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체제 하 '자본의 국가 지배'에 관한 연구 : 삼성그룹을 중심으로
저자
발행사항
서울 : 성공회대학교, 2010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성공회대학교 일반대학원 : 사회학과 2010년 2월
발행연도
2010
작성언어
한국어
DDC
301 판사항(21)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xvi, 545 p. : 도표 ;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조희연
소장기관
국 문 초 록
이 논문은 민주정부의 수립과 자본의 권력화 현상에 주목한다. 자본의 권력화 현상은 민주화 운동 세력이 기대하고 의도했던 것과는 상치되는 역설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역설’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이 연구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모순된 접합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했다. 이 글은 자본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정치적 계급지배의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대자본은 어떻게 국가를 통제하고 계급지배를 유지하는가?”라는 것이 이 글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이 논문은 계급 지배를 경제환원론적으로 파악하는 단선적 접근법을 넘어서기 위해 사회적 관계로서 국가를 파악하는 관점을 지지한다. 민주화는 민주적인 형식이 제도적으로 정립되어 가는 과정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체제는 형식적으로 정립된 민주주의의 계급적 혹은 사회경제적 성격을 둘러싼 긴장과 각축이 상존하는 공간 체계이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체제가 저항블록 측에서는 민주주의의 실질화와 개혁을 완결시키려는 정치의 근거지로 활용되지만, 역으로 자본권력 측에서는 지배의 지속성과 공고화를 도모하는 지배의 기제로서 활용되기도 한다. 여기에 민주화 이후 제도정치권의 다양한 분파들과 행정 사법 관료 분파들이 파워블록내부를 더욱 복잡하게 구성하여 향후 민주화 이후의 체제의 체제론적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복합관계론적 입장에서 접근한 본 논문에서는 민주주의 이행 이후의 한국의 민주주의 체제의 역설적 변화 양상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연구문제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그 하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민주화 세력의 민주적 기획에 맞서는 자본 권력의 지배 전략을 분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의 전략적 정치가 저항블록의 저항과 어떤 관련을 맺으며 상호작용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계급지배의 실재와 관련지을 때, 전자에서의 강조점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제도정치권, 국가기구, 시민사회에서의 민주적 진전을 저지하기 위한 자본의 지배 전략이 상존한다는 점이다. 후자의 강조점은 국가가 민주주의의 실질화와 형식화를 둘러싸고 지배와 저항의 실천이 전개되는 복잡화된 장인 동시에 세력 관계가 최종적으로 국가의 물질적 장치에 응축된다는 점을 밝히려는 것이다. 특히 본 논문은 세력 간 각축이 민주주의 체제의 제도화된 형식에 투영되는 과정의 복잡성을 주목한다.
본 논문은 민주주의가 시민권의 보장, 주기적인 선거, 견제와 균형 원리의 국가권력체제(삼권분립) 등을 구성요소로 한다는 최소주의적 접근에 착안점을 두고 시작하였다. 따라서 민주화, 즉 민주주의의 이행을 의회 및 정당 정치의 제도화, 국가권력기구의 분산․이완화, 시민사회의 활성화 측면으로 이해한다. 구체적으로 민주주의 체제의 공간적 범위는 정당과 의회를 매개로 구성되는 제도정치권, 행정기구와 사법기구가 중심인 국가기구, 그리고 언론, 학교 등이 중요한 매개가 되는 시민사회 영역으로 구분된다. 본 논문은 자본권력이 민주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각 영역에 전략적으로 접속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각 영역별 삼성의 계급지배 전략의 특징적 양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민주화 이후 의회 및 정당체제는 선거 국면에 따라 유동적으로 나타난다. 민주화 운동에 힘입어 반독재 정치 분파가 제도정치권에 진입한 이래 제도정치권 영역은 역동적인 정치적 투쟁의 장이 되어 왔다. 동시에 주기적인 선거를 통해 형성되는 제도적 장치로서 제도정치권은 자본의 정치자금 공세에 취약한 영역이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제도정치권은 외부에 취약한 체제라고 볼 수 있다. 자본은 선거자금의 제공과 이와 연계된 자본가의 메니페스토 운동을 통해 민주화 세력의 정치를 압도하고 제도정치권의 다양한 분파들을 포획함으로써 민주화 운동의 담론적 동력이었던 ‘민주 대 반민주’라는 정당체제의 균열선을 점차 희석시켰다. 자본은 선거라는 민주적 제도장치를 지극히 형식적인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국가 기구 영역에서는 복잡한 파워블록 내부의 구조를 보여준다. 행정 관료와 사법 관료는 정권의 부침과 달리 정치적 현재성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반독재 정치 분파가 집권하면서 모순된 대립 양상을 보이며 파워블록의 내부 구조는 더욱 복잡화되어 갔다. 이들 세력 간의 각축과정에서 반독재 정치 분파들은 주변화 되어 갔고 나아가 자본 세력에 동조하면서 민중블록과 파워블록 간의 모순은 더욱 심화되어 갔다. 파워블록 내부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행정 사법 관료들은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자임하며 민주적 행정 사법으로의 변화는 침심되어 갔다. 자본은 민주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며 기업 조직을 재편하였고 정치적 전략도 정교화 하였다. 삼성은 주요 행정 관료와 사법 관료에 대한 포획전략을 통해 반독재 정치 분파와 행정·사법관료 간의 각축과정에 우회적으로 접합하면서 파워블록 내부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였다. 이는 곧 자본권력이 국가 기구를 주요한 권력의 거점지로 만들어 가는 정치적 과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시민사회 영역은 민주화 투쟁을 이끈 저항의 본거지로서 민주화 이후 더욱 자율화된 영역이었다. 시민사회의 저항에 따른 응전으로써 삼성은 헤게모니 전략을 구사하였다. 삼성을 비롯한 자본권력은 시민사회 영역을 시장주의적으로 변용시킴으로써 시민사회의 저항성을 탈각시켜 왔다. 그리고 저항블록의 저항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직 체계를 형성하였다. 삼성은 집단적 정체성을 갖는 주요 인물의 영향력을 개별화 시키는 포획전략을 통해 새로운 진지를 구축해 갔다. 자본권력은 시민사회의 저항 세력이 강조해 온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 요구를 전략적으로 흡입하면서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저항을 무디게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삼성은 친기업 이데올로기의 생산과 유통을 통합시키며 헤게모니적 지위를 강화하는 접합제로 활용하였다. 삼성의 시민사회에 대한 지배 전략은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의 활성화를 지극히 형식적인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전략이었다.
이 글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본의 정치적 지배를 보증하는 방식이 이전의 체제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필자가 특별히 주목한 것은 세력 간 적대가 입법부를 넘어 행정부와 사법부로 확산되게 되면서 자본의 민주화 세력에 대한 지배력이 더욱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삼성의 전략이 국가 관료들과 광범하고 구체적인 정치적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로써 필자가 제기했던 질문, 즉 민주주의의 역설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해답이 구해진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본의 계급지배가 유지되는 방식은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대한 전략적 접속이며, 자본 세력의 정치적 전략은 정당과 의회를 중심으로 한 제도정치권이나 행정부의 전문적 관료들 그리고 사법부에 포진한 대리자들, 나아가 교수, 언론인과 같은 일종의 ‘유기적 지식인’들에 의해 대의되도록 하는 시도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자본의 국가 지배 전략이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일방적으로 통용될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민주주의 체제는 자본이 저항블록의 응전을 대면하며 내적 긴장이 동반되는 체제이다. 재벌 개혁 논의도 시민운동 세력과 자본 세력이 마주 앉은 테이블에서 시작되었다. 이 글은 재벌개혁 프로그램이 저항블록의 정당성 요구로부터 시작된 ‘강요된 개혁’이었으나 그것이 실제로 민주적 제도화 장치 속에 투영될 때, 파워블록 내부에서 각축을 벌이면서 자본의 축적 요구에 편향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민주주의의 역설이 존재한다. 민주주의를 기계적 형식의 수준에서 이해하는 ‘테이블 민주주의’로는 민주주의의 실질화에 이르지 못했다. 이는 민주정부가 구축한 민주적 시스템의 한계를 노정시킨다. 테이블상의 민주적 개혁 논의는 결국 자본의 논리에 따른 것으로 귀결되는데 그러한 논리를 제공한 것 역시 자본의 정치였다.
저항블록의 이해가 파워블록 내 정부, 의회 및 정당 정치 체제에서 굴절되면서 시민운동세력과 파워블록간의 모순은 더욱 심화되었다. 결국 이러한 모순이 시민사회세력의 지속적인 저항을 야기하면서 세력 간 정치적 사회적 갈등은 의회의 외부, 즉 사법적 영역에서 재 쟁점화 되어 사법전쟁으로 본격화된다. 의회 및 행정기구에서 사법기구로의 전장의 확전은 시민운동세력의 ‘진보적 사법 적극주의’와 자본 세력의 ‘보수적 사법 적극주의’가 접합된 결과이다. 이들 세력 간의 모순은 특정한 우연적 사건을 계기로 재분출되면서 자본의 지배는 항존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 왔다. 민주주의 체제 내외의 세력 간 동학에 의해 조성된 위기 국면에서 자본의 지배 전략도 복잡하고 다양하게 전개된다. 삼성은 저항블록에 대한 분산파편화 전략, 정치적 맥락에서의 사법화 전략, ‘능동적 동의’로의 유인 전략 등을 통해 정치적 사회적 위기 국면을 벗어나고자 하였다. 최종적으로 세력관계가 도구적 기능적 합리성을 갖춘 국가 기구에 응축된 결과 대자본 헤게모니와 공존하는 형식적 민주주의 체제가 형성되었다.
본 논문에서 이상의 분석을 종합하여 도출해낸 결론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체제 구성의 복합성 및 지배전략의 모순성과 관련된다.
민주주의 체제하 지배 권력 블록은 경제적으로 이미 결정된 단일한 통일체가 아니다. 그것은 의회권력, 행정 권력과 사법 권력에 대해 자본권력이 상호 제휴·갈등하는 복수적 구성물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체제하에 자본권력의 지배전략은 파워블록 내부에서 끊임없이 동요하였다. 이러한 동요는 근본적으로 파워블록과 저항블록 간의 모순에 기인하는 것으로 시민사회의 재벌에 대한 비판적 여론으로 인한 자본권력의 헤게모니적 역량의 불완전성을 드러낸다. 자본의 국가 요원에 대한 구체적인 포획전략과 이데올로기적 전략은 오히려 시민사회세력들의 잠재적인 적대의식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특정한 사건적 국면을 계기로 재벌체제에 대한 시민사회 세력의 지속적이고 확장된 저항을 야기했다. 하지만 시민운동세력의 저항은 도구적 기능적 합리성을 갖춘 물적 장치로서의 국가 기구를 넘어설 수 없는 내재적 한계를 갖고 있다. 자본 세력 역시 법치 체계의 민주적 절차와 제도에 접속하는 형태로써만 지배하는 데 그것은 민주주의 체제의 형식화로 나타난다. 민주주의 체제하 계급지배는 세력 관계가 모순적으로 국가 기구에 투영되는 ‘강제된 화해’의 형태로 ‘불완전한 정당성’을 획득하기에 이른다. 자본은 민주주의의 형식을 전멸시킬 수 없고 민주주의의 형식만으로는 자본을 해체시킬 수 없다.
주요어 : 민주주의 체제 하 계급지배, 민주주의의 역설, 복합관계적 계급지배, 민주주의의 형식화, 민주주의의 실질화, 자본의 국가 지배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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