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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신 독직 사건의 발단 경위 = The Original Account of Yim Yong-sin’s corruption scandal
저자
김인식 (중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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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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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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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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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260(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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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m Yong-sin, maintaining her first Minister of Commerce and Industry of the Republic of Korea government, at the same time run for the by-election held in Andong, Gyeongsangbuk-do on January 13, 1949 and was elected to the National Assembly. She added the honor of being the first woman minister in the East as well as i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reputation of being the first female lawmaker in Korea. But in the course of the campaign, she continually had an unsavory backbiting and after the election, it was expanded to graft charges. It was the second case of graft after Cho Bong-am, the minister of agriculture and forestry since the inauguration of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he case of Yim Yong-sin’s graft has been discussed several times, focusing on the uprightness of Choi Taigyo, the chief prosecutor who nothing daunted by the ‘living power.’ It was the logic that presupposes the ‘strongness’ of the investigative body assumed from assuming the opposite monopoly. But the case of Yim Yong-sin’s graft had a complex political character that could not be divided by the dichotomy of ‘strong’ and ‘corruption.’ Cho Bong-am and Yim Yong-sin’s graft cases had something in common that they were carried out in the same form and pattern over a period of one or two months. This consensus related us as much of the background as the process and result of the two graft cases, which are directly concerned to the nature of these events.
As with the case of Cho Bong-am, Yim Yong-sin’s graft case had the homogeneity of starting with the power that was struggle between the Lee Seung-Man government and the leading opposition party, Korean Democratic Party. This originated from the status of Yim Yong-sin in the power landscape of the Korean government. In the first cabinet of the Republic of Korea, Yim Yong-sin was a ‘living power', so the political offensive of the opposition party was aimed at him and tried to lose her power.
The confrontation between pro-Lee Seung-Man and anti-Lee Seung-Man forces became seriously in February 1949 when the Democratic National Party departed as an anti-Lee Seung-man force. The opposition party, which led from Korean Democratic Party to Democratic National Party, tried to take control of the political situation by waging a power-sharing struggle with the Lee government. When the scandal broke out from April to May 1949, such a power struggle was in full swing.
The case of the pro-Lee Seung-Man group's monopoly had been a matter that resulted from the crisis of the administration by damaging the morality of the Lee Seung-Man government, and it had been widely turned into a problem of legitimacy in the fledgling Republic of Korea. Therefore, in this perspective, the case of Yim Yong-sin's graft was also a challenge for the pro-Lee Seung-Man group in the question of the moment to wrap up with a ‘political solution.‘
대한민국정부 초대 상공부장관 임영신은 장관직을 유지한 채, 1949년 1월 13일 경상북도 안동에서 실시된 보궐선거에 입후보(출마와 같은 뜻)하여 국회의원에 당선하였다. 그는 대한민국은 물론 동양 최초의 여성장관이라는 영예에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라는 명성까지 더하였다. 그러나 선거운동 과정에서 불미스런 후문들이 뒤따랐고, 당선 후에는 독직 혐의로 확대되었다. 대한민국정부가 출범한 후 농림부장관 조봉암에 이어 두 번째 독직 사건이었다.
임영신 독직 사건은 ‘살아 있는 권력’에 굴하지 않는 최대교의 강직한 檢事像에 초점을 두고 몇 차례 반복되어 논급되었는데, 임영신 독직 사건을 다룬 최근의 연구로는 다음을 들 수 있는데, 독직 사실 자체의 진위를 가리려는 실증성을 떠나서, 검찰 권력의 독립성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한 공통성이 있다. 鄭肯植, 「검사의 한 표상으로서 崔大敎」, 法史學硏究第34號, 韓國法史學會, 2006 : 문준영, 「검찰중립과 화강 최대교 : 임영신 상공부장관 독직사건과 최대교」, 法學硏究25, 全北大學校 附設 法學硏究所, 2007 : 백승종, 「검찰의 양심, 화강 최대교 검사」, 법조삼성 평전 간행위원회 엮음, 한국 사법을 지킨 양심 : 김병로․최대교․김홍섭, 일조각, 2015.
수사 주체의 ‘강직’함을 전제한 입론은 의당 맞은 편의 독직을 가정한 데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임영신 독직 사건의 전말은 ‘강직’과 ‘부패’의 이분법으로 가를 수 없는, 다각도에서 되짚어봐야 할 복잡한 정치성을 띠었다.
조봉암과 임영신의 독직 사건은 한두 달의 간격을 두고 계기성을 띠면서 동일한 형태와 양상으로 전개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감찰위원회가 두 사람을 독직 혐의로 파면하기로 결정함과 동시에 검찰에 고발하는 조치가 시차만 있을 뿐 同形이며, 검찰이 두 사건을 기소하는 날짜가 1949년 5월 28일로 같은 데 이어 1심 재판부가 相同하였으며, 최종 항소심의 단계가 달랐을 뿐 재판 결과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점까지 同樣이었다. 우연으로 보기 어려운 이러한 일치는 두 독직 사건의 발생 과정․결말만큼이나 배경에도 관심을 갖게 하는데, 이는 이들 사건의 성격과 직접 연관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임영신 독직 사건은 조봉암 독직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승만 정부와 제1야당인 한국민주당 사이의 권력을 둘러싼 갈등, 즉 권력 투쟁에서 출발하였다는 동질성을 지녔다. 이는 대한민국정부의 권력 지형에서 임영신이라는 인물이 차지하는 위상에서 비롯되었다. 대한민국정부 초대 내각에서 임영신은 ‘살아 있는 권력’이었으므로, 야당 권력의 정치공세는 그를 겨냥하여 실추시키려 하였다.
친(親)이승만 대 반(反)이승만 세력의 대립 구도는, 반(反)이승만 세력으로서 1949년 2월 민주국민당이 출발하면서 본격화하였다. 한국민주당-민주국민당으로 이어진 야당 권력은 이승만정부와 권력 분배 투쟁을 전개하면서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하였다. 임영신 독직 사건이 불거진 1949년 4~5월은 이러한 권력투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무렵이었다.
친이승만 그룹의 독직 사건은 좁게는 이승만 행정부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혀 정권의 위기를 초래하면서, 넓게는 신생 대한민국의 정통성 문제로 비화될 사안이었다. 이 점에서 임영신 독직 사건은 친이승만 그룹이 ‘정치적 해결’로 마무리해야 할 당면과제이기도 하였다. 이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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