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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지역의 후백제유적과 역사적 성격 = Later Baekje Remains in Jeollanam-do Region and Their Historical Characteristics
저자
이동희 (순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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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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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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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6(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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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udy examined the trace and historical significance of Later Baekje through the remains andrelics of Jeollanam-do region where Gyeonghwon rose in arms and laid the groundwork for thefoundation of Later Baekje.
According to the data excavated and examined until today, the remains related with Later Baekje arefound in Suncheon, Gwangyang, Naju, and Gwangju. The main remains are fortresses as if they reflectthe chaotic circumstances at the time.
The place where Gyeonghwon would have taken arms for the first time is assumed to be the easternregion of Jeollanam-do. The reason Gyeonghwon could use this area to raise army here has relevanceto the fact that the native power became isolated from the central power of Silla before the end of the9th century is proven archeologically.
Especially, the fact that the major buildings and relics of the Unified Silla Dynasty in the MaroFortress belong to the mid 9th century and the beginning the 10th century implies that importantpolitical innovations took place at the time. In other words, the appearance of various prestige goodsalongside the rapid increase of large buildings indicate that new power occupied Maro Fortress.
The roof tile marked ‘Marogwan’excavated in Maro Fortress is important for it symbolicallyexpressed that Gwangyang was the territory of (Later) Baekje by using the old name of Baekje used inGwangyang at the end of the Unified Silla Dynasty.
The fact that relics of outstandingly unique characteristics are found in a large amount in MaroFortress compared with other remains supports the idea that it was the origin of Gyeonhwon’s regimeand that it was the territory of Later Baekje for the longest time.
Okryong Temple in Gwangyang was the temple that Priests Doseon and Gyeongbo settled in, and itdraws attention in relation to Gyeonhwon’s policy for supporting the temples of the Zen Sect.
Gyeonhwon occupied Mujinju at the end of the 9th century and founded Later Baekje and he usedMujingoseong Fortress of Gwangju as the back fortress. Naju was the ferocious battlefield betweenLater Baekje and Goryeo led by Wanggeon, and Jamisan Fortress in Naju is estimated to be thefortress constructed by Later Baekje at the time.
견훤이 무장봉기하여 후백제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 전남지역의 유적·유물을 통하여 후백제의 자취와 역사적 의의를 살펴보았다.
현재까지 발굴조사된 자료로 보면, 후백제와 관련된 유적은 순천·광양·나주·광주 등지에서 확인된다. 당시 혼란기 상황을 반영하듯 주된 유적은 성곽이다.
견훤이 처음 거병한 곳을 순천·광양 일대의 전남동부권으로 보았다. 견훤이 이곳을 근거로 봉기할 수 있었던 배경은 견훤이 방수처로 부임하는 9세기말 이전에 토착세력이 신라 중앙과 유리되는 양상이 고고학적으로확인된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광양 마로산성의 통일신라시대 중요 건물과 유물이 9세기중후엽–10세기전엽에 속한다는 것은 이 무렵에 중요한 정치적 변혁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즉, 각종 위세품의 출현과 더불어 대규모 건물의 급증은 새로운 세력이 마로산성을 점유했음을 의미한다.
마로산성 출토‘마로관’명 기와는 통일신라말에 광양의 백제 古號를 사용함으로써 광양이 (후)백제영역이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마로산성에서 다른 유적에 비해 독자성이 두드러진 유물이 많이 확인된 것은 후백제와 견훤 정권의 시발지이자 가장 오랫동안 후백제의 영역이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한편, 광양 옥룡사는 도선과 경보가 주석하였던 사찰로서, 선종사찰을 지원한 견훤의 정책과 관련지어 주목된다. 견훤은 9세기말에 무진주를 점령하고 후백제를 건국했는데, 배후산성으로 광주 무진고성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나주는 후백제와 고려 왕건과의 격전지인데, 나주 자미산성은 그 무렵에 후백제에 의해 축조된 성으로 추정된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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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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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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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1-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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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7 | 0.7 | 0.72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72 | 0.89 | 1.572 | 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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