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직아악부의 조직과 활동
저자
발행사항
성남 : 韓國學中央硏究院 韓國學大學院 2016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韓國學中央硏究院 韓國學大學院 , 音樂學 專攻 , 2016.2
발행연도
2016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KDC
679.0911 판사항(5)
발행국(도시)
경기도
형태사항
viii, 237 p. : 삽화 ; 26 cm
일반주기명
참고문헌 : p.212-220
UCI식별코드
I804:41054-200000713794
소장기관
この論文は日帝強占期に李王職雅楽部の組織体系と役割を把握し、その音楽活動を考察したのだ。李王職雅楽部は日帝強占期の李王職に所属されて李王家の儀式に必要な音楽を專担した部署だった。また、李王職雅楽部は朝鮮時代の掌楽院の伝統を継承した音楽活動だけではなく、新たに舞台公演活動、放送出演、アルバム発売、出版など、様々な活動を担当した。この論文ではこのような李王職雅楽部の組織とその具体的な活動をうかがうために次のような体系に分けて研究した。
李王職雅楽部の活動を目にする前に、李王職の職制と李王職雅楽部の組織体系及びその性格を調べた。
李王職は大韓帝国で皇室関連業務を担当した宮内府の役割を縮小させて‘李王家の管理機関’という意味で作られた組織体である。日帝が大韓帝国皇室を日本の天皇家に強制編入させることによって日本の宮內省の傘下に所属されていた。しかし、植民地だった朝鮮にある組織だったため、実質的には朝鮮総督府の管理監督の下に置かれていた。
李王職雅楽部は音楽演奏集団という特性のために独自の体系を持って運営されたが、李王職の中でその存在がぼんやりした末端部署だった。李王職では雅楽部を廃止させるために正常な演奏が難しいほど雅楽部員を削減することもした。李王職の設立の初期には大韓帝国の掌禮院と李王職雅楽部の職責が混用されていたが、1915年頃に雅楽師長、雅楽師、雅楽手長、雅楽手に整理された。以後、李王職雅楽部には付属に雅楽部員養成所が生じた。李王職雅楽部員養成所は李王家の儀式に必要な祭礼楽を中心に教育した。ところが、李王職の運営に変化が生じれば、雅楽部員養成所にも変化反映されて現れた。
次に李王職雅楽部の音楽活動は掌楽院の伝統を継承した公演活動と変化した時代によって新たに行われた音楽活動に分けて考察した。
第一に調べた掌楽院の伝統を継承した音楽活動では伝統の持続だけではなく、変化も共に行われた。李王職雅楽部では宗廟、景孝殿、懿孝殿、文廟祭禮と高宗と純宗の祔廟儀のような祭享楽を演奏した。祭享楽は年間祭礼の回数は減少したが、欠かさず時期に合わせて祭を行い、演奏の順序や登歌、軒架の位置など基本的な祭礼形式は守られていた。しかし、使用する楽器が減少して登歌と軒架でそれぞれ10種あまりの楽器だけで演奏をしなければならず、宗廟祭礼楽は楽曲の名が変わる変化など、劣悪な条件で不安定に演奏の伝統を持続した。
宮中宴會は高宗と純宗の誕生日に行った宴会をうかがった。この時には伝統進宴の形態が完全に解体され、西洋音楽が演奏されて活動写真が上映された。李王職雅楽部ではこの燕享で主導的な役割を担当できず、公演に参加だけする状況だった。没落した王室で騒がしい宴会を行うことができなかったために宮中宴会も多くないので、李王職雅楽部は実際に燕享で燕享楽を演奏する機会が多くなかった。燕享楽の演奏活動は1930年代以降、劇場公演、放送出演、アルバム発売の活動で行われるようになった。
第二に調べた20世紀の新たな李王職雅楽部の活動は宮殿の外にいる大衆を対象に領域が拡張された。朝鮮神宮、龍山総督官邸、博覧会、昌慶宮夜櫻、日本京都公演などだ。このような公演は主に日帝によって強制的に作られて演奏された。
李王職雅楽部の内部で行われた公演は雅楽部を訪問した客たちのための歓迎演奏と肄習会があった。肄習会は雅楽部で自ら用意した演奏向上のプログラムだが、雅楽部員が自発的に公演の内容と楽器の編成及び楽曲を構成した。この時のこのような構成は宮中音楽を過去の演奏形態がない舞台観賞用の音楽または放送用音楽に新たに構成する必要が生じることになった当時の状況と関連している。
李王職雅楽部は1928年から放送活動を始め、1945年まで約170回出演した。この時に楽器の編成を重奏あるいは独奏で変えて曲に合った楽器の編成に再編して楽曲を構成し、この試みが以降の宮中音楽の舞台の編成で固定されることに重要な役割を果たした。放送活動だけではなく、アルバムの『朝鮮雅楽』、『雅楽精粹』を発売した。このアルバムは李王職雅楽部の音楽を聞くことができる唯一の音源としての価値がある。
そして李王職雅楽部では文献の発刊活動と楽器の制作などのような研究開発活動も行われた。編鐘、編磬のような重要な楽器の製作と楽器の保守がいた。膨大な量の井間譜と五線楽譜の発刊は長い時間にたくさんの努力をかけて行われたもので、非常に意味がある活動の一つと考えているが、この論文で精密に扱わず、リストだけを提示した。
李王職雅楽部は現代の雅楽に与えた功労と役割は認めるが、内容は解明されないまま、研究が持ち越されてきた。李王職雅楽部の活動の重要性を考慮して組織と活動を照明した。
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의 조직체계와 역할을 파악하고 그 음악활동을 고찰한 것이다. 이왕직아악부는 일제강점기 이왕직에 소속되어 이왕가의 의식에 필요한 음악을 전담하였던 부서였다. 이왕직아악부는 이왕가에 지속되었던 전통적인 의례에 음악을 담당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궁중음악 전통 계승을 주요 활동으로 삼고 있었지만, 시대변화에 따른 새로운 음악활동과 조선총독부에서 요구에 응하는 음악활동도 하였다. 즉 아악부는 조선시대 장악원의 전통을 계승한 음악활동 뿐만 아니라 새롭게 무대공연활동・방송출연・음반발매・출판 등 다양한 활동을 담당했다.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이왕직아악부의 조직과 그 구체적인 활동을 살펴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체계로 나누어 연구하였다.
먼저 이왕직아악부의 활동을 살펴보기에 앞서 이왕직의 직제와 이왕직아악부의 조직 체계 및 그 성격을 살펴보았다.
이왕직은 대한제국에서 황실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던 궁내부의 역할을 축소시켜 ‘이씨 왕가 관리기관’이라는 의미로 만든 조직체이다. 일제가 대한제국황실을 일본 천황가에 강제로 편입시킴에 따라 일본 궁내성 산하에 소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인 조선 땅에 있는 조직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조선총독부의 관리 감독 하에 놓여있었다. 따라서 이왕직아악부는 직접적인 상부기관인 이왕직과 조선총독부・일본 궁내성 등 상부 조직의 요구에 부응하는 음악활동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왕직아악부의 운영은 전적으로 이왕직의 운영기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있었다. 이왕직의 직제는 왕실의 변동에 따라 조직과 운영에 큰 변화가 있었지만 이왕직아악부 조직에는 직접적인 영향은 없었다. 그러나 공연을 비롯한 음악 활동양상에는 변화가 있었다. 변화의 기점은 대체적으로는 순종 국상을 전후로 하여, 그 이후 이왕직아악부의 바깥 활동이 활발하게 나타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왕직아악부는 음악연주집단이라는 특성 때문에 독자적인 체계를 가지고 운영되었지만, 이왕직 내에서 그 존재가 미약한 말단 부서였다. 이왕직에서는 아악부를 폐지하고자 정상적인 연주가 어려울 정도로 아악부원을 감원하기도 하고, 소속부서를 이리저리 옮기는 등 변화가 있었다. 또한 이왕직 설립 초기에는 대한제국 장례원과 이왕직아악부의 직책이 혼용되다가, 1915년 무렵 아악사장・아악사・아악수장・아악수로 정리되었다. 이후 이왕직아악부에는 부속으로 아악부원양성소가 생기면서 아악생과 아악수보가 추가되었고, 필요에 따라 촉탁제도를 활용하여 분야별로 촉탁이 근무하였다.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는 이왕가의 의식에 필요한 아악을 교육시킬 목적으로 아악생을 모집하였기 때문에 제례악을 중심으로 교육하였다. 그런데 이왕직의운영에 변화가 생기면 아악부원양성소에도 변화 반영되어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경효전제례와 의효전제례가 폐지되면 아악부원양성소의 교육내용에서 경효전제례악과 의효전제례악이 빠지게 되고, 아악부의 활동이 궁궐 밖 무대・극장・방송으로 확장되는 시기에는 여기에서 사용할 연례악 중심으로 학습내용이 재편되는 변화가 있었다.
다음으로 이왕직아악부의 음악활동은 장악원 전통을 계승한 공연활동과 변화된 시대에 따라 새롭게 진행된 음악활동으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첫째로 살펴본 장악원의 전통을 계승한 음악활동에서는 전통의 지속뿐만 아니라 변화도 함께 이루어졌다. 이왕직아악부에서는 종묘・경효전・의효전・문묘제례와 고종과 순종의 부묘의와 같은 제향악을 연주했다. 제향악은 연간 제례 횟수는 감소하였으나 거르지 않고 때에 맞추어 제를 지냈으며, 연주순서나 등가・헌가의 위치 등 기본적인 제례 형식은 지켜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용악기가 감소하여 등가와 헌가에서 각각 10여 종의 악기만으로 연주를 해야 했고, 종묘제례악은 악곡명이 바뀌는 변화 등 열악한 조건 속에 불안정하게 연주 전통을 지속했다.
궁중연회는 고종과 순종의 생신에 지냈던 두 번의 연회를 살펴보았는데, 전통 진연의 형태가 완전히 해체되어 서양음악이 연주되고 활동사진이 상영되기도 하는 모습이었다. 이왕직아악부에서는 이러한 연향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고 프로그램 중 일부에 참가하는 상황이었다. 몰락한 왕실에서 떠들썩한 연회를 지낼 수 없었기 때문에 궁중연회도 많지 않아 이왕직아악부는 실제 연향에서 연향악을 연주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연향악 연주활동은 1930년대 이후 극장공연・방송출연・음반취입 활동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둘째로 살펴본 20세기 새로운 이왕직아악부의 활동은 궁궐 밖 대중을 대상으로 영역이 확장되었다. 조선신궁・용산총독관저・박람회・창경궁밤벛꽃놀이・일본교토공연 등이 그것인데 이러한 공연은 주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지고 연주되었던 공연이었다.
이왕직아악부 내부에서 있었던 공연은 아악부 방문객을 위한 환영 연주와 이습회가 있었다. 방문객 환영연주는 일주에 3회 이상 열린 소규모 공연이었는데 관람객을 규제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이습회는 아악부에서 스스로 마련한 연주향상 프로그램이다. 아악부원이 자발적으로 공연내용과 악기편성 및 악곡을 구성하였다. 이때의 이런 구성은 궁중음악을 과거의 연주형태가 아닌 무대 감상용 음악 또는 방송용 음악으로 새롭게 구성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던 당시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왕직아악부는 1928년부터 방송 활동을 시작하여 1945년까지 약170여회 출연하였다. 이왕직아악부에서는 궁중합주 중심의 악기편성을 중주 혹은 독주로 바꾸며 곡에 맞는 악기편성으로 재편하며 악곡을 구성하였고 이때에 시도하였던 구성이 이후 궁중음악 무대 편성으로 고정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방송활동 뿐만 아니라 음반 『조선아악』・『아악정수』를 발매하여 대중이 궁중음악을 손쉽게 접근 가능하도록 기회도 마련되었다. 이 음반은 이왕직아악부 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 유일한 음원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왕직아악부에서는 문헌발간 활동과 악기제작 등과 같은 연구 개발 활동도 이루어졌다. 편종 편경과 같은 중요한 악기제작과 악기보수 등과 방대한 양의 정간보와 오선악보 발간은 오랜 시간 많은 노력을 들여 진행되었던 것으로 매우 의미 있는 활동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이 논문에서는 악서와 악보 편찬에 관한 목록만 파악하고 치밀하게 분석하는 데 이르지는 못하였다.
이왕직아악부는 일제강점기 강압적인 상황에서 주어진 음악을 반드시 수행해야하는 조직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할은 인정하지만 내용은 규명되지 않은 채 연구가 미루어져 왔다. 이왕직아악부의 당시 활동에 대한 속단은 금해야 하겠지만 현대 국악계에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이왕직아악부의 조직과 활동을 조명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he organizational system and the role of the Yiwangjik Aakbu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to consider its musical activities. Yiwangjik Aakbu was part of Yiwangjik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the department that was in exclusive charge of the music required for the ceremony of the Lee Dynasty. Also, Yiwangjik Aakbu was not only in charge of the musical activities succeeding the tradition of Jangagwon in the Joseon Dynasty era, but also was in charge of various activities, such as new stage performance activities, appearing in broadcast, and recording and publishing albums. In this study, the organization and the detailed activities of the Yiwangjik Aakbu was identified by dividing into the following systems. Before looking into the activities of Yiwangjik Aakbu, the organizational setup of Yiwangjik and the organizational system and characteristics of the Yiwangjik Aakbu were identified.
Yiwangjik is an organization formed in the meaning of “Lee Dynasty management agency” by scaling down the role of the Gungnaebu that was in charge of the imperial family in the Korean Empire. As the Japanese forced the imperial family of the Korean Empire into the Japanese emperor family, it was included in the Japanese imperial patronage. However, as it was an organization in the colonial land of Joseon, it was actually included under management and supervision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The Yiwangjik Aakbu was operated in an independent system due to its characteristics of the musical performance group, but it was a minor department in Yiwangjik with indistinct existence. The Yiwangjik reduced the members of the Aakbu making it difficult for normal performance to abolish the Aakbu. In the initial period of establishing Yiwangjik, the position of Jangnewon in the Korean Empire and Yiwangjik Aakbu was used together, and in 1915, it was finally arranged to Aaksajang・Aaksa・Aaksoojang・Aaksoo. Afterwards, the Yiwangjik Aakbu was additionally formed of the court music player training school. The training school of Yiwangjik Aakbu trained mainly on the Jeryeak, the ritual music required for the ceremony on the Lee Dynasty. However, when there are changes in the operation of Yiwangjik, the changes were also reflected to the court music player training school. There was a change of the training contents of the court music player training school being reorganized.
Next, the musical activities of the Yiwangjik Aakbu were considered by dividing into the performance succeeding the tradition of Jangagwon, and the musical activities newlyperformed according to the changed era. First, in the musical activity succeeding the tradition of Jangagwon, not only the continuity of the tradition, but also change was enabled together. In the Yiwangjik Aakbu, music for Jongmyo Shrine, Gyeonghyojeon, Uihyojeon, and Munmyo ancestral rituals and for Bumyo ceremony of King Gojong and King Sunjong were played. For the ceremonial rites music, the annual number of ceremonies were decreased, but the ceremony was performed without skipping, and the basic ceremonial form of order of play and location of the Deonga and Heonga were still kept. However, the number of instruments played were reduced to play the Deonga and Heonga with only 10 instruments each, and in the poor condition of the Jongmyo ceremonial rites music changing in its name, the tradition of the traditional music was sustained unstably.
For the royal banquet, the two banquets held on King Gojong and King Sunjong’s birthdays were identified, and the traditional royal banquet form was completely gone, and instead, the Western music was played with the a motion picture being played. The Yiwangjik Aakbu was not able to play a leading role in this royal banquet, and only participating partially in the program. A grand banquet wasn’t able to be held in a ruined royal family, and because there weren’t much royal banquets, there weren’t much opportunity for the Yiwangjik Aakbu to play the royal banquet music in an actual banquet. The performance of the royal banquet music was played mostly in theatre performance, appearance in broadcasting, and through albums after the 1930’s.
Second, the activity of new Yiwangjik Aakbu in the 20th century was expanded in its field to outside the palace. The activities were in Chosen Jingu, Yongsan Government House, exhibitions, cherry-blossom viewing at nighttime in Changgyeonggung Palace, and performance in Kyoto, but these were mainly forced by the Japanese.
Inside Yiwangjik Aakbu, there were welcome performance for the visitors and Iseuphoe. Iseuphoe is a program provided independently by the Aakbu to improve the musical performance, and the members of the Aakbu voluntarily organized the contents of the performance, orchestration and the music. This was not irrelevant to the circumstances of the period of that time where the performance needed to be newly organized for performance in stages and in broadcasting rather than the playing the court music in the palace.
Yiwangjik Aakbu started performing through broadcasting from 1928, and appeared about 170 times until 1945. The Yiwangjik Aakbu changed the existing ensemble-oriented orchestration to duet or solo depending on the music, and this attempt later played an important role in fixing the stage orientation for court music. Along with performing through broadcasting, album 『Joseon Aak』・『Aakjeongsoo』 were released. This album has its value as the only album to hear the music of Yiwangjik Aakbu.
Also, the Yiwangjik Aakbu also performed research and development activities of publishing literature and producing instruments. They developed important instruments such as Pyeonjong and Pyeongyeong, and also did instrument repair. Vast amount of Jeongganbo and Oseonakbo publishing are considered to be one of very meaningful activity performed with great time and effort, but it is not described in detail in this study, and only provided through a list.
The contribution and role of Yiwangjik Aakbu to the modern Korean traditional music is acknowledged, but its contents were not defined and the studies were being delayed. The importance of the Yiwangjik Aakbu activities were considered to focus on the organization and the activ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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