사 노비에 대한 公私賤의 투속이 잇따랐다. 宣頭案에 付籍된 노비에 대해서 쟁송을 불허하는 원칙이 관철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公私賤의 투속을 容隱하는 내수사의 행태는 사실상 왕실에서 公私賤을 탈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와 같은 추세는 연산군 시기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더구나 양반관료들에 대한 君主權의 우위를 강조하고 공공연하게 私情을 앞세우는 연산군의 태도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었다. 무오사화를 계기로 군주권의 위력을 실감한 연산군은 公賤은 물론 양반지배층이 소유한 私賤까지도 탈점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주인을 배반하고 왕실에 투속하는 노비들이 잇따르고 있었다. 노비를 탈점함은 물론 기왕의 主奴關係를 단절시키려는 연산군의 행태에 대한 양반지배층의 원망과 불만은 점차 커지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사화를 거치면서 역대 조정의 공신과 재상들이 잇따라 숙청되고 臣權이 극도로 위축되면서 연산군의 행태에 대한 비판은 봉쇄되어 있었다.
양반지배층의 불만은 반정으로 귀결되었고, 그에 따라 노비 문제의 추이 또한 급반전되었다. 반정 주체세력은 노비를 탈점하여 주인을 배반하게 하였다는 것을 연산군의 罪狀 가운데 하나로 내세우고 있었고, 자신들이 내세운 반정의 명분을 실천하고자 연산조에 왕실이 탈점한 노비들을 本主에게 刷還하고 탈점 관련자들을 엄벌하였다. 또한 반정 이후 양반관료들은 제아무리 임금에게 충성하였어도 주인을 배반한 노비는 功臣이 될 수 없다거나, 주인이 노비를 죽인 경우에 임금의 명으로도 노비들은 주인을 고발할 수 없다는 원칙을 관철하고 있었다. 나아가 신료들은 왕실의 私藏 확대를 힘써 제한하려 함으로써 연산조의 弊風과 단절할 것을 중종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This study examines that extortion of private nobi[私賤] by the royal family in King Yeonsan[燕山君] period invoked resistance of Yangban(兩班) class, which led to the dethronement of King Yeonsan[中宗反正], and thereby aims to understand how a power relationship between a king and his servant changed over time with nobi issues. Since King Seongjong[成宗] period, the royal family, faced with an expansion of financial spending, attempted to secure Singong(身貢) income from Naesusanobi(內需司奴婢) by treating them favorably. This resulted in transfer of public/private nobi[公私賤] to Naesusa(內需司) in order to reduce their tax burden. For Naesusa to approve the transfer meant an extortion of public/private nobi, because it was impossible for original owners to file a return lawsuit once their nobis was recorded on Seonduan(宣頭案).
This tendency worsened to King Yeonsan period. It was because King Yeonsan asserted his dominance over the power of Yangban bureaucrats and pursued private interests of his royal family. Throughout Muoh Purge[戊午史禍], King Yeonsan increasingly strengthened his power, suppressed critics from Yangban bureaucrats, and extorted not only public nobi but also private ones, some of whom betrayed their original owners and voluntarily transferred to Naesusa. Discontent of Yangban class heightened because King Yeonsan not only extorted the public/private nobi but also cut off relationship between the nobis and their original owners. However, throughout Gapja Purge[甲子士禍], many meritorious servants[功臣] and high-ranking government officials[宰相] lost their positions, which led to the King’s sealing off criticism for himself, who pursued the private interests of his royal family.
The discontent of Yangban class accumulated over time resulted in the dethronement of King Yeonsan, which led to the drastic reform of nobi issue deteriorated since his period. Yangban bureaucrats, who led dethronement of King Yeonsan, blamed him for the extortion of nobis and their betrayal of their original owners, which became one of the justifications of Coup of Jungjong[中宗反正]. In order for the Yangban bureaucrats to justify the coup, they returned the nobis the King had taken from the original owners and punished the accomplice of the extortion. Also, they sticked to a rule that nobis should not betray their owners at all costs, despite of King Jungjong’s opposition. For instance, a nobi who had betrayed his owner could not be a WonjongGongsin(原從功臣). Also, nobis could not accuse their owners even if one of nobis were killed by the owners. Moreover, they forced Jungjong to correct the problem of the former King by restricting private assets of the royal family.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 이용·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 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학술데이터본부 정광훈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인 이용ㆍ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