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화의 태동과 발전 및 조형적 특성 연구 : 월북화가들과 미술단체 및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Origin, Development and Formative Characteristics of Chosunwha : Focusing on Painters who went to North Korea, Art Organization and Educational Institution
저자
발행사항
광주 : 조선대학교 대학원, 2023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조선대학교 대학원 : 미학미술사학과 북한미술 2023. 8
발행연도
2023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발행국(도시)
광주
형태사항
172 ;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조송식
UCI식별코드
I804:24011-200000682587
소장기관
This study examines the process by which oriental painters who pursued the aesthetics of national art based on the traditional national spirit from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o the liberation of Korea came to North Korea due to differences in ideology and laid the foundation for Chosunwha.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and analyze the process by which oriental painters who went to North Korea developed and established Chosunwha, which is a representative genre of North Korean art today, in the wasteland of the North Korean art world, through connections with art-related organization and educational institution.
During the Korean War in the 1950s, artists who went to North Korea participated in art exhibitions organized by the North Korean Artists' Union to explore the way forward for oriental painting. In 1953, shortly after the end of the war, Byun Wol-ryong, a professor at the Soviet Union's Repin Academy, was sent to North Korea to serve as dean and advisor to the Pyongyang College of Fine Arts. This l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department of oriental painting at the college. As a result, the majority of the painters who went to North Korea worked as professors in the department of oriental painting at the Pyongyang College of Fine Arts and trained students. On the other hand, they also laid the foundation for their influence within the North Korean Artists' Union.
In 1956, a political power struggle in North Korea, the "August All-Party Conference (Sectarian) Incident" occurred. Kim Il Sung of the mainstream Manchurian faction pointed to the Soviet and Chinese factions as revisionists and the toadyish. Kim Il-sung used the terms "Juche" and "Independence" to get rid of them, and the political crisis was over. The oriental painting art world, comprised of painters who came to North Korea, took advantage of this peripheral situation to actively assert that Chosunwha was a subjective national form. This resulted in the emergence of Chosunwha as a new mainstream in the North Korean art world. Under the premise that the "ethnic form" required by socialist realism "cannot leave the 'subjectivity' of the people", Chosunwha was claimed as a national painting. As a result, Chosunwha was defined as ethnic painting or ethnic form.
In 1957, the North Korean regime entered the Cheollima era of socialist construction. The Chosunwha community succeeded in separating the Chosunwha division from the existing painting division of the North Korean Artists' Union and making it independent. This resulted in a new generation of Chosunwha artists being trained at the Pyongyang College of Fine Arts, on the one hand,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Oriental Painting Division in the administrative organization, North Korean Artists' Union, on the other hand, cementing its status as the new mainstream of the art world. In early 1957, a debate between the old mainstream of oil painters and the new mainstream of Chosunwha painters took place, starting with the 'Chosunwha Discussion' on the topic of tradition and innovation in Chosunwha. The oil painting community argued for the incorporation of Western painting techniques, such as color and contrast, into Chosunwha, which has become a representative genre of North Korean art through the theoretical struggle over the discourse of ethnic form. However, in the theoretical battle between the oil painting art world, which insisted on 'form' and 'color painting' in Chosunwha, and Chosunwha art world that emphasized 'sayi(to express spirit inherent in a figure)' and 'ink painting', the Chosunwha art world won. The victory in the struggle of the 'anti-toadyism theory' brought Chosunwha painters to the top of the North Korean art world. The 1950s thus marked the completion of the discourse of 'ethnic form' and the discourse of 'anti-toadyism' in the North Korean art world for Chosunwha and oil painting.
The art of the Cheollima era called for a new change, a new era. In the North Korean art world, young Chosunwha painters newly trained at the Pyongyang College of Fine Arts embraced color painting. Ink painting was gradually dismissed as bourgeois art and evaluated as "subjectivist art." The aesthetics of ink painting
were no longer a inheritance of tradition, but were denigrated as "reactionism with subjectivist tastes". Through the process of struggling for the 'anti-reactionism theory', their era was pushed aside by the mainstream aesthetics of ethnic expression forms centered on color painting.
The 1970s entered a period of Juche art centered on Chosunwha. Kim Il-sung's theory of Juche art was transformed into a style of color painting that applied Western painting techniques to Chosunwha through a process of theoretical discourse on the formative qualities of Chosunwha. However, a view began to emerge that "artistry" was not visible because the "sayi" that could be expressed as the artist's personality was excluded. This was the cause of the reinstatement of the 'molgol' method by 'sayi' in the North Korean Chosunwha art world. In this new development of Chosunwha, the use of the mogol technique began to be actively used in landscape paintings and gradually expanded to figure paintings. The 'molgol' method by 'sayi' was spectacularly reinstated by Chung Jong-yeo, the last surviving member who went to North Korea, who led Chosunwha painters.
In the 1980s, The formative characteristics of today's contemporary Chosunwha, namely, the Chosunwha of the molgol method by sayi, were established. Because this process was ultimately completed by Kim Jong-il, the theory that summarized the formative characteristics of contemporary Chosunwha in the early 1990s was called "Kim Jong-il's Art Theory."
Contemporary Chosunwha was completed by fusing the orientalism of the traditional national spirit of the painters who went to North Korea with the aesthetics of ink painting expressed by sayi, and the aesthetic implementation method of color painting reflecting the contrast of Western painting techniques. As the aesthetic spirit of modern painters was reflected in the personalities of contemporary painters, contemporary Chosunwha proceeded with remarkable changes and developments. And this has been inherited by the current generation of North Korean Chosunwha painters, and the future is being promoted.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공간에 이르기까지 전통민족정신에 입각한 민족미술의 미학을 추구했던 동양화가들이 이념의 차이로 월북하여 북한 조선화의 기틀을 마련한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월북 동양화가들이 황무지나 다름없던 북한 화단에서 오늘날 북한미술의 대표적 장르라 할 수 있는 조선화를 태동, 정립, 발전시키면서 그 조형적 특성의 변화과정을 미술 관련단체 및 교육기관과의 연계를 통해서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1950년대 6.25전쟁 시기, 월북화가들은 조선미술가동맹의 주관하에 개최된 미술전람회에 참여하여 동양화의 진로를 모색했다.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소련 레핀아카데미 교수로 있던 변월룡이 북한에 파견되어 평양미술대학의 학장 및 고문이 되면서 대학 내에 동양화과가 개설되었다. 이로써 월북화가들의 대다수가 평양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원이 되어 후진을 양성하였다. 한편으로는 조선미술가동맹에서도 그들의 영향력을 갖출 기반을 도모하였다.
1956년 북한의 정치권력 내 세력다툼인 ‘8월 전원회의(종파)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는 주류인 만주파의 김일성이 소련파를 수정주의로, 그 뒤 중국 연안파를 사대주의로 지목하고 그들을 제거하기 위한 사건이다. 이때 김일성은 ‘주체’와 ‘자주’라는 용어를 앞세워 정치적 위기의 파고를 넘기게 되었다. 이러한 주변 정세를 기회 삼아 월북화가들인 조선화 미술계는 문학예술에서 ‘민족문화전통’의 주체, 즉 조선화가 주체적인 민족적 형식임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 사회주의 사실주의가 요구하는 민족적 형식은 “그 민족의 ‘주체성’을 떠날 수 없다”는 전제하에 조선화를 민족회화로 내세운 것이다. 그 결과 북한의 유화 미술계와 조선화 미술계 사이에서 벌어진 ‘민족적 형식’의 표현방법에 대한 담론의 이론투쟁에서 조선화는 민족회화 또는 민족형식으로 규정되었다.
1957년 북한 정권이 김일성을 중심으로 안정화되자 사회주의 건설의 천리마시대에 접어들었다. 북한 화단의 월북화가들을 중심으로 한 조선화 미술계가 신주류로 부상한 것을 기반으로 조선미술가동맹의 회화분과에서 조선화분과를 별도로 분리 독립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월북 조선화 화가들은 평양미술대학이라는 교육기관에서 신세대 조선화 화가들을 양성하는 한편 조선미술가동맹이라는 행정단체에서 조선화분과를 신설하여 조선화 미술계의 신주류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월북화가가 중심이 된 조선화 미술계의 기반 세력 구축은 기존의 주류세력이었던 유화 미술계의 견제와 반발을 불러와 논쟁을 촉발시켰다. 1957년 초 조선화의 ‘전통과 혁신’이라는 논제의 조선화 좌담회를 시작으로 북한 화단의 구주류인 유화 미술계와 신주류인 조선화 미술계 간의 논쟁이 진행되었다. 이것은 조선미술가동맹에서 주관한 조선화의 ‘새로운 시도’라는 주제로 시작되었다. 민족적 형식이라는 담론의 이론투쟁을 통해 북한의 대표적 장르로 자리 잡은 조선화의 조형적 특성에 대하여 유화 미술계는 색채와 명암 등의 서양화 기법을 반영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조선화에 ‘형사(形似)’와 ‘채색화’의 반영을 주장하는 유화 미술계에 대해 ‘사의(寫意)’와 ‘수묵화’를 강조하는 조선화 미술계가 담론의 이론투쟁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이러한 반사대주의 이론투쟁에서의 성공으로 월북화가들은 북한 화단에서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이로써 1950년대 북한 화단에서는 조선화 미술계와 유화 미술계 간의 ‘민족적 형식’에 대한 담론과 ‘반사대주의’ 담론이 완결되었다.
급속한 환경의 변화가 일어난 북한 화단의 1960년대 초기는 조선화에 대한 ‘민족적 특성의 현대성’의 논제로 ‘반복고주의’ 담론을 정립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천리마시대의 미술은 새로운 변화, 새 시대를 요구하였다. 평양미술대학에서 새롭게 교육을 받은 신진 조선화 화가들이 채색화를 대거 수용하면서, 수묵화는 점차로 부르주아적 미술로 치부되어 ‘주관주의적 미술’로 평가되었다. 근대 월북 조선화 화가들의 수묵화에 대한 미학은 더이상 전통의 계승이 아니라 ‘주관주의 취향을 일삼는 복고주의’로 폄하되었다. 반복고주의 담론의 이론투쟁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월북화가들의 시대는 채색화 중심의 민족적 표현형식의 미학이라는 대세에 밀려난 것이다.
1970년대는 조선화 중심의 주체미술 시기이다. 김일성의 후원 아래 ‘당 중앙’으로 급부상한 김정일 시대가 도래하면서 북한미술에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났다. 1960년대까지의 김일성시대 주체미술론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화의 조형적 특성에 대한 여러 담론의 이론투쟁이 일어났고 그 과정을 거쳐 조선화가 서양화 기법을 적용한 채색화풍으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작가의 개성으로 표현될 수 있는 ‘사의’가 배제되어 ‘예술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견해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북한 조선화 화단에 ‘사의’에 의한 몰골법 복권의 동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조선화의 새로운 발전 전개 과정에서 몰골기법의 사용이 풍경화 창작부터 적극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점차로 인물화 등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많은 논쟁이 진행되면서 북한 조선화 화단을 이끌었던 월북화가 중 마지막으로 생존한 정종여에 의해서 ‘사의’에 의한 몰골법이 화려하게 복권되었다.
1980년대는 과거의 지난한 담론의 이론투쟁을 통하여 오늘날의 현대 조선화라는 조형적 특성, 즉 사의에 의한 채색몰골법의 조선화가 확립된다. 이러한 과정이 최종적으로 김정일에 의해 완결되었으므로 1990년대 초 현대 조선화에 대한 조형적 특성을 집대성한 이론을 ‘김정일주의 미술론’이라고 한다.
현대 조선화는 월북화가들의 전 생애를 관통했던 전통민족정신의 동양성과 사의에 의한 필치로 발현된 몰골기법 수묵담채의 미학, 그리고 서양화 기법의 명암이 반영된 채색화풍의 미적 구현방법 등이 한데 어울어져 완성되었다. 근대 화가의 미학적 정신성이 현대 화가들의 개성에 반영되어 현대 조선화는 놀라운 변화와 발전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는 당대의 북한 조선화가들에 의해 계속하여 계승되고 있으며, 다양하고 보다 예술적으로 풍부한 미래가 모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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