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考古學을 통해 본 大伽倻史 = The History of Daegay through the Archaeological Ddata
저자
朴天秀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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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8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151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5-52(48쪽)
KCI 피인용횟수
1
제공처
소장기관
5세기 후반 대가야는 토기, 위신재, 묘제와 같은 고고자료의 분포로 볼 때, 고령을 중심으로 황강수계, 남강상류역, 섬진강수계와 남해안에 걸치는 가야사상의 최대 판도를 형성하였다.
대가야 왕권은 왕묘역인 고령 지산동고분군의 조영 과정으로 볼 때 이전 시기에는 複數의 집단에 의한 共立이었으나, 5세기 말 지산동44호분단계에서 특정 수장 계열에 고정되어 세습화되고 전제왕권을 확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전제왕권의 배후에는 고령 지산동고분군, 합천 옥전고분군의 수장묘 주변에 조영된 무기의 소유가 탁월한 배총들이 상징하듯이 민의 무장과는 구별되는 군사조직이 중앙 수장의 주변에 권력기구로서 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가야 왕권은 이와 같은 군사력과 토기, 위신재의 생산과 유통에서 추정되는 물자유통기구를 통하여, 그 권역 내 각 지역의 수장층을 장악하고 편제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가야는 6세기 초를 전후하여 고령분지, 합천지역 및 의령지역을 포함한 낙동강 중류역 서안을 따라 대가야식 산성이 연계하여 집중 조영된 것으로 볼 때, 그 권역 내의 민을 동원할 수 있는 역역 체제를 확립한 것으로 본다.
대가야는 남강상류역, 금강상류역 섬진강 하구의 하동지역, 그리고 여수, 순천, 광양지역 즉 소위 任那四縣을 확보함으로써, 아라가야와 소가야의 내륙회랑인 남강로뿐만 아니라 양 세력이 활동하던 남해안로를 차단할 수 있게 되어 가야 후기의 중심국으로 대두한다.
더욱이 대가야는 전략적인 요충인 任那四縣을 확보하고 남해안의 제해권을 장악함으로써, 백제와 왜의 교통뿐만 아니라 왜의 중국 교통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대가야는 對 일본열도 교역에서 신라, 백제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게 되었다.
대가야는 종래 내륙의 후진국으로만 파악되어 왔으나, 이와 같이 내륙에서 생산한 철과 금·금동 제품을 바다를 통하여 일본열도 전역에 수출한 大 해상교역 국가였다.
479년 대가야에 의한 중국 南齊로의 독자적인 遣使는 남해안을 통한 이와 같은 해상활동을 웅변하는 것이다.
대가야는 당시 백제 영역에 비견되는 대 권역을 형성하고 그 내부를 통제할 수 있는 군사권, 외교권, 역역동원 체제를 갖춘 점에서 초기국가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파악된다.
It could be assume that Daegaya formed her great dominion in the whole history of Gaya at the later half of the 5th century, centering around Go-ryeong over the basin of Hwang river, the upper of Nam river, and the south seashore through the analyzing distribution of archaeoloaical data like pottery, prestige goods, and tombs.
The kings of Daegaya took the regal position by agreement of several groups in the prior phase, based on the process of construction of the Jisan-dong tombs, Go-ryeong, the sphere for the royal tombs. But they took heredity within a particular group and established a despotic royal authority at the phase of Jisan-dong no.44 tomb, the end of the 5th century.
In the behind of establishing despotic royal authority, the constant system for the military as a power organization seems to be formed at that time, based on the existence of subordinated tombs which have prominent quantity of weapons.
Daegaya seemed to take the leader groups of each region under her dominance and control through the military force and the distribution organization for pottery, prestige goods.
Based on the fact that Dagaya fortresses were constructed densely to be connected with each other along the westside of Nak-dong river including Go-ryeong, Hap-cheon, and Ui-ryeong. Daegaya seems to had established the mobilization system for the labour power which could mobilize the people of each region.
Daegaya became centre state of latter Gaya as intercepting the Nam river, corridor route of Aragaya and Sogaya and the south sea by means of taking the upper basin of Nam river and of Gum river, Ha-dong, Yeo-soo, Sun-cheon, and Gwang-yang so called. Imnasahyeon(任那四縣) under her own dominance.
As taking Imnasahyeon(任那四縣), a point of strategic importance, under control and seizing the management for south sea, Daegaya influenced the interaction between Wa(倭) and china as well as between Baekje and Wa(倭). Therefore Daegaya could hold a dominant position in trade with japanese archipelago between Silla and Baekje.
Daegaya, which had been thought as a less advanced state in the prior study was great seaborne state which exported iron and golden-gilt bronze crafts made from inland area to the whole area of japanese archipelago through the sea.
Her own accrediting an ambassador to Namje(南齊) of Daegaya shows these aspects of activities on the south sea.
In conclusion, it could be assumed that Daegaya had reached the phase of early state ; She was being formed her own territory which is compared with Baekje's, control power toward inside of state like rights of military, diplomacy, and mobilization system for the labour power.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17-01-23 | 통합 |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2-28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퇴계학과 한국문화 -> 퇴계학과 유교문화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6-08-23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퇴계학과 학국문화 -> 퇴계학과 한국문화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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