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모자보건법의 역사 : 제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중심으로
저자
발행사항
인천 : 인하대학교 대학원, 2020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인하대학교 대학원 일반대학원 : 의학과 2020. 2
발행연도
2020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발행국(도시)
인천
형태사항
115 p. 26 cm
일반주기명
인하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History of the Mother and Child Health Law of Korea: Focused on Acceptable Limit for Abortion in Article 14
지도교수:최규진
참고문헌: p.87-98
UCI식별코드
I804:23009-200000287202
소장기관
법은 만들어질 당시의 여러 사회 현상들이 맞물리면서 구성된다. 따라서 법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법리적 분석만으로는 부족하며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역사적 맥락을 함께 봐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는 모자보건법 제·개정이 어떠한 시대적 배경 속에 이루어졌는지 살펴보았다. 특히 국민들에게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1950년대, 식민지 해방 후 한국전쟁을 치른 이승만 정권은 ‘국력 강화’를 앞세워 인구증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경제 곤란으로 인공임신중절을 선택하게 되는 상황이었음에도 형법에 ‘낙태의 죄’가 들어갔다. 하지만 현실을 완전히 외면할 수 없었던 정부여당은 추후 이러한 상황을 고려한 법안을 만들겠다고 언급하였는데, 그것은 모자보건법을 의미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은 ‘경제발전’을 앞세워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인구증가를 억제하려고 했다. 이는 가족계획사업으로 구현됐다. 사업 초기에는 피임으로 인구억제를 시도하였지만 피임만으로는 한계가 컸다. 결국 정권 차원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방안을 모색했고, 일본의 우생보호법을 참고하여 모자보건법 초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인공임신중절의 허용사유에 포함된 ‘경제적 이유’가 걸림돌이 되어 여러 번 입안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1970년대, 장기집권에 따른 비민주적 조치들에 대중들은 점점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고, 장기집권을 떠받치고 있는 버팀목이었던 경제 상황마저 악화되고 있었다. 당장의 정권 유지를 위해선 경제지표라도 유지시켜야 했고, 이를 위해선 더더욱 인구억제정책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정부여당은 정치위기 상황에서 지지기반이었던 보수층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고, 결국 인공임신중절의 허용사유에서 ‘경제적 이유’를 삭제한 채 1973년 비상국무회의에서 모자보건법을 통과시켰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경제적 이유’를 포함시키려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박정희 정권과 이후 이어진 군사정권에서는 낙태죄를 사문화시키는 방식과 강력한 피임정책을 통해 낙태죄 허용에 버금가는 인구억제정책 효과를 꾀했다.
1990년대 들면서 인구정책에 대한 관점이 변하였다. 저출생 현상이 나타나 노동인구가 감소할 수 있다는 의견이 대두되었고, 1996년 “신(新)인구정책”의 발표로 인구억제정책이 폐기되었다. 하지만 저출생 현상은 2000년대 들어서도 지속되었고, 2005년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인구억제정책에서 인구증가정책으로 바뀌었지만, “경제발전”을 위해 국가가 “인구정책”을 활용해야 한다는 맥락은 동일하게 유지됐다. 오히려 인구를 증가시켜야 한다는 기조가 강화되면서 여성의 입장을 고려한 접근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낙태 예방’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진보정권에서조차 낙태죄를 존치시키고, 모자보건법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에 사회경제적 이유도 포함시키지 못했던 역사는 결국 이명박 정부의 낙태에 대한 보수적 접근과 만나며 2009년 진오비(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불법 낙태 중단 선언’으로 터져 나왔다. 제한적인 인공임신중절의 허용사유를 지닌 모자보건법 하에선 형법의 낙태죄가 언제든지 그 존재를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이고, 결국 2010년 진오비(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낙태수술을 한 동료 산부인과 의사들을 고발하면서 그러한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하지만 2010년을 전후해 촉발된 낙태죄 논쟁은 반작용으로서 여성운동의 성장을 가져왔다. 임출넷(임신·출산결정권을위한네트워크)을 중심으로 여성의 임신·출산·양육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이루어졌고, 여성이 주체가 되어 낙태의 허용사유에 ‘사회경제적 이유’를 포함시키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 번도 공식 적용된 적은 없지만, ‘사회경제적 이유’가 과거 인구억제를 위한 국가의 정책적 수단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위한 운동의 수단으로 변화한 것이다.
진오비의 불법 낙태 고발 사건 이후 한동안 낙태 논쟁은 잠잠해지는 듯했으나 2016년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다시 쟁점화됐다. 보건복지부가 낙태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포함시키는 의료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한만큼 대중들은 이런 후진적인 접근을 좌시하지 않았다. 특히 2010년 이후 급부상한 여성단체는 ‘검은 시위’를 벌이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결국 정부는 낙태수술 처벌과 관련된 개정안을 재검토하겠다며 한발 물러서야 했다.
과거와 달리 여성주의 운동이 급성장한 가운데 발생한 이러한 보수적 접근은 오히려 반작용만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정권까지 교체시킨 개혁의 움직임이 낙태죄 폐지 운동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여성주의 운동은 새로운 정부의 청와대 국민청원 제도에 올라온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을 이슈화시켰고, 이에 대중들도 크게 호응했다. 이러한 개혁의 흐름 속에 진행된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소송은 ‘헌법불합치’로 종결되었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선고는 국가주의에 매몰된 인구정책의 역사를 반성하고 여성의 입장을 고려한 모자보건법 제정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이제 새로운 모자보건법을 통해 진정으로 대중들, 특히 여성들의 삶을 반영한 인공임신중절의 합법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최소한 인공임신중절의 허용사유에 ‘사회경제적 이유’를 포함시키는 개방적 접근이 필요하며, 시대의 흐름에 맞게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다 충실히 반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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