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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정순왕후 김씨의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재조명 = Rethinking the political leadership of Queen Jeongsoon Kim in the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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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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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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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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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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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의 정치적 리더십에 대해 재조명한 것이다. 정순왕후 김씨(1745~1805)는 경주 김씨 金漢?(1723-1769)의 딸로서 영조35년(1759) 15세에 영조의 계비가 되었으며, 그 후 왕대비, 대왕대비의 지위를 누리며 모두 46년간 국모의 지위에 있었다. 순조 즉위 후에는 3년 반 동안 수렴청정까지 하면서 대왕대비의 지위까지 누렸지만 후사가 없었다. 순조 5년(1805) 1월 12일에 61세를 일기로 창덕궁에서 승하하여 영조의 元陵에 합장되었다. 먼저 정순왕후 김씨의 리더십에 대한 배경으로서 친정 가문인 경주 김씨 가문과 어릴 때부터의 총명하고 당찬 그녀의 개인적 성품과 리더로서의 역량 등을 살펴보았다. 그 다음으로 국왕과의 관계속에서의 리더십으로 영조대에 있어서 계비로서의 리더십, 정조대 왕대비로서의 리더십, 순조대 대왕대비로서의 리더십에 대하여 대표적인 사건 사례를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정순왕후 김씨의 정치적 리더십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영조대에 있어서 17년간의 계비로서의 정치적 리더십의 경우를 살펴보면, 조선왕조의 여러 계비들 가운데 영조의 계비였던 정순왕후 김씨의 경우 영조와 51세의 나이 차이가 있었으며 친자식이 없는 경우였다. 그녀는 친자식이 없는 가운데 계비로서의 지위를 누리기 위하여 자신의 친정 가문의 소속 당파인 노론 벽파를 이용하여 지위를 보존하고자 하였다. 결국 왕위계승자였던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에도 경주 김씨 친정가문을 통해서 개입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정조대 24년간 왕대비로서의 정치적 리더십의 경우를 보면, 조선왕실에는 수많은 왕대비들이 있었다. 그 중 정순왕후의 경우는 특별한 존재였다. 그녀는 그녀의 손자뻘에 해당되는 정조와의 권력쟁탈전의 수장으로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자연히 왕권과 충돌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내명부의 수장으로서의 리더십 뿐만 아니라 정치적 리더십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녀는 그녀의 정치적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구사하였다. 정조대 정순왕후는 여러 차례 언서를 하교하며 정치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즉 종사를 위하여 후사 문제와 역적 토벌에 앞장섰던 것이다. 정조는 그녀의 정치적 리더십을 제어하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을 추진하였다, 이에 대하여 정순왕후 역시 끊임없이 도전하였던 것이다. 셋째, 4년간의 대왕대비로서의 정치적 리더십의 경우를 보면, 1800년 6월 정조가 승하하고 나이 어린 순조가 즉위하자 정순왕후는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3년 반 동안의 수렴청정을 행하였다. 정순왕후는 노론 벽파의 강력한 후원자였다. 대왕대비가 된 정순왕후는 女君 또는 女主로 자처하며 `垂簾聽政節目`을 제정하여 수렴청정을 행하였다. 정순왕후는 3년 반 동안의 수렴청정을 통해 총 480건의 하교를 명하면서 국정에 깊이 개입했다. 정조가 구축한 탕평정치의 기반을 파괴하고 자신의 친인척들과 심환지를 비롯한 노론 벽파의 세력확장을 후원했다. 정순왕후가 수렴청정 기간 동안 국정 운영의 제일 과제로 삼은 것은 정치, 군사 등 여러 방면에서 정조가 구축한 탕평정치의 기반을 타파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정순왕후는 왕의 계비로서, 왕대비로서, 대왕대비로서 그의 지위와 역할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총명하고 논리적이고 결단력이 있었다. 그리고 오랜 경험으로 정치 감각이 있었고 늘 명분을 중시하였다. 그녀의 정치적 영향력이 영조와 정조대에는 미약하였으나, 순조대에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더보기This research rethinks the political leadership of Queen Jeongsoon, who is the second wife of King Yeongjo. Queen Jeongsoon Kim(1745-1805), daughter of Kim Han-gu, got married King Yeongjo at the age of 15. After that, she became the highest royal person as the Queen Mother(Wang Daebi) and the Grandmother of the King (Daewang Daebi). The characteristics of her leadership can be described as follows: First, Queen Jeongsoon had no child among many second wives of kings in Joseon Dynasty. This made her utilize her family`s political faction, Noron Peok-pa, to establish her status. As the result, she played a role in dead of Crown Prince Sado. Second, there were many mothers of king. Among them, Queen Jeongsoon was one of the special queens. After her grandson King Jeongjo being crowned, she had tried to intermeddle in government administrations. But King Jeongjo did not want to her participation and wanted to strengthen his power. In King Jeongjo reign, she proclaimed Hangul(Korean alphabet) message to wield political power, especially in succeeding the crown and in suppression a rebellion. She utilized her status as the Queen Mother. Third, after King Jeongjo died, 11-year-old boy King Sunjo ascended to the crown. She reigned behind the curtain for three and half years as the Queen Grandmother. In that period, she gave more than 480 adminstration documents and tried to abolish fairness policy to each opposite political parties, called TangPyeongChaek(Policy of Impartiality), issued by King Jeongjo. In summarizing, she showed her leadership in various ways as the Second Queen, the Mother Queen and the Grandmother Queen. She was intellectual, logical and decisive person. She had a political sense and followed a justification. She played her role as the loser in King Jeongjo reign and winner in King Sunjo reign during her life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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