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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연의 盟’의 성립과 宋人의 認識 = The conclusion of Treaty of Chanyuan and Cognition in Sung dynasty
저자
이석현 (연세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9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후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65-203(39쪽)
KCI 피인용횟수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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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eaty of Chanyuan (澶淵) is reckoned as a historical event which
is both delicate and meaningful in the Chinese history. It is because
what the treaty implicates is not simple. First of all, the treaty is the
first case that the dynasty that dominated the central areas of China
recognized officially that of surrounding different nations as an equal
and friendly reality. Moreover, Song dynasty had to pay an indemnity
of 100,000 ounces of silver and 300,000 bolts of silk annually. That is
to say, an equal diplomatic relationships and substantial unequal ones
are involved complexly in this treaty.
This compound contents of the treaty served as a momentum of
being recognized as a humiliating and disgraceful event ever since
then in spite of its diplomatic and rhetorical equal relationships. As
for the Chinese, it was, therefore, regarded as the typical case of a
national disgrace.
Recently as Khitan Empire is recognized as a minority dynasty of
China, the new researchs on this subject is being conducted. Accordingly
the cognition to the Treaty of of Chanyuan takes on complicated
aspects:it served as a critical momentum of a complex of the Chinese
and minorities. This argument is different from that of a national
disgrace, the cognition and emotion that the Chinese had before.
In conclusion, according to the Treaty of Chanyuan unitary diplomatic
relationships around the dynasties of the central areas changed
to new plural and equal international relationships around Kithan
Empire and Song dynasty in East Asia, including Goryeo (高麗)
dynasty and Xisha (西夏). The plural relationships like this are of
great significance in East Asian history, and offer a good example
against a historical view focusing on the central areas of China.
전연의 맹 성립에 대한 역사적 배경은 오대 북송초의 거란관계에서 구할 수 있다. 특히 거란은 후진의 개국을 도와준 댓가로 연운 16주의 영토를 할양받았고, 후진황제를 책립하였고, 후진황제는 거란에 대해 ‘稱臣’ ‘稱子’했다. 또한 後唐, 後周 등의 왕조와 서로 ‘聘使’를 파견하며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관계는 이후 단연의 맹에서 체결되었던 주요한 외교관례인 사절의 교빙, 친속관계의 수립, 세폐의 증송의 역사적 연원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구할 수 있다.
북송 초기 거란과 송의 관계는 상대적인 소극적 외교관계와 몇 차례의 충돌로 요약된다. 하지만 거란 보녕 6年 양국간에 본격적인 외교교섭이 진행되어 비록 단기간이었지만 본격적인 화의의 관계를 수립하였으니, 이른바 ‘보녕화의’의 성립이다. 당시 양국은 서로 평등하고 대등한 관계를 인정하였고, 외교적 형식에서도 대등한 모습을 보인다. 이화의는 오대시기 확립되었던 중원왕조와 거란의 관계를 기본적으로 계승한 것이다.
송 태종 즉위이후 송요 외교관계는 파기되었다. 바로 태종이 거란이 후원하던 北漢을 친정했기 때문이다. 이후 송과 요는 전연의 맹을 체결하기까지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두절되었고, 몇 번인가의 대규모 전투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투에서 송은 막심한 피해를 보았으며, 이에 연운16주를 되찾으려는 송의 의지가 약해지면서 송이 공세적 입장에서 수세적 입장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宋 진종 즉위 이후 거란의 공세가 점점 강화되었다. 특히 1004년 거란 성종과 그 모친 소태후가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송을 공격하였다. 위협을 느낀 송 진종도 직접 親征에 나서면서 양국이 대치하게 되었다. 당시 일전일퇴를 벌이던 양국은 서로 굴복시키기 어려움을 깨닫고는 화의 교섭을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역사적으로 유명한 전연의 맹이 체결되었다.
澶淵의 맹의 기본 내용은 첫째, 宋이 거란에게 매년 비단 20만필, 은 10만량을 세폐로 보낸다. 둘째, 현행 국경선을 그대로 유지 인정한다. 셋째, 송의 진종과 遼의 성종은 나이에 따라 형제관계를 맺으며, 송 진종은 거란의 태후를 숙모로 받든다. 전연의 맹은 외교적으로는 평등한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송은 그 댓가로 현행 국경선을 인정하여 연운16주에 대한 요의 기득권을 인정해주었고, 또한 매년 세폐를 요에게 지급하는 불평등한 내용이었다. 이처럼 전연의 맹은 형식적 평등과 내용적인 불평들이라는 이중적 구조로 되어 있다.
전연의 맹약이 가져온 평화에도 불구하고 맹약이 지닌 이중성으로 인해 그 평가는 상반된 양상을 보인다. 우선 전연의 맹에 대한 긍정론 적인 인식은 주로 체결당시의 대신이나 평화로운 관계가 진행되던 인종조의 사대부의 인식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이 전연의 맹으로 인해 막대한 군사비를 절감하였고, 비록 세폐를 보낸다고 해도 군사비의 100분의 1,2에 불과하다 하면서 전쟁이 사라진 평화로운 광경을 구가하였다. 또한 평화로 인해 획득한 경제적 번영에도 주목하였다.
부정론적인 인식은 거란에 대해 세폐를 바친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이 조약이 ‘성하의 맹’과 같은 수치스러운 조약으로 인식했다. 그리하여 연운16주를 회복하지도 못하고, 신뢰할 수도 없는 거란에 대해 매년 막대한 세폐를 바쳐야 하는 현실을 통탄하였다. 또한 이 맹약으로 사람들이 평화로운 현상에 만 ...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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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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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18 | 1.18 | 1.19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1.06 | 0.98 | 2.155 | 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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