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조선 전기 초피 생산과 유통
저자
한성주 (강원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911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91-119(29쪽)
제공처
소장기관
본고는 조선 전기 초피 생산지를 검토해 보고, 초피 유통에 대해 시론적인 분석을 하였다. 이를 통해 첫째, 초피는 강원도와 평안도에 궐공으로 지정되 었고, 둘째, 강원도의 경우 토공으로 지정된 지역이 있으나, 실제 초피 공납 의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셋째, 평안도의 경우 4개 지역 의 토산 지역이 확인되었으며, 1425년(세종 7)에는 매년 700령의 초피 상납이 정해졌다. 넷째, 함경도의 경우 처음에는 궐공이 없었으나, 총 13개 지역의 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1425년(세종 7)에 매년 1,565령의 초피 상납이 정해졌 다. 특히 두만강 유역의 5진 지역 역시 초피 공물이 지정되었다. 따라서 조선 전기 평안도와 함경도는 주요 초피 산지였으며, 그중에서도 함경도가 초피의 최대 생산지였다. 15세기 초에는 함경도 갑산과 평안도 여연에서 생산되는 초피가 왕실로 진 상되었고, 두 도의 초피가 속아문의 포화와 교환되었으며, 이 초피는 다시 명 사신들이 가져온 명의 포화와 교환되었다. 또 북방에서 생산된 초피는 여러 다양한 사적 경로를 통해 서울의 시장에서 무역되었다. 이렇게 서울에 모인 초피는 다시 지방의 하등품 초피와 교환되거나, 다른 현물 또는 면포 등과 교환되어 지방의 공물로 납부되었다. 성종대 이후 서울에 모인 초피는 부상대고와 연결된 방납자의 초피였다. 그런데 점차 조선에서 생산되는 초피가 질이 좋지 않게 되자, 방납자의 초피 대부분은 여진인들과의 무역에서 얻었다. 여진인들과 초피 무역을 주도한 것 은 商賈들이었으며, 이들은 서울에서 가지고 간 면포를 변방의 우마와 철물 등과 교환한 뒤, 다시 여진인들과 초피 무역을 통해 이익을 도모하였다. 그리 고 여진인들의 상경으로만 매년 720~960장의 초피가 왕실에 진상되었다. 여진 인들이 진상한 초피에 대해 조선에서는 回賜라는 형식으로 그 값을 지불해 주었는데, 외거노비의 貢布가 사섬시에 바쳐졌고, 그 포가 야인에게 答賜되었 으며, 상고들이 다시 綿紬와 綿布로 여진인들이 받은 포와 바꾸었다. 조선 전기 초피는 국내와 만주 지역에서 생산되어 다양한 유통체계를 거쳐 활발하게 거래되었다. 즉 공물로 지정된 초피는 공적인 체계 안에서 왕실과 국가에 납부되었고, 민간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사적인 체계 안에서 다른 상품들과 교역되었다.
더보기The study reviewed producing region in the Early Joseon and tried to analyze distribution of sable.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The sable was designated as tribute(貢物) to royal family in Gangwon-do and Pyeongan-do. Second, The author could not find out record of paying tribute of sable in Gangwon-do. Third, Four regions showing no record of paying tribute of sable were identified in Pyeongan-do. In 1425(the 7th year of King Sejong), it was ordered that 700 sables every year should be paid. Fourth, In Hamgyeong-do, sable tribute to royal family was not designated in the beginning. But later, 13 regions were designated and in 1425(the 7th year of King Sejong), it was ordered that 1,565 sable every year should paid. Especially, Five Jin around Tomen River were designated to pay sable tribute. Thus, Pyeongan-do and Hamgyeong-do were main producing regions for sable in the Early Joseon. Hamgyeong-do was the largest producing region for sable. In the Early 15th century, sable produced in Gapsan(甲山) of Hamgyeong-do and Yeoyeon(閭延) of Pyeongan-do had been sent to royal family as tribute. The sables from the two areas were exchanged with hemp money(布貨) of low level government office. Again the sables were exchanged with hemp money of Ming dynasty that envoys from Ming brought. And sables produced in the northern areas were exchanged in the market of Hanyang through various personal routes. The sables gathered in Hanyang were exchanged with inferior sables from provinces. Or they were exchanged with other actual goods or cotton hemp, which in turn, were paid as tribute to local government. Sables gathered in Hanyang after the period of King Seongjong were ones of Bangnapja(防納者, person who paid tribute of regional specialty instead of people) connected to caravan. But as quality of sable produced in Joseon became poor, most of sables came from trade with Jurchen. Merchants led sable trade with Jurchen. The merchants exchanged cotton carried from Hanyang with cow, horse, steel products etc. from border area. They exchanged such products from border with sables of Jurchen. Jurchen visited Hanyang every year and gave 720~960 sables to royal family. Joseon paid for the sables given by Jurchen in the form of Hoesa(回賜). Hemp money given by Oigeonobi(外居奴婢, servant who lived independently away from landlord) was offered to low level government office. And the offered hemp money was paid to Jurchen. Merchants exchanged cotton with hemp money of Jurchen. Sables in the Early Joseon were produced in domestic areas and Manchuria. The sables were actively transacted through various distribution systems. In short, sables designated as tribute were paid to royal family and government by official system. On the other hand, to meet private demand, sables were exchanged with other goods through private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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