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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920년대 한인들의 중국 安東 ‘新시가’ 이주와 거주지 형성 = Koreans Migrating to Andong New Town in China and Forming a Korean Residency in the 1910-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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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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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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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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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276(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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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본문에서 191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한인들의 안동 신시가 이주의 흐름과 한인 거주지 형성 과정, 그리고 이들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살펴보았다.
한인들의 안동 이주는 안동과 인접한 평안북도 의주·용천 출신들을 중심으로 1910년 초반부터 시작되었다. 한인의 안동 거주는 1908년부터 확인되나, 한인 이주는 1911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한인 이주는1912년, 1916년, 그리고 1918년 등의 시기에 진행되었다.
초기 안동 이주 한인들은 관원이나 교사·신문사 기자 등 지식인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하였다. 안동에서 한인 이주는 안동의 경기에영향을 받았다. 1910년대 초반에 안동은 러일전쟁이 끝나고 전쟁특수가사라지면서 불황에 빠져들었다. 그 결과 신시가는 상업 부진으로 인구가감소하였으며, 상업의 상황도 구시가에 미치지 못하였다. 이 무렵 신시가는 시가지 조성이 미비하며 하수도 등 편의시설도 부족하였다. 초기 이주한인들의 상업 활동의 중심지는 구시가였으므로 상점과 거주지도 주로 구시가에 형성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인들이 거주와 상점은신시가 3·4번통에 집중되었다.
1916년 말부터 안동이 다시 호황에 접어들면서 한인 이주도 급증하였다. 1920년대가 되면 이주의 목적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1910년대에는 상업을 목적으로 이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면, 1920년대에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꾼이나 뚜렷한 목적 없이 무작정 이주하는 한인들이 증가하였다. 1920년대 중반에 안동에 거주하는 한인이 증가하면서 이들의 상점과 거주지도 3·4번통 이외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1920년대 한인들의 상점과 거주는 주로 3·4번통의 6·7·8정목을 비롯하여 2번통, 굴할남통, 6번통 등에서 확인된다. 3·4번통은 일본의 영사관과 영사관경찰서가 위치하는 곳이었다. 중심지인 안동역과 그 주변을 이미일본인과 중국인들이 차지한 상황에서 한인들은 신시가의 외곽에 해당하는 7·8·9정목에 상점과 거주지를 마련하였을 것이다. 2번통과 6번통은 한인들이 중국인·일본인과 잡거하는 지역이었다.
1923년 안동의 행정권이 남만주철도주식회사로 이관되면서 신시가를비롯한 안동의 시가지는 계속 확장되었다. 1918년부터 만주사변이 발생하기 이전인 1931년까지는 대략 안동의 “황금시대”였다. 1920년대는 한인이주가 시작되고 10년이 경과한 시점이었다. 1910년대와 비교한다면 안동의 한인 숫자도 10배 이상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수적 증가에도불구하고 안동 한인들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일본인·중국인과는 비교할 수없을 정도로 열악하였다.
상인들은 자본 부족과 동업조합 등 상업조직이 미비한 탓에 중국이나일본 상인들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상업 이외 종사하는 한인들은기존 한인들이 운영하던 식당과 여관업이 아니면 단순제조업 공장의 노동자로 취직하였다. 그나마 이러한 업종에 취직한 한인들은 안동 전체 한인들의 20%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1920년대 중반부터 한인들 가운데 소수의 성공한 ‘한인사업가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동의 취업과 상업활동으로부터 고립된 한인들 대부분은 실업과 빈곤의 구조적 악순환에 시달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인들은 ‘한인보호’를 내세우며 활동하던 친일단체 안동조선인회와 그와 관련된 단체의 간부들—주로 성공한 한인 사업가들—혹은 이들이 조직한 단체에 의지하는 수밖에 ...
This study attempted to examine the migration of Koreans to Andong(安 東) New Town (Shin-siga or Japan Town) from the 1910s to the 1920s, the process of the formation of the Korean residency, and their socio-economic situation.
Korean migration to Andong began in the early 1910s. It was mainly from Ui-ju(義州) and Young-cheon(龍川) in Andong and neighbouring North Pyeong-an Province(平安北道). It is possible to trace the presence of Koreans in Andong as far back as 1908. However, the migration seems to have begun in 1911. The following years, 1912, 1916 and 1918, were the main periods when Koreans began to migrate.
The first Koreans to immigrate to Andong were intellectuals who had worked in the civil service and taught. They were mostly merchants.
Korean migration has been affected by Andong’s economy. At the beginning of the 1910s, Andong fell into a recession due to the end of the Russo-Japanese War and the disappearance of the war specialities.
As a result, the population of New Town decreased due to the lack of trade, and the commercial situation was not as good as that of the Old Town(Ku-siga or China Town). At that time, the New Town was not well organised and lacked amenities such as sewers. The initial migration and settlement of Koreans in Andong took place in the Old City, not the New City. Korean commercial activities were also concentrated in the Old Town. However, as time went by, the Korean residents and businesses were concentrated in the 3rd and 4th streets of the New Town.
After World War I ended, Korean emigration increased sharply as Andong began to boom again in late 1916. By the 1920s, the purpose of Korean migration had changed from that of the early years. In the 1920s, the number of people emigrating in search of quick wealth increased, as did the number of people emigrating without a clear goal. By the mid-1920s, the number of Korean immigrants had increased. Their shops and residences extended beyond the 3rd and 4th districts.
In 1923 Andong’s administration was transferred to the South Manchurian Railway Company(南滿洲鐵道株式會社) and Andong’s centre, including New Town, expanded further. The period from 1918 to 1931, before the Manchurian Incident, was Andong’s “golden age”. After the Korean migration began, the 1920s was a decade. The number of Koreans in Andong increased tenfold from the 1910s. But their socio-economic conditions did not match those of the Japanese and Chinese.
Traders could not compete with Chinese and Japanese traders due to lack of capital and commercial organizations like co-ops. The remainder worked in simple manufacturing or in restaurants owned by local residents.
Still, less than 20 per cent of Andong’s Korean population was employed in these industries. A small number of successful ‘Korean businessmen’ emerged in the Andong Korean community from the mid-1920s. However, most Koreans remained trapped in structural unemployment and poverty.
They were isolated from employment and commerce.
Andong Korean Association(安東朝鮮人會), a pro-Japanese group operating under a name of “protecting Koreans,” and its leaders, most of whom were successful Korean businessmen, and their associations. Lee Hyuk-ho(李爀 鎬) and Chang Gi-sik(張驥植), former leaders of the Andong Korean Association, were cases in point. Having prospered in Andong, they moved to Shin-uiju(新義州, New Ui-ju) or Yong-cheon to help preserve it.
The more their influence on the Korean community grew and their activities increased, the more the Korean community in Andong and in Shin-uiju, Ui-ju and Yong-cheon across the Aprok River(鴨綠江) turned pro-Japa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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