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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代 華夷觀의 전개와 성격 = The Development and Characteristics of Sinocentrism in Han Dynasty
저자
홍승현 (서강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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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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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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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38(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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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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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is to find out how Hua-yi, or sinocentrism, was understood and interpreted by the gentry during the Han Period of China and to identify the developments specific to each time period. To find out, the views of the following men on sinocentrism were analyzed: Jiayi under Emperor Wendi of Former Han Dynasty; Wenxue under Emperor Wudi;Xiaowangzhi under Emperor Xuandi; Bangu and Hexiu of the Later Han Dynasty.
Jiayi, who desired to build a new empire, claimed they needed to install the office dedicated to the Xiongnu and to deal with them in an aggressive manner – quite contrary to the widespread sentiment of the time. This sinocentric view was caused by the need to strengthen the authority and power of emperors in order to allow intellectuals to the government, or from the Zuozhuanxue tradition with a strong stance toward the barbarians. Jiayi argued for “sanbiao”, the detailed methodology, in order to distort the reality that is under the pressure of barbarians.
Jiayi emphasized the civilizing influence of the kingship and this was inherited by the Wenxue during the time of Emperor Wudi. Wenxue understood Wudi conquering the Xiongnu as the culmination of extravagance that exhausted China. They claimed that the barbarians will rush to serve China if the Emperors would rule the world with virtue, based on the moderate separation between the Chinese and the barbarians.
With Xuandi was enthroned, he wished to serve Wudi as his role model, thereby re-interpreting the sinocentric view. It was during this time that Xiaowangzhi asserted that the king never regards the barbarians as his subjects in the apocrypha. It was the revival of the traditional the sinocentric view and the check on the strong emperorship. He believed that the military campaign against the barbarians that betrayed China will ultimately lead to the abolition of the separation of the Chinese and the barbarians and unitary government of the Emperor on the barbarians. He therefore believed that China and the Xiongnu should not create the relationship of sovereign and subject between them in the first place.
Bangu of Later Han treated the barbarians as beasts, strongly opposed to their naturalization. Such strict separation came from Bangu’s personal experience in the war with the Xiongnu and his belief that the Chinese civilization is better than any. Fundamentally, it was caused by the Xiongnu, which requested peace but never ceasing to loot China on the other hand. On the contrary, Hexiu of Later Han Dynasty said that the barbarians can be enlightened, and that they can receive a rank if they are assimilated in the Chinese civilization. Such view can also be understood in terms of the logical coherence of Hexiu, but it was the result of the change of perspective on the barbarians due to the continued communication and exchange between China and the barbarians since the Former Han Dynasty.
이 글은 華夷觀이 漢代 사대부들에 의해 전개되었던 화이관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준비되었다. 이를 위해 前漢의 賈誼와 鹽鐵會議에 참석했던 文學, 蕭望之의 화이관과 후한의 班固, 何休의 그것을 분석하였다.
황제개념이 실현될 수 없었던 한 초, 한과 匈奴는 ‘二國’ 혹은 ‘兩國’으로 대등하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가의는 시대적 통념과는 다르게 흉노에 대한 專官 설치와 적극적인 공세를 주장하였다. 이러한 화이관은 文學之士들의 정계진출에 유리한 지형을 창출한 황제권 강화의 필요로부터, 혹은 四夷는 형벌로써 위협해야 한다는 左傳學의 전통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가의 역시 중국이 夷狄을 압도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이적을 애호하고 신의를 지킨다면 이적 스스로가 복속해 올 것이라는 王化思想을 주장한다. 가의에 의해 주장되었던 왕화사상은 이후 황제권을 제약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武帝 사후, 大夫가 무제의 匈奴征伐을 위대한 세계제국 수립을 위한 聖戰으로 이해한 것과는 달리 文學들은 흉노정벌을 중국을 피로하게 하였던 사치스러움의 극치로 이해하였다. 이 때 문학들은 자신들의 화이분리 논리를 관철하기 위해 왕화사상을 주장하였는데, 이 시기 왕화사상은 팽창하는 황제권 제어의 도구가 되었다. 무제시기를 전범의 시기로 삼고자 하는 宣帝가 즉위하며 화이관계에 대한 논의가 재등장하게 된다. 선제시기에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팽창주의적 요소가 농후한 『穀梁傳』이 선양되면서, 사회적으로 강한 국가를 지향하는 분위기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시기 蕭望之는 緯書를 이용하여 선제에게 ‘王者는 이적을 신하삼지 않는다’는 이른바 ‘夷狄不臣論’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황제의 세계제국을 부정하며,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질서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팽창하는 황제권의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이적불신’의 원칙은 한대 대외정책 수립에 있어 중요한 근거로 작용하였으며, 白虎觀會議에서 공식적으로 국가적 원칙으로 규정된다.
따라서 後漢 초를 살던 班固에게서 철저한 화이분리가 주장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좌전학의 영향을 받은 반고는 이적을 금수로 취급하며, 이적의 귀화조차도 반대하였다. 이러한 엄격한 분리론은 흉노와의 전투에 종군했고, 문화우월주의에 입각하여 이적 멸시의 경향이 특히 강했던 반고 개인의 성향으로부터 기인하기도 하였지만, 근본적으로는 당시 和親을 요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노략질을 하던 북흉노의 도발과 雲中郡을 비롯한 8군에 남흉노가 內遷함으로 인해 발생했던 변경지역의 위기감으로부터 제기되었다. 이와는 달리 후한 말 何休는 ‘夷狄進至於爵論’을 이용하여 이적 교화의 가능성을 주장한다. 그는 이적도 중국에 동화된다면 작을 받을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적을 배려하는 또 다른 화이관의 전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화이관은 한왕조를 大平의 시대로 보고 있던 하휴 학문의 논리적 정합성의 결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나, 현실적으로 전한 이래 중국과 이적의 지속적인 교통이 이적에 대한 인식을 변화하게 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휴 역시도 화이분리라는 공양학의 근간을 뛰어넘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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