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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개성의 경관 변화 = The variation of Kyesung's view in early Chosun dynasty
저자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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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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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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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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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9(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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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udy was to research how the culture vestiges of Gaesung had been changed until early Chosun dynasty. What is the first reason about changing view of Gaesung was that capital was transferred to other city as a nation policy. At Korea dynasty Gaesung was a capital. In other to invite metaphysics (Sungrihak), government ordered anti buddhism policy after establishing Chosun.
Gaesung of early Chosun dynasty had changed with transferring the capital to Hanyang, returning to the capital to Gaesung, and removing the capital to Hanyang again, finally Gaesung lost power of capital. Therefore, Gaesung's name and status were changed such as Gaesungyuhusa -> Gaesunyusugbu -> Gaesungbu.
The prosperous buddhist temples had withered and declined as a anti buddhist policy. So, view of Gaesung gradually had been changed.
In other to Gaesung had been destroyed, repaired, reconstructed, a sight of Gaesung changed as a various scene. If something was related to the Korea dynasty and buddhist temples, like Temou and Sajik, it must be destroyed, neglected, and changed. The city markets had cut down also as well as big houses of Korea dynasty high officials were partially destroyed, or naturally damaged, and only house lots were left.
The name of school Sunggyungoan and the shield wall for defence continuously have been repaired and maintained because of functional matter. The ancestral shrine(Mogchongjon) of Tejo, the old house(Gyungdekgung) of Tejong and offices such as Gungigam, Whalince, Heymince and etc had been established. Historic relics were correlated to Chosun dynasty and confucian facilities were sustained or founded. Therefore, these became central buildings of Gaesung.
However, the scenery of Gaesung had showed sluggish, natural, and alteration features rather than sudden changing form. Gaesung had showed that the rise and fall of a dynasty were lived together, through spectacles of ancient and new things were mixed as a sore of Korea dynasty collapse and historic sightseeing space in getting a lesson
본 논문은 조선 건국과 한양 천도 후 조선 초기까지 개성의 문화 유적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중심으로 경관 변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개성의 경관을 변화시킨 주요 요인으로 조선 건국 후 성리학의 도입에 따른 排佛ㆍ抑佛정책이라는 정치이념의 변화와 국가 정책에 따라 수도의 위상을 잃고 지방 도시로 변모해 가는 개성의 위상 변화를 들 수 있다. 조선 초기의 개성은 억불 정책에 따라 과거 번성했던 사찰들이 그 위상을 잃고 쇠퇴해 감으로써 경관도 점차 변화되어 갔다. 또한 개성은 조선의 건국에 따른 한양천도, 개성 환도, 한양 재천도 등 여러 차례의 변화를 겪으면서 끝내 왕도로서의 위상을 상실하고 개성유후사->개성유수부->개성부로 변화됨으로써 행정 구역과 인구가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도시의 면모와 경관도 변화되었다.
개성의 경관은 문화 유적들이 조선 건국 후 파괴 훼손되거나, 보수ㆍ유지되고, 또 새로 건설됨에 따라 완만하게 변화되어 갔다. 고려의 태묘, 사직, 궁궐, 관아, 왕릉, 사찰, 고려 유신들의 집터 등 고려의 유적들은 상당 부분 훼손되었다. 태묘나 사직 등 고려왕실과 직접 관련된 것들, 그리고 불교와 관련된 것들은 파괴 또는 방치되어 쉽게 훼손되어 갔다. 시전은 축소되고 과거 고려 유신들의 큰 집들은 주인을 잃고 빈터만 남게 되었다.
성균관과 성곽 등 학교와 관방시설은 보수ㆍ유지되었다. 개성의 성균관은 한양의 그것에 비해 그 규모와 위상이 낮아졌지만 개성의 인재들을 교육하는 중요 기능 때문에 계속 보수․유지되어 갔다. 성곽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당부분 허물어져 개성의 경관을 크게 훼손하였지만 외교상, 국방상의 중요성 때문에 계속적으로 보수해 나갔다. 그러나 워낙 재정적인 문제가 따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쉽게 증축되지 못하다가 성종대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또한 목청전과 경덕궁 등 새로운 宮․殿을 비롯하여 개성 통치에 필요한 관아들이 신설되었다. 개성 내 태조 이성계의 잠저는 2군데였는데 하나는 태조의 眞殿인 목청전이 되고, 하나는 경덕궁이 되어 웅장하고 화려해짐과 아울러 기능적인 면에서도 개성의 중심 건물이 되었다. 그리고 군기감, 활인원, 혜민국 등등 개성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관아들이 설치되었다.
조선 초기 개성의 경관은 급격하게 변화되기 보다는 완만하고 자연스러운 변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개성은 고려 왕조의 상징물들이 흔적만 남기고 하물어지는 반면, 목청전․경덕궁 등 새 왕조의 상징물들이 중심 건물이 되면서 조선의 발흥도시로써의 변모를 가지게 되었다. 개성은 왕조의 흥망이 공존하고, 옛것과 새것이 섞여 있는 경관을 통해 고려 멸망의 아픔과 그 교훈을 얻게 되는 역사적 유람공간으로써의 경관을 보여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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