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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高城 의병장 權亨源의 의병투쟁과 단두 `釜煎` 수난 = Anti-Japanese Activities and Crucifixion of Righteous Army Leader Kwon Hyeong-won at Goseong Region in Great Han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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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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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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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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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 출신의 권형원(1854~1907)은 향촌사회에 상당한 영향력과 권위를 행사하던 향반 가문 출신이었다. 1891년 고성민란 당시 그가 군수와 좌수 등 지배층과 연계되었던 것은 그의 가문이 지녔던 신분상 사회적 지위를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권위를 바탕으로 권형원은 1896년 2월 고성지역의 의병장이 되어 항일투쟁의 전면에 나섰다. 그가 고성 의병장으로서 전개한 활동은 주로 고성·간성 일대에서 수산자원을 침탈하던 일본 어부, 그리고 상권을 침탈하던 일본 상인 등을 단죄하는 것이었다. 3월 12일 고성 포구에서 일본 어부 4명을 체포하여 처단한 것을 비롯하여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상인의 화물을 압류한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권형원이 일제의 어업, 경제 침탈을 결코 좌시하지 않고 단호하게 단죄한 사실을 입증해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권형원이 1907년 의병전쟁에 참여한 사실은 구전 자료 외에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일본군에게 피살 순국하여 수난을 당한 사실을 염두에 둘 때 그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1962년 구술 자료에 따르면, 그는 1907년 고성을 비롯하여 통천·고성·간성·양양·강릉 등 5개 군의 의병 ‘총참모’로서 수개월 동안 일제 군경을 상대로 10여 차례 항일전을 벌였다. 하지만, 그는 10월 20일 벌어진 고성 남강전투 직후 일본군에 의해 피살 순국하였다. 이러한 정황은 일본군 정보기록에서 그날 350명의 의병이 고성읍을 습격하여 현지 일본군 분견대와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는 대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순국 후 권형원의 시신은 일본군에 의해 무참히 유린되는 모진 수난을 당하였다. 일본군은 그의 시신에서 두부를 절단하여 고성 부근의 장전에서 가마솥에 넣고 삶았던 것이다. 구전 자료의 정황으로 보아 그의 수난 후 고성지방에는 이러한 참상이 널리 인구에 전파되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그의 수난 사실은 박은식의 명저 韓國痛史에도 기록되어 있어 그 신뢰도를 높여준다.
그 뒤 권형원의 두골은 일본군에 의해 일본으로 강제 반출되었다. 권형원과 14촌 宗人인 권증원이 1930년 전후 일본 이와테의학전문학교 재학 시절 어느 신사에서 그 두골을 직접 목격한 증언을 통해 그 사실을 알수 있다. 그러한 정황은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전남 진도 출신의 동학군 두골을 방치한 사건 등에서도 방증된다.
요컨대, 한말 의병전쟁에 참여하여 항일전을 벌였던 권형원의 순국 수난의 참상은 한국의 국권을 강탈하던 일본 군국주의의 야수적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가히 충격적이다. 나아가 이는 또한 일제침략으로 야기된 민족 수난의 고단한 형세와 참담한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한국 근대사의 한 단상이라 할 수 있다.
Kwon Hyeong-won(1854~1907), born in Kangwaon Province, Goseong-gun, was from noble family that had great influence over the rural community. At the time of Goseong Civil Rising, he was involved with the community director. This facts prove his family’s social status. Therefore, with his reputation as respected community leader, Kwon Hyeong-won become commander of Righteous Army at Goseong region and forefronted anti-Japanese movement. As chief of Righteous Army, he focused on striking a blow to Japanese fishers and merchants who were exploiting natural resources. For example, he arrested and punished four Japanese fisher mans and seized Japanese merchant’s goods. These series of events demonstrate, Kwon Hyeong-won refused to become bystander over Japanese exploitation.
There are no written documents exits that confirm Kwon Hyeong-won participated in 1907 Righteous Army movement (except for the oral tradition). However the fact that Japanese military inflicted cruel punishment on him, indicates the oral tradition sound plausible. According to oral evidence from 1962, He was commander in chief of Righteous Army of vast regions, including Goseong, Tongcheon, Ganseong, Yangyang, Gangreung. He carried out several attacks on Japanese military and police forces. The raid of 350 Righteous Army soldiers were recorded on the documents of Japanese dispatched squadron.
Unfortunately Kwon was captured 25th of October, right after Battle of Goseong Nam-gahng river and executed. After he die, his body was brutally abused by Japanese. They decapitated his head from the “dead body”, put in the cauldron and boiled it. It seems that, this story has been famous among people of that region. In particular, this story is also appears on remarkable author Park Eunshik’s book Painful History of Korea which makes reliable evidence.
After his execution, his bones were sent to mainland Japan. Kwon Jheung-won who is a relative of Kwon hyeong-won, visually confirmed the skull of former Righteous Army leader. Imperial Japan had hold Kwon’s skull in Iwate school of medicine and that of other Korean’s as well. Therefore, crucifixion of Kwon clearly shows viciousness of Japanese Imperialism as w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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