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17~18세기 전반 인삼무역의 변동과 개성상인의 활동 = Changes in the Ginseng Trade and Operations of Gaesung Merchants in the 17th to Early 18th Century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7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331.5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07-144(38쪽)
KCI 피인용횟수
3
DOI식별코드
제공처
소장기관
조선후기 개성상인은 국내 상업활동뿐 아니라 국제 무역을 통해 크게 성장하였다. 본 연구는 17~18세기 전반기 개성상인의 국제무역 특히 인삼 무역을 고찰하였다. 조선후기 인삼 무역은 국내외 여건의 변화에 따라 큰 변동을 겪었다. 임진왜란 시기에는 明의 군인, 상인들이 직접 조선 영내로 들어와서 군사 활동 외에 상업에도 종사하였다. 그들은 다량의 인삼을 명으로 갖고 갔다. 임란 직후에는 조선에 들어온 명의 사신들이 인삼 획득에 혈안이 되었다. 그들이 징색해간 인삼은 막대하였다. 임란과 임란 직후의 인삼 무역은 명의 군사 지원이라는 조건 속에서 이루어진 특수한 형태였다.
명·청 교체기의 인삼 무역 역시 새로운 것이었다. 청의 발상지인 만주는 인삼 자생지였다. 후금 성장의 경제적 배경에는 인삼 교역이 있다. 따라서 후금은 조선에서 인삼을 수출하려 하였다. 당시까지 조선은 인삼 수출국이었는데 수입국이 된 것이다. 조선 인삼의 대 중국 수출이 부진해지자 조선의 인삼상인들은 일본으로 인삼 수출을 시도하였다. 당시까지 인삼의 對日수출은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이루어졌는데, 이때부터 대일 인삼 수출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 시기에 활약한 대표적인 인삼 상인으로 개성상인을 들 수 있다. 당시 정부가 인삼관련 대책을 마련할 때마다 반드시 언급되는 곳이 개성이었다. 개성은 인삼 산지가 아님에도 언급된 이유는 개성상인들이 인삼 교역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685년에는 국경을 넘어 만주에서 인삼을 채취하던 조선인이 청국 관리에게 放銃하여 상처를 입히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안의 심중함을 인식한 조선 정부는 이듬해 인삼 채굴과 무역 모두를 금지하였다. 전면적인 인삼 금지령으로 인삼 채굴인들이 생계의 곤란을 겪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불법화되었음에도 인삼상인들의 활동이 멈춘 것도 아니었다. 결국 정부의 禁蔘정책은 차츰 이완되어 갔다. 1694년에는 부분적으로 인삼 채취를 허용하고, 1693년 무렵에는 동래의 왜관에서 인삼 禁令을 해제하고, 1707년에는 평안도와 함경도의 禁蔘도 해제하였다. 이에 인삼 무역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이 시기 인삼의 주요 수출국은 일본이었다. 1640년 무렵 허가된 대일 인삼 무역이 이 시기에 와서 만개한 것이다.
이러한 인삼 무역의 변동 속에서 개성상인은 핵심 인삼 상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들은 인삼 산지에 직접 들어가서 인삼을 구입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직접 외국으로 수출하기도 하였다. 개성상인은 이러한 노력으로 인삼 무역 호황기의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었고,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상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Gaesung merchants in late Joseon period have significantly expanded their operations domestically and internationally. This research has examined the international trade of Gaesung merchants, notably ginseng trade, from 17th century to early 18th century.
Ginseng trade in late Joseon era went through great transformations according to internal and external conditions. During the Hideyoshi invasion of Korea, Chinese soldiers and merchants came to Korea and engaged in commerce other than military operations. They eventually gathered large amounts of ginseng back to China. After the invasion came the envoys from Ming China, eager to obtain ginseng. They have also collected immensely as a result. During and in the aftermath of the Hideyoshi invasion, the nature of ginseng trade was uniquely determined under the condition of Chinese military aid.
Ginseng trade during Ming-Qing transitional tmes of China witnessed dramatic change as well. Manchuria, the birthplace of Qing dynasty, also happened to be the wild growth place of ginseng. The economic background of Later Kum growth was none other than Ginseng trade, so that Kum tried to export ginseng to Joseon Korea. The position of Joseon was reversed, as it now became the importer of ginseng, which was the exact opposite of the previous. As the Joseon ginseng export to China was at a low ebb, the merchants tried to find a breakthrough by commercializing with Japan. Until then, ginseng export to Japan was strictly limited, but became more active from this time. During this period, Gaesung merchants played a major role of ginseng trade, as Gaesung was always mentioned whenever the Korean government made ginseng measures. Gaesung merchants were dominating ginseng trade, thus the reason why the city was treated important despite the fact that it was not a production center.
In 1685, a Korean who crossed the border and collected ginseng in Manchuria shot and injured a Chinese official. Due to the seriousness of the incident, Joseon government banned both ginseng extraction and trade the following year. Because of an all out ginseng prohibition, ginseng gatherers faced immediate problems in their livelihood. This situation led to some illegal activities of ginseng traders, which eventually caused the government to loosen its prohibition. The Joseon court allowed partial extraction in 1694, lifted the ban in Japanese residential area of Busan around 1693, and cancelled the measure itself in Pyeongan and HamKyeong provinces in 1707. Such developments led to a reflowering of ginseng trade. At this age, Korea`s main exporting country was Japan, as ginseng trade permitted circa 1640 came to flourish during this epoch.
During this time of ginseng trade transformation, Gaesung merchants were crucial in terms of its operation. Not only did they purchased ginseng directly from the production areas, they also exported the commodity directly to outside Korea as well. Thanks to their endeavors, Gaesung merchants became the prime benefactor of the booming ginseng trade, and ultimately managed to be the leading merchants of late Joseon period.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3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재인증) | KCI등재 |
2019-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 KCI후보 |
2019-05-14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AMLA CULTURAL INSTITUTE -> Research Institute for the Tamla Culture | KCI등재 |
2017-06-14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탐라문화연구소 -> 탐라문화연구원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KCI후보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52 | 0.52 | 0.58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4 | 0.62 | 0.913 | 0.26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