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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경성고아원의 설립과 운영 = Foundation and Operation of Gyeongseong Orphanage during the Great Korean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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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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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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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210(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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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고아원은 한국인이 설립한 최초의 고아원이다. 그것은 1905년 10월 설립되고 1906년 2월 개교한 보생고아학교를 전신으로 하여 출발했다. 고아원은 처음부터 사회적 관심을 받았고, 황실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후원을 얻으며 사회복지기관으로서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1907년 2월에는 경성고아원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설립자 이필화·이우선 부자는 임직원 및 원생들과 갈등을 빚었고, 마침내 경영권을 놓고 일대 분쟁을 겪게 되었다. 여기에는 후원금의 관리를 둘러싼 의혹도 작용했으며, 그 내용이 연일 신문에 보도되어 고아원은 마치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비쳐지기도 했다.
그러자 사회단체들과 기독교․시천교 등 종교단체도 이 문제에 개입했고, 설립자 측을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대립하는 등 이전투구의 양상을 보였다. 결국 중재에 나선 한성부가 경영권을 접수함으로써 고아원․고아학교는 사립에서 관립으로 바뀌게 되었다.
경성고아원에 대한 각계각층의 후원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고아들에 대한 구제와 교육은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것이었기에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다양한 성원이 이어졌다. 한국 황실과 일본 황실을 비롯하여 한국정부와 통감부도 후원했으며, 정부관리와 일본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여성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는데 여기에도 한국인과 일본인의 구별이 없었다. 유교·기독교·시천교 및 일본의 천리교 교인들도 후원에 동참했다.
각계각층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의 고른 후원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기생들이 가장 적극적인 후원세력이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 크다. 이들은 고아원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수차에 걸쳐 자선연주회를 열어 기금을 마련했다.
이처럼 경성고아원은 국적․관민․신분·성별·지역·종교 등의 구분을 넘어 인도적 차원에서 다양한 역량을 모으게 만들었다. 고아원이 개원한 1907년 전국적으로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이 ‘애국’이라는 감성에서 비롯되었다면, 고아원에 대한 관심과 성원은 ‘자선’이라는 감성에 바탕을 둔 사회현상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일제가 1905년 을사조약과 1907년 정미조약 등 국권을 강탈하고 한국인들이 이에 저항한 격변기였지만, 그 와중에서도 고아원은 각계각층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다. 비록 잡음과 내분이 뒤따르고 사립에서 관립으로 바뀌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 해도, 이같은 점에서 경성고아원의 의의는 자못 크다고 할 것이다.
Gyeongseong Orphanage was the very first orphanage established by Koreans. It was founded in October, 1905 and started to grow on the foundation of Bosaeng School for Orphans that opened in February, 1906. The orphanage attracted attention from the society right from the beginning and received supports from all social standings including the imperial family, gathering expectations as a social welfare institution. It became Gyeongseong Orphanage in February, 1907.
With time passage, however, the founders Lee Pil-hwa and Lee Woo-seon, who were father and son, began to have conflicts with the staff, orphans, and students and eventually engaged in heavy controversy over the management right of the orphanage. Involved in the controversy were suspicions about the management of the donated money. Newspapers covered the scandal day after day, and people started to see the orphanage as the hotbed of corruptions.
Thus many social groups and religious organizations based on Christianity and Shicheongyo got involved in the matter. The two sides, one of which advocated the founders and the other of which was against them, were confronting each other and had dirty mud fights. In the end, the Hanseongbu intervened, secured the management right of the orphanage, and turned the orphanage and school for orphans from a private institution into a government one.
It is noteworthy that all levels of society provided supports to the Gyeongseong Orphanage. The diversity of their supports was unprecedented since the idea of saving and educating orphans well matched the sentiment of Korean people. The Korean imperial family, the Japanese imperial family, the Korean government, and the Residency-General all supported the orphanage, and the government officials and Japanese people joined them in its support, too. Especially women's participation was eminent with no distinction between Korean and Japanese women. Also actively participating in its support were the members of Confucianism, Christianity, Shicheongyo and Japanese Cheonrigyo.
Even supports also came from all over the nation, deserving attention along with the supports from all social standings. The Gisaengs, in particular, were the most active support group, which provides great implications. They held many charity concerts and raised funds to supplement the finance of the orphanage.
The Gyeongseong Orphanage had all people bring together their diverse capabilities for humanitarian purposes regardless of nationality, public and private, social class, gender, region, and religion, which gives it rather important significance despite all the ups and downs it went through such as the objections, internal conflicts, and conversion from a private institution into a public one.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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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2-26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The History of Seoul -> Seoul and History | KCI등재 |
2016-02-03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鄕土서울 -> 서울과 역사외국어명 : The Hyangto Seoul -> The History of Seoul | KCI등재 |
2015-10-22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 서울역사편찬원영문명 : The City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Of Seoul -> Seoul Historiography Institute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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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27 | 0.27 | 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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