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설 선악이야기의 서사규범 연구
저자
발행사항
서울 : 연세대학교 대학원, 2012
학위논문사항
발행연도
2012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발행국(도시)
서울
기타서명
(The) study on the narrative norms of good and evil story in Joseon's novels
형태사항
iv, 261 p. : 삽화 ;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이윤석
소장기관
조선소설에는 선인과 악인으로 규정된 인물이 서로 대결을 벌여 선인이 반드시 승리하는 식의 선악이야기로 구성된 작품이 대단히 많다. 예나 지금이나 선악이야기는 향유자의 자유로운 창의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 문학공동체 내의 여러 가지 당위 및 금기 의식으로부터 강한 규제를 받는다. 본고에서는 그러한 당위 및 금기 의식이 고소설 선악이야기의 창작과 향유에 체계적인 규범으로 작용했다는 데에 착안해 이를 ‘선악이야기 서사규범’이라 명명하고 그것의 구체적인 항목과 작동 방식, 통시적인 양상, 독자·작자와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 등을 고찰했다.
선악이야기 서사규범의 항목에는 동서고금의 선악이야기 일반에 해당하는 보편적인 것과 함께 특히 조선소설의 선악이야기에만 해당하는 특수한 것이 공존한다. 여주인공이 절대적으로 정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 개과천선이 일반적으로 주인공 가족에게만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 남주인공에 대한 보상으로 처첩구비(妻妾具備)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 세계질서가 천명(天命)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것 등이 그런 예이다. 또한 하나의 서사규범이 고소설 선악이야기의 거의 전부를 통제하며 전제적(專制的)인 규제력을 발휘했다는 것도 조선소설에서의 특수한 사정이다. 선악이야기 서사규범은 여러 작품에 걸쳐 일정한 형식으로 작동된 안정된 체계이면서도 운동하는 체계였다. 그래서 작품에 따라 규범의 강도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주인공은 인물됨이 완벽해야 한다.’라는 규범이 어떤 작품에서는 주인공을 다만 재자가인(才子佳人)으로 그리도록 하면서 비교적 약하게 작동되는 데 비해, 어떤 작품에서는 그를 천상에서 적강한 인물로 그리도록 하면서 더욱 강하게 작동된다.
선악이야기 서사규범이 고소설사의 시작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17세기 말경 <사씨남정기>로 대표되는 일단(一團)의 작품에서 비로소 하나의 체계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18, 19세기에는 선악이야기 서사규범을 준수한 작품이 널리 전파되고, 선악이야기 서사규범이 실현된 모티프가 여러 작품 속에서 복제되는 과정을 통해 그것이 고소설 전반에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20세기 전반까지도 선악이야기 서사규범은 활판본고소설과 신작 고소설을 통해 계속하여 효력을 유지했다. 선악이야기 서사규범의 원형이 지속되는 한편 일부 작품에서는 크고 작은 일탈이 일어났다. 특히 판소리계 소설인 <춘향전>, <흥부전>에서 초월적 선악이 아닌 세속적 시비(是非)를 다루며 서사규범에서 크게 일탈한 새로운 형태의 선악이야기를 구성한 것은 소설사적 의미가 크다. 한 작품을 놓고 보면 그것이 후대 이본(異本)에 가면서 선악이야기 서사규범에 더욱 충실하도록 교정되는 규범화 현상이 있었다.
선악이야기 서사규범은 그것을 이해하고 기대하는 독자가 내포독자(內包讀者, implied reader)로 상정될 때 작품의 창작 과정에 작용한다. 따라서 그에 대한 준수 여부는 원천적으로 내포독자에게 달린 문제이다. 그리고 김만중이 <구운몽>을 지으면서는 선악이야기 서사규범을 준수하지 않았고, <사씨남정기>를 지으면서는 그것을 준수했다. 이처럼 그에 대한 준수 여부는 실제작자가 아닌 내포작자(內包作者, implied author)에게 달린 문제이다. 선악이야기 서사규범을 준수하는 작품에 대한 독자의 선호도 및 충성도는 그의 문식력(文識力, literacy)이 낮을수록, 신분이 낮을수록, 여가가 적을수록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보인다. 한 사람의 작자는 자신이 교육자의 위치에서 교화적인 작품을 만들고자 하거나, 선악이야기가 지닌 통속성을 활용해 작품의 대중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돈을 벌거나 이름을 얻고자 할 때 서사규범을 적극 활용하게 된다.
선악이야기 서사규범이 선(善)을 정(貞), 불투(不妬), 효순(孝順), 충(忠) 등의 가치로 한정하는 데에서부터 유교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작용했다. 독자들은 신분과 성별 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선악이야기 서사규범이라는 단일한 원리가 관철되는 이야기의 세계 안에서 공정하고 평등한 공동체를 상상하며 실제 사회에서도 보다 수월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격식을 중시하는 조선사회의 문화적 풍토는 선악이야기 서사규범이 중시되는 배경이 되었고, 조선사회의 전 시기에 팽배했던 소설 비판의 여론이나 소설 배격의 조치는 체제 순응적인 선악이야기 서사규범이 큰 규제력을 발휘하는 바탕이 되었다. 세책소설은 상층독자의 기호에 맞춰 선악이야기 서사규범의 준수에 융통성을 발휘하는 한편, 방각본소설은 하층독자의 기호에 맞춰 선악이야기 서사규범의 준수에 철저함을 기하면서 각 독자층의 기호에 부응하기도 했다. 이러한 소설시장의 기능이 선악이야기 서사규범에 대한 독자층의 태도가 고착화되는 데에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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