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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국왕의文廟 행행의 추세와 성격 = Trends and personality of the King’s parade of the National Confucian Shrine in the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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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ational Confucian Shrine was the place that had the monumental status of the Joseon Dynasty. It can be seen from the fact that the King raised and respected the position of the shrine of mausoleum by visiting the Royal Academy until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In a country where Confucianism is the national motto, such as the Joseon Dynasty, the King was in a position that also served as a moral position depending on his political status. The source of the moral status was Confucianism, and the space revered after inheriting it was the National Confucian Shrine. From the early days of the Joseon dynasty, the royal pilgrimage to the ceremonies centered on the Confucianism and the center of the shrine as the center of the monument.
After Imjin invade completely destroyed the National Confucian Shrine, not only its national function but also its social aspect. The absence of a ceremony for the King to visit the National Confucian Shrine was a phenomenon that exposed the crisis of the dynasty. This is also confirmed by the fact that the royal family and the government gathered financial resources together with the Confucius’s voluntary reconstruction of the National Confucian Shrine. The reconstruction of the National Confucian Shrine, which is an external symbol of Confucianism, the ideological rule of the dynasty, was the rudder to confirm the existence of the men’s group ruler.
In conclusion, the fact that the King goes to the National Confucian Shrine is an example of lighting the long-term sustainability and historical universality of the Joseon Dynasty. The purpose of the reign of the royal King is to embody the ritual that the vassal retains the system of the dynasty. This is because it serves as a ritual that externally engraves the stylized political system of the dynasty, while at the same time internalizing the image of the world, which is based on Confucian authority, into the mobilization personnel of the line.
조선왕조 개국초부터 국왕이 문묘에 행행하여 성현에게 제례를 거행하는 것은 유교적 도덕 정치를 시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치 행위였다. 국왕이 문묘에 행차하는 것은 왕조의 이념적 성격을 보여주면서 종묘와 사직에 버금가는 국가적 기념 공간이라는 상징성을 부각시키는 의례적 행사였다. 국왕이 종묘와 사직행행에 버금가는 문묘 행행을 거행하였던 것에서 그 상징성이 부각되던 것을 조명할 수 있다.
임진왜란은 문묘를 전소시켜 그 국가적 기능은 물론 사회적 위상까지 사라지게 했다. 국왕이 문묘에 행행하는 의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왕조 국가의 위기를 노출시키는 현상이었다. 이점은 왕실과 정부보다 유생들이 자발적으로 문묘를 재건하는 것에 동참하고 재원을 모은 것에서도 확인된다. 왕조의 통치 이념이던 유교의 외형적 상징인 문묘의 재건은 양반 지배층의 존재를 가늠하는 방향타였다. 국왕이 문묘에 행행하여 공자를 알성하고 그를 추종하는 유생들을 관료로 선발하는 의례적 과정이 곧 양반 지배층의 안위를 국가적으로 보장한다는 정치적 행위였기 때문이다. 국왕과 유생들이 정치적으로는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동지적 입장을 취해야 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왕의 행행 대상은 그 자체가 정치적 장소성을 지닌다. 문묘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사직과 종묘, 능원묘 등의 행행 대상은 의례를 거행하는 일자에 국왕의 참여가 어려우면 관료가 섭행을 하였다. 종묘와 능원묘가 왕실의 성쇠와 함께하던 운명공동체였다면, 문묘는 왕실보다는 관료, 양반 지배층의 위상과 직접 연결되는 성향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국왕의 입장에서 문묘의 행행이 강화되고 지속된다고 하여 정통성 구축에 큰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 오히려 嗣王에게는 자신의 종통인 종묘와 선대왕의 능침에 행행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반면 문묘에 국왕들이 알성을 하고 왕세자가 입학하여 유학에 힘쓰는 모습은 왕조의 존재성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었다. 국왕의 문묘 행행은 다른 행차와 달리 왕조국가의 반석인 이념적 토대를 강화하는 성격을 지녔다. 따라서 국왕의 문묘 행행이 후기로 갈수록 지속적으로 증가되고 확대되지 않았던 양상은 유교적 통치 구조가 안정 체제로 안착되었음을 시사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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