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18세기 『이재난고』를 통해 본 대차관계와 이자율 = Loan Relations and Interest Rates from the 18th Century "LeeJae-Nango"
저자
이정수 (동서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발행기관 URL
수록면
205-244(40쪽)
제공처
18세기 사회의 모습을 다방면으로 엿볼 수 있는 황윤석의 일기인 『이재난고』를 통해서 황윤석의 대차거래와 이자율에 대한 내용을 검토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의 이자 관련 법령과 『이재난고』에서 구별하여 사용한 ‘債’와 ‘貸’의 용례를 검토하고, 나아가 황윤석의 부채 사유와 채권자의 실태, 그리고 채무의이자율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조선후기의 이자율 관련 법령은 여러 차례의 개정을 거쳤지만 18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뚜렷한 변화를 보였다. 18세기 중반 『속대전』(1746년 편찬) 이후공사채와 米·布·銀·錢의 구분 없이 모든 법정 이자는 연리 2할로 통일되었다. 그리고 『이재난고』에는 대차거래에서 ‘債’나 ‘貸’의 용어를 둘 다 ‘돈을 빌리다’ 는 의미로 사용하였지만 빌리는 돈의 질적인 성격에 따라 ‘債’나 ‘貸’를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황윤석은 관료지주였지만 거의 평생에 걸쳐 부채에 시달렸다. 그는 여러 사유로 많은 빚을 지게 되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20대에서 30대까지 지속된 科 擧를 위한 상당한 비용과 하급 관료로서 서울 재직 중에 다수 지출된 생활비등이 부채의 주요 요인이었다. 황윤석은 급전이 필요할 때 경강상인이나 반주인, 공인·경주인 등의 상인들과 지인들, 친척과 문중, 관청 등 여러 방면으로 부채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그가 빚을 얻기 위해 많이 의존한 주요 채권자는 ‘江債’로 표현된 경강상인과 ‘泮債’로 표현된 반주인 등의 상인층이었다. 그가 급전이 필요할 때 주로 의지한 상인 자금의 이자는 대체로 月利 8% 이상, 年利 100%에 달하는 고리대가 일반적이었다. 이를 통해 볼 때 당시 정부가 정한 공사채의 법정 이자율 年利 2할과는 달리 민간의 대차거래에는 여전히 고리대가 일반적으로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황윤석은 관료지주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리대를 빈번히 활용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의 주요 채권자가 경강상인과 반주인, 공인·경주인, 개성상인등의 상인층이었다는 사실은 주목된다. 이를 통해 조선후기에 와서 화폐경제의 발전과 함께 상업 자본이 고리대 자본으로 활발히 전화되고 있었으며 고리대가 농민층에 그치지 않고 양반층에 이르기까지 널리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고리대 자본의 성장은 계층 간의 부의 편차를 심화시키고 고리대의 가장 큰 피해자인 농민층의 분해를 더욱 촉진시켰을 것으로 생각된다.
Here, through Hwang Yun-seok's diary "LeeJae-Nango", which provides a glimpse of society in the 18th century, the contents of Hwang Yun-seok's loan relationship and interest rate were reviewed. In particular, we would like to examine the changes and characteristics of interest-related laws and regulations in the Joseon Dynasty, and review the examples of "chae(債)" and "dae(貸)" used separately in "LeeJae-Nango". Furthermore, it focused on the reasons for Hwang Yoon-seok's debt, the status of creditors who owed him debt, and the contents of Hwang Yoon-seok's debt interest rate.
The interest rate-related laws in the late Joseon Dynasty have undergone several revisions, but they have changed significantly since the mid-18th century. After "Sokdaejeon(續大典)"(compiled in 1746) in the mid-18th century, all legal interest was unified at 20% per annum, regardless of the distinction between government and private bonds. In addition, the terms "chae(債)" and "dae(貸)" were both used in loan transactions to mean "borrowing money", but "債" or "貸" were used separately according to the quality of money borrowed.
Hwang Yun-seok was a bureaucrat but suffered from debt almost all his life. He was heavily indebted for a number of reasons, but among them, considerable costs for Gwageo(科擧) that lasted from his 20s to 30s and living expenses spent heavily while serving in Seoul as a junior official were the main factors. When Hwang Yoon-seok needed urgent money, he tried to obtain debts in various ways, including merchants such as Gyeonggang merchants, Ban-juin, Gong-in and Gyeong-juin, acquaintances, relatives, family members, and government offices. In particular, the main creditors he relied heavily on to obtain debt were merchants such as Gyeonggang merchants(京江商人) expressed in "Gangchae(江債)" and accompanists expressed in "Banchae(泮債)". When he needed urgent money, the amount of merchant funds such as Gangchae, Banchae, Gong-in(貢 人), and Gyeong-juin(京主人), which he relied on, was usually more than 8% of the monthly interest and 100% of the year interest. From this, it can be seen that, unlike the legal interest rate of public and private bonds set by the government at the time, the loan-to-deposit ratio is still generally applied to private loan transactions.
In particular, it is noteworthy that Hwang Yun-seok not only frequently used usury despite being a bureaucratic landowner, but also that his main creditors were merchants such as Gyeonggang merchants, Ban-juin, Gong-in and Gyeong-juin. From this, it can be assumed that commercial capital was actively transformed into usury capital along with the development of the monetary economy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usury was socially widespread to the extent that it was widely used not only by the peasantry but also by the noble class. The growth of usury capital is thought to have deepened the wealth gap between classes and accelerated the decomposition of the peasant class, the biggest victim of us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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