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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정권의 서남지역 경략과 토착세력의 동향 = Gungye's Governance over the Southwestern Coastal Area and Native Tr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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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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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
KDC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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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03-250(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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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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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정권의 서남해지역 경략의 주체는 왕건이며,『高麗史』등에 비교적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왕건이 현지 호족들의 도움을 받아 후백제의 도전을 물리치고 여러 차례의 전투에 승리하여 서남해지역을 차지한 내용이 핵심이다. 그러나 양국의 대립은 왕건이 활약한 궁예정권의 일방적인 우세가 아니라 일진일퇴 공방전의 연속이었다.
왕건의 입장을 주로 반영하여 서술된 사료에 대한 비판 없이 진행된 기존의 연구는 실체적인 면모를 파악하지 못한 한계가 없지 않다. 서남해지역이 오랜 세월 동안 경관의 변화가 일어나 地形이 크게 변화된 사실 역시 고려해야 한다. 양국의 치열한 대립 속에 표출된 토착세력의 향배는 문헌 사료 외에 설화와 지명 등에 반영되어 있다. 왕건 및 견훤 출생 설화, 몽탄과 복사초리 및 복룡산 전투 설화, 왕망 설화 및 여러 地名, 강진 무위사 선각대사탑비 등은 부족한 문헌 사료를 보완할 수 있는 간접 자료이다.
양국의 대립은 현지 호족세력의 향배와 맞물려 복잡한 양상을 띠고 전개되었다. 궁예정권이 서남해지역 진출에 사활을 건 까닭은 후백제의 배후를 교란할 수 있는 정치·군사적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그 외에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곡창지대이며, 여러 나라와 연결되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를 차지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았다.
서남해지역의 해상세력은 단일한 세력권을 형성한 것이 아니라 포구와 도서를 중심으로 여러 집단이 공존하였다. 서남해지역의 토착세력은 榮山內海의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길을 선택하였다. 도서지역의 해상세력 역시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면서 끊임없이 자활을 추구하였다.
이들은 후백제가 전주로 천도한 후 서남해지역으로 진출하기 이전까지 10여 년 동안 자립을 유지하였다. 후백제는 901년에 서남해지역으로 진출하여 탐진강 유역과 영산강 중·하류지역 등 영산내해 남쪽을 차지하였다. 궁예정권 역시 후백제의 압박에 위협을 느낀 나주 등의 호족과 연결하여 後高句麗期에 해당하는 903년에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궁예정권과 후백제의 대립은 摩震期에 해당하는 909년 이후 본격화되었다. 양국은 수차례에 걸쳐 陸戰과 海戰을 치렀다. 궁예정권은 911년에 벌어진 파군교 전투와 복사초리 전투 등을 승리로 이끌면서 서남해지역 전역을 석권하였다. 궁예정권은 승리의 여세를 몰아 국호를 泰封으로 바꾸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궁예정권의 서남해지역 경략에서 大尾를 장식한 전투는 궁예가 912년 親征한 덕진만 海戰이었다. 태봉은 서남해지역을 확고히 장악하여 후백제의 배후를 위협하는 군사적 거점으로 활용하고, 풍부한 인적 및 물적 자원은 전쟁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Gungye's government desperately advanced towards the Southwestern coastal area with the purpose of using it as a political and military base which might disturb the post-Baekje kingdom. In addition, it was a rich grain belt and a strategic point for sea traffic which was connected with many countries.
The sea powers of the Southwestern coastal area were divided into several groups centering on ports and islands rather than a single power. The natives of the area were separated into those in the south and those north of the inland sea of Yongsan. Sea powers of the islands pursued being self-supporting while doing independent activities. They had maintained their independence for ten years before they advanced towards the Southwestern coastal area after the post-Bekje kingdom moved its capital to Jeonju.
The Post-Bekje kingdom advanced towards the Southwestern coastal area in 901 and occupied the south of the inland sea of Yongsan, the Tamjin river area, and the Youngsan river midstream and low stream area. Gungye's government developed a bridgehead in 903 which was in the post-Goguryeo period by uniting with powerful families which felt threatened by pressure from the post-Bekje kingdom.
Opposition between Gungye and the post-Bekje kingdom increased after 909 which was the Majin period. Both countries had several land and sea battles. The Gungye government conquered the Southwestern coastal area winning the Pagungyo Battle and the Boksachori Battle in 911. It had a period of prosperity through successive victories and changed its national name to Taebong.
Its finale battle was Dukjin Bay Battle which Gungye oversaw himself in 912. Taebong was used as a military base which threatened the background of the post-Bekje kingdom by dominating the Southwestern coastal area, and the abundant personal and physical resources was energy for victory in bat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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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 | 0.6 | 0.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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