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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슨의 민족 자결주의와 세계 평화 = Woodrow Wilson’s Self-Determination and Worl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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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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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190(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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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으로 유럽뿐만 아니라 전세계 피식민지인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전시에 그가 한 연설과 주장, 즉 승리 없는 평화와 민족 자결주의 그리고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국제연맹 창설의 제안은 패전국으로 하여금 공정한 평화 협상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하였으며 억압받는 전 세계 피식민지인들에게는 식민지 통치로부터 해방이라는 새로운 희망에 부풀게 하였다. 그러나 평화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의 주장은 전시의 수사에 불과한 듯 보였고, 그가 제시한 목표는 이상주의자의 꿈에 지나지 않은 듯하였다. 그의 주장 중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바로 민족자결주의였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베르사유 평화 회담에서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가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살펴보면서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는 이상주의자의 꿈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현실주의적인 고려에서 나오게 된 것인지, 왜 윌슨은 자신의 원칙과 위배되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2장에서는 윌슨이 민족 자결주의를 주장하게 된 배경과 그 의미 그리고 민족 자결주의를 통해 윌슨이 실현하고자 한 바가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윌슨의 연설문을 천착하였으며, 3장에서는 베르사유 평화조약에서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았다.
윌슨의 대표적인 연설 4개를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윌슨은 전쟁은 국가 간의 규범(standard), 전통, 정치 제도의 경쟁에서 초래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평화는 국가 간의 착취를 중단하고, 협력을 해야 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교전국에 평화안을 제안하면서 자결과 자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윌슨 대통령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 전쟁의 불화의 원인을 숙고한 과정에서 자치 혹은 통치 받는 사람들의 동의 개념을 해결책으로 생각하였다. 윌슨 대통령에게 자결 원리는 바로 민주적인 국가 성립의 필수 조건이었으며, 이는 더 나아가 세계평화를 위한 초석이었다. 즉 모든 국가가 피치자의 동의에 의해 성립될 때만 이러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또한 자결의 기본적인 내용으로 평등을 주장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윌슨 대통령은 국가의 대소와 관계없이 동일한 권리와 자유가 보장되어야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평등 개념이 바로 “승리 없는 평화”의 연설에서 주장되었다. 즉 동등한 위치에서 평화 조건을 체결해야 그 평화가 영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윌슨 대통령은 평화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세력균형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간의 협력기구가 필요함을 제안하였다. 국가 간의 부질없는 동맹과 경쟁 관계를 중단하고 모든 국가에게 동등한 상업적 권리가 보장되어야 항구적인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화를 보장할 기구로 국가 간의 연합체를 주장하였는데, 바로 이 기구가 불화와 경쟁을 초래하는 세력균형을 대체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평화를 달성하고 자결의 원리를 실천하기 위해 14개조로 알려진 연설에서 윌슨 대통령은 식민지의 재조정의 필요성,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내의 민족의 자치적인 발전, 터키의 지배를 받고 있는 민족의 생명의 보장과 자치 문제와 같이 제국 지배하의 식민지의 해방과 관련된 문제를 언급하였다.
그러나 평화회담은 애초에 윌슨 대통령이 기대했던 방향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윌슨 대통령은 자신이 주장한 14개조를 근간으로 평화 회담을 진척시키려고 하였지만 그의 주장은 4거두의 욕심과 전시 기간에 맺은 비밀조약으로 인해 왜곡되었다. 독일 제국의 영토 조정과 해외 식민지 문제, 이탈리아의 국경 조정과 요구 사항, 폴란드의 재창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 과정에서 윌슨 대통령은 민족 자결주의 원칙을 가급적이면 적용하고자 하였다. 윌슨 대통령은 항구적인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식민지 소유를 포함하여 제국주의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이는 민족 자결주의를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역사적, 경제적 이유로 민족 자결주의 원칙은 윌슨 대통령의 자의에 의해서 혹은 타의에 의해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슨 대통령은 민족 자결주의 원칙을 적용하려고 최선을 다했으며, 이상주의적이 아닌 현실적인 이유에서 민족 자결주의 원칙을 적용하고자 하였다. 또한 윌슨 대통령은 국제연맹이라는 힘의 공동체를 통해 민족 자결주의 원칙의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으나 베르사유 조약의 비준이 자국 의회에서 부결됨에 따라서 미국의 국제연맹 가입은 불가능해졌고, 윌슨 대통령의 주장은 한낱 헛된 꿈에 불과하게 되었다.
비록 민족 자결주의의 적용에 실패하였고, 더 나아가 미국의 국제연맹 가입도 실패하였지만 평화 조약을 승자에 의한 일방적인 나눠 먹기식에서 소수 민족의 입장을 옹호해주는 방식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였다는 점과 식민주의적 지배를 종식시키기 위한 시도를 하였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슨이 민족 자결주의를 적용하고자 하는 국가가 유럽에 국한되었다는 것,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원제국, 오토만 제국의 해체에 주안점이 맞춰졌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승전국의 식민지에 대해서는 평화조약에서 자유롭게 거론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유럽 외 지역의 피식민지 국가들, 이집트와 인도, 인도네시아 그리고 일제 치하의 조선 등의 요구는 묵살되었다는 점에서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 적용 범위의 편협함과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The 28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Woodrow Wilson was hailed as the hero to lead the First World War victorious not only in Europe but also in the colonized people of the world. War time proclamations such as peace without victory, self-determination and the creation of the League of Nations created the defeated Central Powers far-reaching expectation of fair peace treaty and the colonial people hope of liberation. However, as the Peace Conference was proceeded his assertion seemed to be only a rhetoric and his promises faded into bitter disillusion. Among his utterances the right to self-determination caused the most heated discussion.
Therefor, this paper focuses on how Wilson’s self-determination was applied in the Peace Conference, to see whether his decision was made purely as an idealist’s dream or on the basis of realistic consideration and why he had to violate his principle of self-determination.
In the first chapter I went through his speeches to see the reason and meaning of his self-determination. In the second chapter I focused on how his self-determination was applied on each country.
Going through his four representative speeches I reached a conclusion as follows. Wilson believed that the war was a competition of national standards, traditions, and politics and peace depended upon the eradication of exploitation within nations, and the law of cooperation and he also emphasized self-determination. He thought the right to self-determination was essential to democracy and would b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peace. A country established by the consent of the governed would be able to preserve peace. He also emphasized equality because he thought only peace between equals can last. The equality of nations upon which peace must be founded if it is to last. Furthermore, he proposed a community of power in other words the League of Nations to keep peace permanently instead of a balance of power which drew entangling alliances into competitions of power. With self-determination principle in mind he suggested impartial adjustment of all colonial claims, especially in Ottoman Empire and Austro-Hungry empire.
However, the Peace Conference wasn’t unfolded as Wilson expected. He tried to make peace terms on the basis of his 14 points but four big powers, their greed and prewar secret treaty collided with his direction. He insisted on disintegrate imperial empire and adjust their colonial territories according to self-determination but political, economical and historical cause prevented him from realizing his self-determination. He himself had to betray his principle of self-determination as well.
Although he failed to achieve self-determination he initiated to make a mechanism for the accommodation of nationalist aspirations within a stable international system. He also should be appreciated in presenting a major challenge to the legitimacy and permanence of the imperial order in the international arena.
Nevertheless, as he focused on applying self-determination and dispensation of territories that belonged to German empire, Austro-Hungry empire and Ottoman empire and colonies of Alliances couldn’t be discussed freely, self-determination and perspectives of dependent peoples beyond the continent such as Egypt, Korea and Indochina had been completely igno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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