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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毅齋 金悌甲의 목민활동 = The Governing of People by “Euijae (毅齋)” Kim Jae-gap (金悌甲) During Imjinoiran
저자
오영교 (연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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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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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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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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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168(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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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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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the society of the Choseon Dynasty underwent Imjinoiran (壬辰倭亂) and Jeongyujaeran (丁酉再亂)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1597), which lasted seven years from 1592, the entire land of Choseon became a battlefield, particularly the three southern provinces of Chungcheong, Jeonra, and Gyeongsang. The farmers, who were taxpayers and providers of agricultural labor, had to be separated from their farmland due to the war. The devastation of the farmland brought about a great collapse of the agricultural production system. In particular, due to the extreme collapse of the local societies in the country, the people in the country could not be appropriately governed just by dispatching a local governor.
During wartime, a local governor had a significant role. In the individual counties and prefectures, a governor had to support the war by training soldiers, preparing armaments, and securing an efficient troop mobilization system. A governor was also given the assignments of supporting the agricultural production system, including famine relief and the promotion of agricultural production, and improving productivity and administration system by reinforcing the war-torn, devastated towns and preventing theft.
During wartime, not only were the deaths of local governors often reported, but so were cases of surrendering to the enemy and abandonment. Governors who surrendered or ran away were captured and accused or put into another battle to contribute to the war, or made to work in the transfer of military provisions.
Apart from the policy of punishing the local governors who failed to fulfill their duties, the Choseon Dynasty sought to encourage them to fulfill their assignments. One of such plans was “Regional defense Plan.” As a method of maintaining the local governor system during the war, a governor and some refugees were ordered to escape to a mountain fortress located on a rugged hill in the governor’s territory, and report their situation as they defended their fortress until the war ended.
Some governors or generals strove to fulfill their given assignments during the war, as many people joined local loyal troops which were raised to save the nation, and sacrificed their lives in place of the government troops. One noticeable example is Local Governor Kim Jae-gap (1525-1592), who fulfilled his assignment and fought desperately against the Japanese army at the Yeongwon Fortress located in Wonju.
Kim Jae-gap protected local residents and refugees from Seoul, and fought with them against the Japanese army according to the typical protocol of defending a castle or a fortress regulated by the Choseon Dynasty. On August 5, 1592, he wrote to his son, Kim Si-hyeon, “What can I do now? I just want to be able to keep my integrity,” expressing his own determination.
He must have breathed his last breath feeling ashamed that he was not able to fulfill his assignment to defend the assigned land. The battle at Yeongwon Fortress has been recorded as a defeat on the part of the army of the Choseon Dynasty. However, the deeds of Wonju Local Governor Kim Jae-gap, who did his best to fulfill his assignment of caring for the people, indicate that Imjinoiran was a part of the history of overcoming the national crisis.
원주에 소재한 역사유적인 鴒原山城은 나말여초 豪族의 시기 지역 세력이던 梁吉및 弓裔와 관련된 史蹟이며, 1291년(충렬왕 17) 元沖甲으로 대표되는 지역의 방위군이 카단[哈丹] 침략군을 무찌른 국난극복의 사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곳은 임진왜란 때 김제갑 목사의 지휘 아래 왜군에게 항전하다가 수많은 병사와 민들이 목숨을 잃은 현장이기도 하다.
조선사회는 1592년부터 7년간 전개된 壬辰倭亂과 丁酉再亂의 과정에서 三南을 중심으로 전국토가 戰場化되는 상황을 겪었다. 전쟁으로 인해 농업 노동력이자 부세 담당층인 농민들의 遊離는 심각한 문제였고 경작지의 황폐화는 농업 생산체계를 크게 붕괴시켰다. 특히 향촌사회의 조직 자체가 붕괴되는 상황에서 수령의 파견만으로는 통치가 이루어질 수 없음이 지적되었다. 수령제와 군현제의 절대적인 위기였다.
당시 수령이 수행해야 할 역할은 막중하였다. 생산력과 행정체계의 보완을 위한 각종 임무의 수행은 물론 개별 군현에서의 군사조련, 군비의 마련 및 효율적인 병력동원 지휘체계의 확보 등 전쟁의 지원업무가 부과되었다.
전시 하에 수령들의 사망소식이 거듭 알려졌고 수령들이 지역 士民들과 함께 산간이나 海濱으로 피난하는 사례도 빈번히 보고되었다. 조선왕조는 전쟁 시 패장 또는 투항자를 처벌함으로서 자체 단속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奔鼠逃脫’한 수령에 대해 ‘拿鞫 治罪’, ‘赴戰 立功’ 및 ‘納贖 運糧’의 처벌만을 거듭 지시하였다.
전쟁의 과정에서 救國을 위해 官軍을 대신하여 목숨을 바친 義兵들의 활동이 전개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본분을 다하고자 최선을 다해 항전했던 수령ㆍ장수들의 모습도 보인다. 원주 영원산성에서 목민관의 사명을 수행하며 왜군과 결사항전한 목사 김제갑(1525~1592)의 사례도 주목된다.
김제갑은 조선왕조가 평소에 규정한 전형적인 守城, 保障策의 규약에 따라 영원산성에서 지역 내 士民父老들과 피난 온 한양의 유이민을 보호함과 함께 왜군에 맞서 싸웠다.
그는 ‘땅을 지키는 관리’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함을 못내 부끄러워하면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을 것이다. 영원산성 전투는 조선군의 패전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목민관으로서 민을 安集해야하는 사명에 어떻게라도 부응하려 했던 모습, 원주목사 김제갑의 행적은 우리로 하여금 임진왜란이 국난극복의 항쟁사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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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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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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