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命堂 河世應 硏究 = A study on Ha,Se-eung
저자
발행사항
진주 : 경상대학교 교육대학원, 2010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경상대학교 교육대학원 , 교육학과 한문교육전공 , 2010. 8
발행연도
2010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발행국(도시)
경상남도
형태사항
ii, 96 p. ; 26cm
일반주기명
참고문헌 : p. 94-96
소장기관
하세응은 1671년 진주 수곡에서 태어났다. 하세응의 고조부는 松亭 河受一(1553~1612)인데, 하수일은 남명의 학문을 충실히 계승한 覺齋 河沆(1538~1590)과 守愚堂 崔永慶(1529~1590)을 스승으로 삼았다. 그의 증조부 형제들은 남명학의 嫡傳으로 불리는 謙齋 河弘度(1593~1666)와 교유했고, 조부 형제들은 하홍도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하홍도의 학문적·정치적 입장을 따랐다. 하세응의 외조부는 李潚(1550~1615)의 손자로, 이숙은 남명 문인인 茅村 李瀞(1541~1613)의 동생이다. 妻父는 鄭梓(1634~1701)로, 農圃 鄭文孚(1565~1624)의 증손이다.
남명의 유풍을 간직한 하수일 가문에서 성장한 하세응은 특별한 스승 없이 아버지인 台軒 河楙(1647~1686)를 통해 학문을 배웠던 것 같다. 학문에 침잠해서 문장으로 이름이 났다. 또한, 書院, 鄕校, 祠堂 등 공적 기능을 가진 기관에 관련된 다수의 글을 맡아 지은 것으로 볼 때, 지역 내에서 점하는 학자적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하세응이 교유한 인물로 지역 내에서는 昌舍 孫命來(1664~1722), 養正齋 河德望(1664~1743), 南溪 申命耈(1666~1742), 孫有曾(字-孝先), 珠潭 金聖運(1673~1730), 西溪 朴泰茂(1677~1756) 등이 있다. 지역 외에서는 息山 李萬敷(1664~1732), 化隱 閔昌道(1654~1725), 訥隱 李光庭(1674~1756), 靑泉 申維翰(1681~1752) 등이 있다. 손명래, 이만부, 민창도, 신유한 등은 당대에서도 이름난 학자 혹은 문장가인데, 하세응은 이들과도 얕지 않은 교분을 나누고 있었다. 그 외에 교유한 인물들 또한 지역 내에서의 위치가 낮지 않았다.
하세응의 학문은 실천을 위주로 한 성격이 짙다. 그는 학문방법의 양대 축인 尊德性과 道問學을 조화롭게 추구해야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일상생활에서 철저히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즉 존덕성을 조금은 더 근본적인 학문방법으로 생각하여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에 침잠했으나 성리학적 이론을 탐구한 흔적은 없다. 학문을 이루려면 아는 것부터 철저히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성리학적 이론은 탐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세응은 이론 탐구보다 아는 것을 언제든 자유자재로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학문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세응은 당대를 도가 실현될 수 없는 시대로 여겼다. 당파 간의 정치적 의견 차이 때문에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당시의 현실에 대해 통탄하며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퇴처해서 유학적 도의 보존을 위해 고민하였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출처를 모색한 글이 「樂天知命說」인데, 여기서 그는 ‘낙천’은 天理가 인간 세상에 具顯될 만한 시대인가를 판단하여 자신의 출처를 확고히 결정하는 것이라 설명했고, ‘知命’은 자신에게 부여된 天命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든 자신에게 주어진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대 인물들의 출처 또한 낙천지명을 기준으로 평가하였는데, 도의 구현 가능 여부를 판단하고서 적절한 처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을 평가의 관건으로 삼은 것이다. 伊尹·傅說·孔子·朱子 등이 바른 출처를 보였다고 평가하는 것은 시대가 운영되는 형세를 잘 판단하여 적절한 출처 행위를 선택했기 때문이며, 班固·韓愈·柳宗元 등이 바른 출처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도가 실현되지 못할 시대인데도 출사하여 자신들에게 피해가 닥쳤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천하 사람들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하세응이 말한 낙천지명의 지향점은 도가 세상에 실현될지를 판단해서 거기에 맞는 출처를 선택하되, 어떠한 상황에 처해도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使命을 충실히 이행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무도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도를 보존하고 전수하는 일에 대해 최상의 가치를 부여하였고, 섣불리 정치 상황에 개입해서 목숨을 버리는 일을 경계하였다.
하세응은 문장은 도가 실현된 것이라는 道文一致의 문학관을 주장한다. 靑泉 申維翰(1681~1752)은 그의 문장을 ‘菽粟之文’, 息山 李萬敷(1664~1732)는 ‘經術에 근본한 문장’이라고 한 것으로 볼 때, 道學的 문학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배움을 통해 도를 터득해야 훌륭한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훌륭한 문장이란 내면의 내재된 도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이에 대한 예로 孔子가 伏羲 등이 남긴 󰡔周易󰡕의 문장을 통해 도를 체득해서 그것의 뜻을 부연한 「繫辭傳」을 남긴 점, 朱熹 등 宋儒가 孟子 이래 끊어졌던 유학의 도를 체득하고 복희·공자의 󰡔주역󰡕 해석 성과를 충분히 학문하고 터득해서 문장으로 표현한 「易傳」을 저술했던 점을 들었다. 학습을 통해 진리를 터득하고서 표출되는 문장이 참된 것이라는 문학관으로 인해 실제 시 작품에서도 ‘敬工夫’을 통해 도를 체득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위와 같은 하세응의 가계, 학문성향, 출처관, 문학관 등을 살펴볼 때, 하세응의 학문성향에서 남명학의 특징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그가 남명의 학문성향을 계승하고 변호하려 한 흔적은 이만부와의 왕복 서한에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다. 여기서 하세응은 남명이 실천적 학문성향을 옹호하고 이만부가 남명학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점을 찾아내어 적극 변호하고 있다. 이만부는 당시 남명학파 인물들이 지식은 쌓지는 않고 실천만 부르짖기 때문에 知行을 두루 갖춘 학자가 배출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이것을 남명 학문의 폐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하세응은 학문방법에 있어 지행의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만부의 주장에 동의를 표했지만, 당시 사회에서 빈번히 발생되었던 실천이 결여된 학풍으로 인한 폐해를 근거로 시대 상황에 따라 학문 방향이 조절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이론의 근거는 남명의 학문이었으며, 남명이 중시했던 지식의 철저한 실천이 당대에 더욱 가치있는 덕목임을 주장하였다.
일상에서의 실천을 강조하고 程朱 이후의 시대에서 지식탐구의 가치를 낮게 보는 듯한 하세응의 주장에 대해, 이만부는 知行竝進이라는 학문방법은 有史 이래로 전해지는 성인들의 가르침이며 정주 또한 이것을 반복·부연했을 뿐이지 새로운 지식을 창조한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며, 바른 학문방법이 제시되지 않았던 시대가 없었으나 도가 실현된 시대 또한 없었음을 근거로 정주 이후에 실천을 강조해야 한다는 주장은 허구이며 오로지 성현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인 지행의 조화라는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세응은 이에 대해 지행의 조화가 바른 학문방법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시대 상황을 놓고 본다면 지식을 중시하고 실천을 등한시하는 이들로 인한 폐해가 무엇보다도 크기 때문에 실천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지식보다 실천을 강조해야 한다는 학설은 이만부로부터 유가 내에서 이단으로 간주되던 송나라 학자 象山 陸九淵의 학문과 유사하다는 의심을 받기에 이른다. 당시처럼 경직된 학문 풍토 하의 사회에서 하세응과 같은 주장은 자칫 이단으로 몰릴 여지가 컸으나, 하세응은 현실 상황에서 지식탐구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이들이 저지르는 병폐가 무엇보다 크므로 실천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세응이 이단의 혐의까지 받아가며 학문의 실천을 강조한 사상의 基底에는 남명의 학문이 자리하고 있다. 남명의 언설을 근거로 논지를 전개하면서 남명의 생각을 부연하고 있는 점을 볼 때, 하세응은 남명의 학문정신을 세밀히 이해했으며 그것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강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세응은 평생 벼슬하지 않고 학문에 침잠했다. 文科에 응시했지만 진정으로 벼슬에 뜻을 두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이것은 당시 남명학파가 처했던 정치·사회적 현실과 관련된다. 인조반정 이후 남명학파 지식인들은 정권을 쥔 당파가 후원하는 지역의 인물들에 비해 과거시험에서의 경쟁력이 여러 모로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세응은 도가 실현될 만한 시기엔 벼슬하는 것이 바른 출처이고, 도가 실현되지 않을 시기라 판단하면 은거하여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길러냄으로써 후세에까지 유학의 도를 보존하는 것을 使命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時事에 개입해서 헛되이 목숨을 잃는 행위는 유학의 도를 보존해서 후세에 전할 사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행동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그가 적극적으로 退處의 의지를 보인 것은 당시 남명학파의 현실적인 여건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명과 하홍도에게서 받은 영향도 크다. 남명은 평생 벼슬하지 않고 은거하여 학문을 연마하고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냄으로써 조선에 유학의 도가 번성하게 되는데 기여했다. 남명이 이처럼 퇴처 하면서도 사회에 기여하게 된 원인은 ‘處則有守’에 입각한 그의 엄정한 출처관에 의한 것이다. 당시를 도가 실현되지 못할 시대라 판단하여 벼슬을 거부하고 은거하여 유학의 도를 보존하고 전수하는 방법을 모색했던 것이다. 하홍도 또한 평생 은거하여 도를 보존하고 전수함으로써 자신의 儒家的 임무를 다한 것이다. 몇 차례의 벼슬이 내려졌으나 나가지 않았고, 부지런히 제자들을 기르고 학파의 활로를 모색함으로써 유학의 도가 유지·전승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데에 고심했던 것이다.
하세응은 남명·하홍도의 출처관을 계승하여 은거해 있으면서도 유학의 도를 보존하는 방법에 고심했다. 이러한 고민이 사회로 표현된 행위가 지역 내 서원이나 사당, 향교 등의 운영이나 행사에 참여하고, 지역 내 여러 훌륭한 유현들을 顯彰한 것이다. 하세응은 지역 공적인 기관의 글 다수를 맡아 지었고, 이러한 글을 통해 지역 내 유현들의 훌륭한 점을 널리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모두가 유학의 도를 유지해 나가려는 의식이 표현된 것들이다.
하세응의 이러한 의식과 행동으로 볼 때, 남명학의 주요한 계승자 계보에 넣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그의 학문은 아들 台窩 河必淸(1701~1758)을 통해 南溪 李甲龍(1734~1799), 南皐 李志容(1753~1831)에게 이어짐으로써 조선말까지 남명학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게 된 바탕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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