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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미국에서 활약한 조선 청년 박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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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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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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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C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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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수록면
315-339(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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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의 격동기에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 후 현지에서 활동한 박노영의 생애와 사상을 심도 있게 밝혀보고자 한 것이다.
20세기 전반, 세계열강이 식민지를 개척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또한 암운(暗雲)이 짙게 드리워졌다. 이때 한반도 남쪽의 조그만 섬에서 태어난 박노영은 현실에 낙담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섰다. 경남 고성 옥천사에서 출가하여 신학문을 익혔으며, 통도사 지방학림을 거쳐 경성 중앙학교에 진학하여 근대교육을 받았다. 1919년 3·1운동에 가담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3·1운동이 미완의 혁명에 그친 후 백초월 등과 비밀독립운동단체인 혁신단(革新團)에 참여해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발간하는 등 제2 독립운동에 나서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았다.
국내 여건이 여의치 않아 중국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더욱 넓은 세계를 찾아 나섰으니, 그곳이 미국이다. 어려운 상황에도 의지를 굽히지 않고 공부하여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비록 고국을 떠나 있었지만,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조선의 변화를 촉구하고, 조선불교의 개혁을 염원했다. 또한 미국과 캐나다 남미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강연을 하고 다수의 저서를 발간하는 등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알리고 인류의 평화 구현을 위해 노력했다.
지금까지 박노영에 관한 연구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미진한 상황이다. 1945년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구하 선사를 비롯한 통도사의 후원을 받아 신학문을 익히고 독립운동에 참여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박노영은 언제나 조국과 불교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앞으로 그의 흔적을 찾는 일은 우리의 숙제이다. 특히 독립운동에 기여한 업적이 있음에도 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했는데, 이른 시일 내에 포상받도록 해야 한다. 격동의 시대에 출가해 독립운동에 참여한 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조선의 현실을 세계 곳곳에 알리고자 노력한 그는 시대를 앞선 선각자였다.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the Korean Peninsula was facing difficulties when world powers were invading weaker countries and establishing colonies.
Born on a small island, south of the Korean Peninsula, Park No-yong did not despair or give in to reality, but went out to explore a new world. He went to the Okcheonsa Temple in Goseong, Gyeongsangnam-do, to learn theology, and to Gyeongseong Central School through Tongdosa Temple Local School [地方學林] to receive modern education. In 1919, he participated in the March 1st Movement, and tried to regain the country that had been taken away. After the March 1st Movement ended in an unfinished revolution, Baek Cho-wol and others participated in the Innovation Group, a secret independence movement group [革新團], and published the Innovation Bulletin [革新公報], and werE wanted by Japanese police.
Due to unyielding conditions in Korea, the U.S. had launched an independence movement in Shanghai, China, seeking a wider world. Park No-yong studied hard despite difficult situations and earned a doctorate from the Harvard University Graduate School. Although he left his home country and was in poor condition, he did not give-up his interest in his country and Buddhism. He urged a change in Chosun that had failed to achieve modernization, and wished for the Chosun Buddhism reforms. He also traveled around the world, including the United States, Canada, and South America, giving lectures and publishing a number of books to promote the reality of colonial Chosun and realize peace for mankind.
Until now, research on Park No-yong has been insufficient except for a small part. It is unclear why he did not return to Korea after its liberation in 1945. Park No-yong, who studied in the U.S. after learning theology and participating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with the support of monk Guha and other Tongdosa Temples, always kept his love and longing for his country and Buddhism. It is our duty to determine his traces in the future. Despite his contribution to the independence movement, he was not selected as a meritorious person to be rewarded by the government.
After joining the independence movement in a turbulent era, he received a doctorate from the U.S. and tried to spread the reality of Chosun around the world; he was a pioneer ahead of his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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